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없고 여전히 고군분투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요 근래 내 머릿 속에 일이 잘 안풀리고 있는데, 뭔가 잘 안되고 있는것 같은데
그게 뭐지... 를 생각하다가 결국 파고들다보니 도달한 한 지점.
바로 내가 이 일을 하는 속된 말로 '가오'가 빠지는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뭔가 동기부여가 충분히 되지 않고 예전같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들이 나와 그리고 조직에 스물스물 스며든 것 같다.
"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솔직히 돈이 있었던 적은 없다.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돈이 없을 줄은 솔직히 몰랐는데;;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나 역시도 슬금슬금 기존의 일을 했던 시간들보다 이 일을 해온 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다른 옵션을 선택했을 때에 포기하게 되는 기회비용이 점점 더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것이 점점 압박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면서 그래도 "나는, 우리는 달라, 남들은 못해도 우리는 해낼 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돌아보면 가장 깊은 곳에 이 고된 여정을 버티면서 할 수 있는 가장 밑바탕에 깔려있는 단단한 동기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
그 다름이 무얼까
대체 뭐가 다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의 꼬리를 물고 들여다보면 (그러면 자랑하자는 건데...)
첫째, 우리는 시작부터 달랐다. 꽃을 팔 생각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꽃이 주는 기쁨으로부터 아무 댓가없이 1년이 넘도록 꽃으로 사람들을 연결하고 웃게 만드는 힘에 끌려 FLRY를 만들고 지속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건 잘하는 사람도, 노력하는 사람도 아닌 그냥 좋아서 즐기는 사람임을... 우리는 시작부터 그냥 이게 주는 가치가 좋아서 흘러흘러 모인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694014&memberNo=365439
그 시작은 세상을 밝히는 10대 아이디어로 선정되었었고 미약하게나마 지금도 그 명목을 이어가고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크게 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둘째, Farm to table을 국내 최초 시도하고 만들었다. 그냥 꽃집이 아니라 꽃을 내가 어떻게 택배로 보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수십명의 농부들을 설득해서 카카오톡으로 한분한분 주문문자 넣고 전화돌리는 노가다의 길을 걸으며 이 길을 개척해왔다. 지금하는 수많은 농장 직배송의 시초는 어니스트플라워이고, 우리와 함께 하면서 성장한 농부들이 직접 채널도 오픈하고 컬리에도 납품하고 성장해왔다.
셋째, 꽃에 이정도까지 하나... 하는 꽃에 미친 사람들이 모여 안 되는 것들을 되게 만드는데 몰입하고 집중해왔다. 고객은 비록 이런 노력들의 10분의 일도 모르고 심지어 대부분의 경험에서는 다른 업체, 혹은 개인과도 구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큼 알고 깊이 고민한 사람은 없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그걸 한 단계 더 들어가보면
가장 좋은 가격에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가장 신선한 상품, 생산과정을 알고 구분해낼 수 있는 노하우
가장 좋은 퀄리티로 고객에게 가게 하는 과정에 대한 노하우와 중요도를 가지고 하는 의사결정들 (우리가 새벽에 일하고, 쫄려도 가장 신선한 꽃으로 가장 단시간 내에 작업하도록 때로는 사람을 혹사한다거나, 운송비가 더 들거나 아침배송만 제공하여 포기하는 매출이 크더라도 퀄리티에 대한 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포기한다거나...가장 좋은 배송온도 테스트한다고 온도계를 몇개씩 사서 옥상에도 뒀다가 여기저기 보내봤다가 난리를 친 이야기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신선하고 좋은 꽃을 보내려면 무엇보다 수면 아래에서는 미친듯하게 바쁘고도 치열한 operation이 돌아가게 만드는 것 (회전율, 원가/재료, 폐기율 관리 등 표준화되지 않은 상품을 표준화하고 ERP를 만들어가는 것)
같은 것들이 그런 자부심의 근원이고 그래서 한 의사결정들이다. 비록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전혀 드러나지 않거나, 혹은 나를 포함 우리 팀의 성향상 드러내어지고 자랑하지 못하여 충분히 고객을 유혹하는 데까지는 100% 활용되지는 못했지만 이런 곳에서 보여지는 집중과 몰입이 결국 어떤 지점에서는 고객에게 WOW, 여기는 다르군을 느끼게 하는 곳곳에 녹아있을 것이다.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6203
당연히 실수와 실패가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솔직하게 하나씩 커뮤니케이션하고 마무리하고 개선하는 데에 대한 집요함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그리고 그 근본에는 (지금은 사실 많이 희석되었지만) 농부님이 어떻게 농사짓고 키우는지 알기에, 그 과정을 알기에 농부만큼 그 상품이 잘 못가면 슬퍼하고, 속상해하고,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성공의 경험에 이것이 필요한가라는 의사결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일례로, 어니스트플라워를 오픈한 초반 2019년 있었던 배송과정에서의 품질 이슈와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한 것들. 몇년이 지났지만 그때에 농부님의 한숨, (그날 술을 많이 자셨다..) 같이 속상함에 통화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두가 마케팅을 했을 때에도 마케팅 없이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상품 그차제, 그리고 내 자식처럼 소중히 다뤄 포장해 보내는 농부들이 바로 그 원동력이었다.
효율화와 생존을 위해 다시 본사로의 집중을 선택한 우리 팀은 이제
- 정말 더 나은 가격에 꽃을 제공할 수 있는가 - 올라가는 인건비와, 소싱가격과의 싸움 (vs. 고정가로 정산하는 꽃값 + 작업비 )
-파머보다 더 빠르고, 더 꼼꼼하고 완벽한 포장 : 내 꽃을 포장하는 농부의 세심함이 담긴 것보다 더 좋은 꽃을, 더 빠른 시간내에 완성도 높게 전달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떠나보내는 마지막 과정이나, 고객에게는 우리를 실제 접하는 첫만남)
이 두가지를 얼마나 잘 해내느냐 (단순히 더 싸게, 더 쉽게가 아니라)라는 또다른 과제에 처해있다.
사람이 바뀌고 과정이 분절되어 갈수록, 결국은 이것들이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있고 왜 중요한 것인가를 align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본질을 계속 유지해가는 게 결국 핵심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은 해낼 것이라 믿지만, 중요한 것은 Back to basic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좋은 상품을 제공하고 있느냐, 그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고 몰입하고 있느냐에 다시한번 돌아볼 때이다.
그런 나의 가오를, 우리팀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고마운 후기들
늘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비록 개선할 부분, 안좋은 것들도 많지만
우리는 일년에 한번 꽃을 살까말까한 사람들의 행동습관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고 될지 안될지, 언제쯤 될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이다.
그러기에 사실, 결국 그 과정에서 CORE가 있느냐, 얼마나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느냐가 장기적으로 우리만 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 core가 원래는 차별화되었던 요소인데 영원한 것은 없을테니 퇴색되었다면 다시 재정비를 해야하고, 그런 시그널이 있다면 놓치지 않고 기민하고 집요하게 다시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더 쉽게, 더 자주 기분 좋은 생활을 만들어주는 것
꽃이 그럴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래서 가장 싸게 좋은 꽃을 들이고,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100% 판매를 해야하고, 평소 가진 '생각보다...'라는 인식을 바꿔주는 데에 집중한다.
한계와 싸우며 일하는 우리 팀에 오늘도 감사와 존경을 전달하며.
비록 내일 어니스트플라워가 망해서 문을 닫더라도,
나는 오늘 마지막 한명의 고객에게 완벽한 상품과 잊지 못할 고객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의 좌절과 고난과 마주한다.
왜?
내가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으니까.
이건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