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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Dec 08. 2023

1. 망한 40살 이야기

일과 사랑, 내집마련까지 모두 놓쳐버린...망한 사람도 글 쓰면 안될까요

내년이면, 며칠 후면 40세가 된다. 오늘 문뜩 그냥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도 없고, 내 집도 없다. 게다가 결혼은 진즉 포기했다. 이렇게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지 못한 채 40살이 됐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일과 사랑을 모두 잡은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고 싶었다.



솔직히 얼굴도 안 예쁘다.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이 안 예쁘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얼굴은 큰데 눈은 작아서다. 그 부족한 부분을 매력으로도 채어 넣을 노력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런 노력도 안 했던 것 같다. 그래서 20대 때는 꽤 자격지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뭐 하나 잘난 거 없이 이렇게 살아왔다.


내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직업은 '000'이라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광고회사를 다닐 때면 "회사 다녀요"라고 말했다. 옷 매장에 다닐 때면 "일 다녀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 나이 먹고 이게 자랑은 아니다만, 이게 내 인생이었다.




사실 신문기자로 일한 경력도 있다. 지방 주간지와 일간지에서 취재기자로 일했었다. 20대 후반과 30살 초반 사이었던 그 시절, 사람들이 묻곤 했다.


"무슨 일 하세요?"

-"아... 기자일 해요"


'기자' 얼마나 있어 보이는 직업인가?


내 직업이 기자라는 말에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거리며 나에게 되묻곤 했다.


"너무 멋져요! 어떤 신문사에서 일하세요?"

-"아... 그..... OO일보라고요..."


"네??"

-"아... 보통 분들은 잘 모르시는데 경기도에서는 나름 메이저 신문사고...

'네 ㅇ ㅂ' 포털 뉴스에도 노출되는 신문사예요. 관공서에서도 나름 알아주고요"


"아. 네....."

-"네......"


"아. 그런데 요즘 종이신문 많이 힘들지 않나요? 요즘 사람들 뭐 다 인터넷으로 기사 읽지..

요즘 또 기자 같지도 같지도 않은 기레기도 많......... 헙...(조용히 입을 막는다)"

-"아. 네"


뭐 이런 유의 대화패턴들이 많았다.


그런 상대방의 의구심(?)을 피하기 위해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느라 바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이 나에게서 느끼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별거 아니네'라는 결론.


나도 내 직업을 한 단어로 정의해서 당당하게 외치기에는 내 나 자신이 영 부족한 부분이 많았나 보다.


지금은 어디 가서 '신문기자'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예전에 무슨 일 했니?라고 물으면

그냥 '홍보'라고 말할 뿐이다. 실제로 광고대행사에서 일한 경력도 있고, 그곳에서 홍보일 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내 경력을 그냥저냥 퉁치고 있는 것이었다.


백수가 되고 나서는 SNS나 커뮤니티를  자주 기웃거리며 여러 잘난 사람들의 근황을 살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름 대면 다 알만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도 많고, 사업가도 많고, 한마디로 자신의 직업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사람들도 남들이 모르는 피나는 노력과 준비를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부러웠다. 그런 끈기와 노력, 브레인이 왜 나에게는 없는 걸까?


나도 브런치에 '기자가 바라본 세상' , '작가가 만나본 사람' 이런 유의 글을 쓰고 싶었다.

진짜. 부러웠다. 그런 글들을 그냥 읽고 있자니 그냥 나는


"망했다"라는 생각들 절로 들었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 나는 여전히 눈을 떴다. 아침밥은 어찌나 맛있던지 쌀밥 한 그릇에 김 한 팩까지 그 자리에서 뚝딱했다. 튼튼한 두 다리로 산책을 나서며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만끽했다. 얼마 전 내 또래 딸을 시집보내는 데 성공한 동네 아주머니를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나름대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몸과 마음이 상쾌했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발자국을 떼다 보니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이 망한 건 아닐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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