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한동안 글을 쓸 여유도 없이 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은 있었으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겠지.
인풋은 꾸준했지만 소화시켜 내보낼 시간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소화해 보려 2026 시작과 함께 나름의 머리를 굴려보려 했는데,
아뿔싸, 나에게 왜 이러시는 건가요.
여차저차. 2026년도 3개월이 지났고 브런치에 글은 9개월이 지나 쓰게 되었다.
그냥 일상적인 글을 편히 마구잡이로 써 내려가는 블로그와는 다른 느낌이라 더 그랬던 것도.
솔직히 계속 미루게 될 것만 같아서 마음속 한 켠 무거운 짐이었는데
내 나름 인풋을 소화해 보고자 시작한 독서노트를 작성하다 번뜩 길게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일 생각하면 왜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글 일 수도 있지만.
흘러가는 생각을 흘려보내다 보니 나도 같이 흘러가버리는 것 같아 이렇게라도 잡아보려고.
이북리더기를 읽으면서 탄력 붙었던 독서가 재작년 책장을 들이면서 좀 더 단단해졌고 그 습관이 작년에 더 굳어졌다. 그래서 이제는 여유 시간이 생기면 당연히 책을 읽고
얼마 전 이사를 하며 내 공간이 넓어져 독서소파와 두 개의 책장을 더 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젠 여윳돈이 생기면 책을 산다. (여윳돈이 잘 생기진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읽는 속도만큼 독서 노트를 제 때 쓰고 있지 못하는데.
오늘은 조금 밀려버린 독서노트를 쓰려고 자리에 앉았고 그러다 보니 한 가지 흐름을 발견했다.
나는 삶을 견디고 있구나.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결론에 이르게 한 두 권의 책
- 헤르만 헤세 : 삶을 견디는 기쁨
- 이응준 :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읽을 책을 고르게 되는데도 무의식의 반영이 되는 편이라고 여기는데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는 제목에 끌려서 2024년 봄에 사놓고 모셔두었다가 갑자기 끌려서 이번 말에 읽게 되었다. <삶을 견디는 기쁨>도 늘 눈에 밟혀 생각만 하다 올해 초 사두고 언제 읽지 하다가 이번 달 중순에 읽게 되었다.
....맞습니다. 그래요. 이번 달 중순과 말에 읽은 책의 독서노트를 이제야 같이 씁니다.
작년부터 독서량이 꽤 많이 늘어서 달에 평균 7-8권을 읽다 보니 좋았던 구절이 흘러가는 게 많아 독서노트를 쓰게 된 것도 있다. 모든 문장을 쓰진 못하지만 노트에 쓸 문구를 고르면서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나의 생각과 감정 느낌을 갈무리하는데...
두 권의 책, 유난히 플래그가 많군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견디는 기쁨>을 먼저 쓰고 중간에 읽은 시집과 소설을 쓰고, <고독한 밤에>를 쓰는데 어라라...
나에게도 삶은 견디는 것이며, 견뎌내야 하는 것임에도 기필코 해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구나.
헤세의 책은 제목에서부터 <삶을 견디는 '기쁨'>이지 않은가.
이응준 산문집은 플래그를 붙여두었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인생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임해야 그나마 뭔가를 해낼 수 있고, 해낸 다음에도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다. 무의미하다고 아예 정하고 살아야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행복은 덫이고 함정이다. 행복에 중독되면, 행복을 투석하다가 죽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p.118
삶의 어두운 면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밝게 빛나는 순간을 이따금씩 맞이해야 하고,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행복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당연히 두 번 살 필요는 없다.) 고통과 후회와 아쉬움. 없으면 좋겠지만 없을 수 없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은 지워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문신 같은 것, 그러니 받아들이고 그들이 지나가고 만들어낸 새로운 삶의 색채를 바라볼 것.
나의 어둡다 못해 깜깜했던 시절을 견뎌오며, 나름대로 결정한 나의 삶의 태도이자 앞으로도 견지하고자 하는 것.
내 깜깜했던 시절을 모르고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내 문신을 모르기도 하지. 그 마음을 알게 된 건 나도 그 시간을 걸어본 적 있기 때문이야. 굳이 덧붙이진 않지만.
땅굴을 더 파고들어 가는 사람들에겐 종종 말해주기는 한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제 모습은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 나와 만나게 된 무지개와 같은 선물이라고, 저도 좋아하는 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선택할 수 있다면 안 겪고 싶었다고.
그렇지만 이미 새겨진 문신과 지나간 고통과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아쉬움을 붙들고 있으면 뭐 해.
"누군가를 부드럽게 감싸주고 배려해 주는 것은 스스로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며, 정신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취약점을 감싸 주는 것은 참담한 고요 속에서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 <삶을 견디는 기쁨> p.48-49
조금 과장하자면 올해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한 건 이 두 권의 책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며 하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갑자기 번개처럼 번뜩, 뭐라도 써야 해 해서 브런치를 켜고 적어 내려 가 머릿속에 부유하기만 하고 손끝으로 나오지 않은 생각들이 많지만 이 두 권의 책이 시의적절하게 나에게 와 준 것만 같다.
변화가 많은 1분기였다.
생각보다 잘 버텨나가고 있고, 그런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다.
예전보다 잘 견디는 내가 기쁘고 지금 내 상태가 꽤나 미쁘기에 2분기도 그리 걱정되진 않지만 그래도 때에 맞는, 나에게 필요한 선물 같은 책이 또 다가와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