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야
6월 한달이 개인적으로 업무도 잘 안 풀리고
해도해도 다 해치우지 못한 일들, 중요한 것들을 미루고 산적한 것들이 월말까지 끝끝내 밀려 참을성 있게 기다렸던 것들이 누군가에 대한 원망들로 바뀌게 될 즈음,
별 것도 아닌 것에 심하게 화를 낸 나에게 남편이 도대체 왜 이런 걸로 나한테 짜증을 내냐며, 그게 그렇게 화날 일이냐며 대거리를 해대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 나 번아웃인가봐"
그리고 그 다음날 하루종일 생각했다. 떠날 궁리만
단 하루라도 도망치고, 나만 생각하고 싶었다.
남편에게는 하루의 휴가를 허락받고 가보려고 염두해두었던 맹그로브 고성에 하루전날 전화하자 왠걸? 방이 없단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뭐, 그치 집앞에도 좋은 카페 많은데 굳이 거기까지..라면서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2시경, 그리고 4-5시경 눈을 뜬 서연이에게 잠결에 젖병을 물리고 눕혀 재우고 나니 5시 반쯤 되었다.
잠이 깬 채 뒤척이다가, 날씨를 보니 (나는 매일매일 다른 지역들의 날씨를 보는 게 좀 이상한 취미이다) 고성
의 날씨는 구름 한점 없이 화창했다.
'갈까? 말까? 귀찮은데, 왕복 5시간을 굳이? 잠은 어디서 잘건데?...'
생각하다, 에라~모르겠다 하고 냅다 짐을 싸서 무작정 차를 탔다. (계획이 없어서 전기차 충전을 해두지 못했는데 다행이도 도착지까지 도착하고 10% 정도 남을 만큼은 있었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책도 챙겼다.
엄마의 20년,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 (다시 읽기)
하드씽
막상 막히지 않는 차를 타고 서울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록, 너무나 신나고 심장이 빨라지고 에너지가 펌핑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달리던 차에서 알고리즘에 따라 선곡되어 나오던, 적재의 '별보러 가지 않을래'를 듣다가 별안간 눈물이 팡 터졌다. 대체 왜 때문에? 하고 당황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별보러 가자! 라는 말에 달려나갈 수 있는? 혹은 같이 보러갈까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그 자유가 사무치게 그립고 그만큼 내가 이 욕구를 억누르면서 그 많은 의무와 책임감들을 견디며 힘들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내 마음을, 내 상태를 정작 들여다보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13개월동안 조리원을 나와서부터 바로 일에 돌입해서 하루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하고, 매일매일 무언가 내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같은 (그래서 도저히 박차고 떠날 수 없는) 시간들이 많이 힘들었나보다.
그냥, 이 하루면 충분한데
온전히 나를 위해
눈뜬 나의 오늘의 기분,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어떤 것도 생각치 않고 짐을 싸서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까지 기분전환이 될 수 있었구나 하며 도착한 9시부터 떠나는 저녁 9시까지.
하루를 선물처럼
집중하며, 또 훨씬 더 많은 일을 힘들지 않게 해내며 조금씩 괜찮아졌다.
나 번아웃인가봐.
라는 생각이 들고 엄마 번아웃, 워킹맘 번아웃을 엄청나게 검색했는데, 결국 거기에 대한 피드백은 두가지, 아이 클 때까지 경제적으로 필요하니 최대한 필요한 만큼 하고 존버해라. or 퇴사해라
그 두가지 선택지 모두 대표이자 워킹맘인 나에게는 유효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집도, 회사도 도망갈 곳은 없고 주어진 의무만 더욱 무거워진 나에게 하루의 일탈은 어쩌면 꺾일 뻔한 나를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내가 찾은 해결책이었다.
나는 이 소중한 비타민을 앞으로 계속 써볼 참이다.
나도 도망갈 곳이 있고, 나도 힘들면 잠깐 쉬어갈 수 있고, 나도 힘들고 모르겠으면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읽고 싶었던 책이나 읽을 수도 있다. 감사하게도 도와주는 남편 덕분에, 팀원들 덕분에 온전히 나에 집중해서 나는 다시 고갈된 에너지를 채워서 다음 여정을 준비한다.
이 소중한 일탈의 8할은 고성 바다가 다했다.
에머랄드 빛의 투명하고 잔잔한, 그리고 한적한 시골길이 정겹기까지 한 이 동네와 난 벌써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실제로 주말에 하루 더 다녀왔다.;;)
작정하고 간 워케이션은 아니고, 실제로는 거의 워크였지만
결론은 워케이션 추천, 맹그로브 고성 추천, 워킹맘 화이팅, 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