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범인은 이안에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십여 년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로 알려져 왔고, 2012년 WHO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36.8명이 자살을 하는 자살률 2위 국가로, 아시아 중에서는 여전히 1위 (2위 일본 23.1명 / 3위 호주 11.6명 / 4위 뉴질랜드 10.3명)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살에 대한 다각적 접근의 필요성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자살'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접근 중 하나로 '범죄학적'이 빠질 수 없겠죠.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행위인 자살(suicide)은 다른 이의 목숨을 끊는 타살(homicide)과 자주 비교되며, '자살은 범죄일 수 있음'에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범죄학뿐만 아니라 다각도로 접근해 '자살은 범죄인가'에 대한 답을 논해보고, 해결책을 제시해 봅니다.
자살은 죄악?
(종교적 접근)
'자살은 죄악이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이야기는 기독교에서 많이 들어보았던 이야기인데요.
기독교적 입장에서 죄의 근본을 따지게 되면 죄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근본적으로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일단 살인에 대한 입장을 보면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구약성경 민수기 35절)'라는 구절에 따르면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은 죽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기독교 상에서 신이 내린 생명을 개인의 의지만으로 끊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살해하는 '살인'이나 본인의 목숨을 끊는 '자살'은 같은 '살인죄'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살인'과 '자살' 모두 '살인죄'임에도 불구하고 '살인하면 지옥 간다'는 말은 없고,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말이 생겼을까요? 원리적으로 따지면, 여기에는 죄를 뉘우치는 '회개'라는 과정이 있고 없음의 차이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살인죄'의 경우 지옥에 가는 것이나, 자살의 경우 회개의 시간을 가질 수 없고, 살인의 경우에는 회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살인의 경우 회개의 기회가 있어 지옥으로 가는 것을 피할 수 있지만, 자살의 경우엔 바로 지옥행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원리는 일차원적이며, 진정한 '구원'을 받은 신도들은 그들의 삶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성령'이 내재해 이러한 자살이나 살인을 죄를 인지하면서 저지르지 않도록 한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자살은 죄악이다'는 기독교 입장에서 틀린 말은 아니며, '살인과 자살은 모두 죄'이지만,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이야기는 성경의 일차원적 해석에서 온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독교적 견해에는 범인 정희수 님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외에도 불교에서는 첫 번째 계율로 불살생(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요. 이에 따르면 자살은 본인의 생명을 끊는 행위로, 이 또한 큰 업(죄)라고 여겨집니다.
자살은 불법?
(법리학적 접근)
영국과 웨일스의 경우 약 50년 전까지 자살을 행하는 것이 불법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로 그친 영국인이 이에 대한 처벌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던 기록이 있는 등, 이외에도 미수로 그친 다양한 자살 시도와 그에 대한 형벌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죠 (관련기사: When suicide was illegal).
국가별로 '자살은 불법인가'를 알아보면, 대체적으로 자살은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나 자살을 돕거나 자살을 하도록 방치하는 행위 등은 불법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신체적 질병 등으로 인한 의료적 안락사를 원하는 경우 자발적인 의도로 존엄사를 합법화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외에 조금은 특별한 국가별 자살에 관련한 법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과거 자살 자체가 법률상 불법이었으나, 실제로 이행되진 않음 (기소되는 경우가 없었음). 1980년대 이후 자살을 돕는 것은 불법. 자의를 통한 의료적 안락사는 가능해지는 추세.
영국: 자살은 신과 황제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 1961년까지 불법.
에스토니아, 독일: 자살과 자살을 돕는 행위 모두 합법.
핀란드, 뉴질랜드: 관련 법안이 없음.
일본: 불법이나 처벌 불가 (그러나 불법임을 명시).
북한: 가족 중 한 명이 자살할 경우, 가족을 숙청하거나 유배.
러시아: 10대의 자살률이 세계의 3배, 자살의 징조를 보이면 입원시킴. 괴롭힘에 의한 것일 경우 가해자 최고 5년 징역.
