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범인은 이안에 있다'
우리나라의 형벌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과연 다방면에서 합리적인 형벌이 불가능할지에 대해 논해보기 전에 '형벌'자체의 목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형벌의 목적
형벌의 목적은 전통적으로 '목적형(Utilitarian)'과 '응보형(Retributive)'으로 나누어집니다. '목적형'은 형벌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경우로, 제지(Deterrence), 격리(Incapacitation), 교화(Rehabilitation)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입니다. 이와 반대로 '응보형'은 형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죄를 지어 피해를 만들어낸 이에게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는 것으로, 흔히 사용하는 어구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로 표현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목적형 형벌의 경우 이를 통해 '사회의 행복함을 최고치로 만드는 것(Maximize happiness of society)'을 근본적 목표로 하는 반면, 응보형 형벌은 범죄로 인한 불공정(Unjust)한 상황을 공정하게(Just)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물론 개인이 범죄를 저질러 형벌을 받게 되는 경우, 다양한 형벌의 목적이 동시에 발현됩니다. 예를 들어 살인의 경우 형벌이 사형이라면, 살인을 저지르려던 잠재적 범죄자가 형벌의 무서움을 인식해 범죄를 포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제지 효과). 만약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행했을 경우, 형사사법체계는 사회에서 살인자를 격리시킴으로써 (예: 교도소 수감 등) 이후의 잠재적 범죄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격리 효과). 또한, 특정 형벌을 받아 이를 이행하는 동안 스스로 범죄의 잘못됨을 인식하고 뉘우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화 효과).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형벌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응보'라 할 수 있습니다. 해를 입힌 이에게 그에 상응하는 피해를 받게 하는 것이죠. 이것은 마치 '복수'와도 비슷한 개념이지만, '응보'는 '복수'와 형사사법체계의 활용면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과거 형사사법체계가 확고히 자리잡지 못한 시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소중한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제 제 인생의 목표를 '나의 소중한 이를 살해한 그자를 살해하는 것'으로 '복수'를 꿈꾸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의 문제는 내가 또 그자를 살해함으로써, 나는 또다시 '잠재적 복수자'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은 사회구조적으로 보았을 때에 다방면으로 손해가 막심합니다. 사회 구성원들끼리 서로에게 복수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죠.
형사사법체계는 이런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합니다. 개인이 '복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주면서 가해자가 입힌 피해에 '상응하는 벌(응보)'을 주는 것이 바로 '형벌'의 역할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참고: Punishment (wiki), Theories of Punishment (Cliffs Notes), Theories of Punishment (legal dictionary)
우리나라 형벌의 유래
그렇다면 우리나라 형벌은 위와 같은 목적 중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형법은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유럽의 '대륙법'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형벌의 형태는 유럽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죠. 유럽은 전통적인 관습이 중요시되어왔고 그에 따라 사회적 위신과 체면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낮은 형벌을 받는다고 해도 사회 내에서 위신과 체면을 이미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죗값을 치른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사회는 유럽사 회보다 작고, 공동체가 중요시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 내에서 단죄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전제로 오늘과 같은 형벌이 구성되었다고 보입니다.
'대륙법'과 비교대상이 되는 것은 영국과 미국이 중심이 되는 '영미법'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경우, 다민족으로 '스스로 국가를 개척했다'는 인식이 강해 형법 또한 이례적으로 강경한 것으로 대륙법과는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줍니다.
이를 따져 보았을 때, 유럽의 대륙법은 '목적형'을 주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우리나라는 형법의 구조와 더불어 형벌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형벌의 종류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형벌은 크게 생명형, 자유형, 재산형, 명예형의 네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생명형은 사형을 이르며, 자유형은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로 징역, 금고, 구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형벌'을 생각하면 생명형과 자유형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재산형(벌금, 몰수, 과료)과 명예형(자격상실, 정지)도 형벌에 포함된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합리적 형벌
형사사법체계는 길고 복잡하고 어려운 고차원적인 법적 공방과 의결을 통해 만들어진 구조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중이 느끼는 법에 대한 감정이나 의견을 쉽게 수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특정 법제 제도에 지속적으로 문제점이 대두된다면, 실질적으로 그 체계는 변화가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현재 많은 이들이 느끼는 형벌에 대한 대중의 감정을 '우리나라는 대륙법을 적용하여 형사사법체계를 마련하였고, 그에 따라 형량이 가벼우니 어쩔 수 없다'라고 외면하는 것이 과연 해결책일까요? 피해자가 만족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형벌은 불가능한 것이 어쩔 수 없는 형사사법체계의 한계일까요?
현재의 형벌제도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도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형벌이 얼마나 효율성과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 적용되었는지, 실질적으로 이러한 형벌의 정도가 잠재적 가해자들에게 얼마만큼의 제지 효과를 갖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에 대한 검증 없이 오래전 유럽에서 정해진 대륙법을 가져와 사용하고 있는 것은 과연 정당하고 합리적인 형벌이 될 수 있을까요.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형벌을 책정하는 것 또한 현 사법체계가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가해자의 음주, 연령, 학벌, 계급 등에 의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낮은 형벌조차도 더욱 낮아지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요. 물론, 가해자의 입장에서 10년, 15년은 긴 시간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의 목숨이 과연 가해자의 징역 10년에서 15년으로 해결되고, 영혼의 살인으로 불리는 강간은 과연 징역 12년이면 죗값을 모두 치르게 되는 것일까요. '가해자도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이 '피해자에 대한 정의 구현'과 '피해자의 보호'보다 지나치게 중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속적이고 꾸준한 노력으로 '정당하고 합리적 수준의 형벌'에 도달할 때까지,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하겠습니다.
연계 콘텐츠
팟캐스트 '범인은 이안에 있다'
에피소드: 형, 벌이 뭐예요? [가벼운 형벌 2화] (안드로이드/PC: 팟빵 아이폰: 팟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