*관련기사: Is Suicide Illegal? Suicide Laws By Country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인 경우(자살 자체는 불법이 아니나 교사나 방조는 불법)에 해당하며, 2016년 국회에서 '웰다잉(Well dying)법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 통과됨에 따라 의료적 안락사가 2018년부터 공식적으로 시행됩니다.
그렇다면, 자살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의 범주에 들 수 없을까요?
자살은 범죄?
(범죄학/사회학적 접근)
법률용어사전에 따르면 범죄는 기본적으로 '실질적 범죄'와 '형식적 범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관점에서의 '실질적 범죄'는 범죄의 실질적인 요건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이고, 반면 법률적 관점에서의 '형식적 범죄'는 형벌을 수행하기 위하여 어떠한 행위가 법률적 조건을 갖추었는가를 살피는 것인데요. 법리적인 관점에서 자살이 범죄가 아님을 살펴보았다면, 이번엔 범죄학적(실질적 범죄의 관점)에서 자살이 범죄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자살의 '범죄의 구성 요소: 가해자-범행-피해자'를 살펴보면, 자살의 가해자는 '본인'이며, 범행 행위는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 (목을 매거나, 물속으로 뛰어들거나, 자해를 하거나) 혹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것 (물이나 음식을 먹지 않는 등)으로 나뉘어 목숨을 끊는 목적을 위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살의 피해자는 다시 '본인'으로 범죄의 구성요소만으로 놓고 보았을 때는 '범죄'임이 성립합니다.
자살 그 자체로만 놓고 보았을 때 단순히 생각하면 개인 스스로의 살해행위(Self-murder)가 사회적으로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의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한 영향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가해자나 피해자의 범주를 더욱 넓혀보는 것도 다른 시각으로 자살을 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자살의 원인(가해자)
자살의 원인은 크게 직접적 원인과 간접적 원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원인의 경우에는 범죄와 부당한 대우를 받은 피해자일 경우(폭력, 괴롭힘 등)를 들 수 있는데요. 이런 경우는 실질적인 범행의 가해자의 확실한 처벌과 격리,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는 '자살의 예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범죄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 예방 등을 위한 목적성이 더욱 강합니다.
이러한 경우, 자살의 가해자는 실제 '물리적 가해자'가 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교사나 방조죄는 증명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어 실질적인 형벌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간접적이고 광범위한 원인은 '사회'를 가해자로 보는 시각입니다.
자살의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은 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97년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자살(Suicide)'라는 연구를 발표합니다.
이 연구는 이전까지는 개인적인 문제(정신적, 유전적)로만 치부돼 오던 자살을 최초로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그 원인을 사회에서 찾은, 또한 처음으로 사회학 연구에 통계학을 접목시켜 '사회과학'을 탄생시킨 혁신적인 연구였습니다.
뒤르켐은 자살에는 '이기적', '이타적', '아노미적', '숙명적' 자살의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사회통합도(Integration)
이기적(Egoistic): 개인-사회의 분리 (통합도 낮음)
이타적(Altruistic): 개인-사회의 과도한 통합 (예: 집단자살)
사회적 규제(Regulation)
아노미적(Anomic): 행위를 규제하는 사회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 상태에서의 자살 (규제 낮음)
숙명적(Fatalistic): 과도한 억압, 절망 속의 자살 (예: 노예의 자살)
분석에 따르면 당시 사회는 기본적으로 사회통합도나 사회적 규제가 지나치게 낮은 상태에서의 자살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특히 아노미(Anomie)의 경우 이후 범죄학 이론에서도 활용되는 등, 일탈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2017년 3월, 현재 우리나라를 대입한다고 해면 아노미적인 자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추측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사회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 상태'는 마치 우리나라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반영하는 설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요. 정당성을 잃었던 무능하고 무례했던 정부와 유년시절부터 강요되는 공부와 취업, 일터에서의 부당한 대우와 인권 존중 상실, 다양한 차별 등이 주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들은 충분히 아노미적인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회가 자살을 더욱 부추긴다면, 자살의 가해자의 범주가 훨씬 넓어집니다. 단순 개인이 아닌, '사회'가 이 범죄(자살)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자살의 가해자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법에 대해 논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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