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이런 이름으로 바꾸기로 결정하였는가
나는 2016년쯤 약 30년가량 살아온 이름을 공식적으로 바꿨다. 운세를 보거나, 사주풀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살면서 이름이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대부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간 수없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부모님은 집에서 불리는 이름을 몇차례 바꿔서 불러주셨지만 워낙 살아온 습관, 그간의 만나온 사람들이 있기에 사실상 그 이름이 불리워질 기회는 거의 없었다.
2016년 갑자기 진짜 호적을 바꿔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 이유는
그동안의 이름으로 살아온 것이 사회의 구성원, 직장인의 한명으로서의 나였다면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고 회사를 꾸려나가야 하는데에 어느 하나 (심지어 내 이름마저도) 발목을 잡는 것, 걸리는 것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내 이름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나 하나가 아니라, 내 회사가 된다면 망설임없이 이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어느날 나는 갑자기 김미라 (아름다움을 펼치고 살아라...) > 김다인 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번 꽂히면 그 자리에서 해치워야 하는 성격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바꾼채,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김다인으로, 그 전의 사람들에게는 이전의 이름으로 불리며 이중생활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전화가 갑자기 한 통 왔다.
" 아야, 아빠가 일이 있어서 등본을 떼었는데 호적에 김다인이 있다. 얘가 누구냐?"
아차차., 아빠 엄마에게 이름 바꾸는 걸 깜빡 안 알려드렸구나. 그치만, 뭐 어차피 내 이름인데 뭐...
회사의 이름을 매번 정할 때마다 쉽지 않았다.
현재의 어니스트플라워는 꽃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추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를 담아 이름을 정했었고 FLRY는 플라워리사이클링의 줄임말로 정했으나 워낙 영어 철자가 어렵다보니 쉽게 한번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다. 사단법인 리플링이라는 이름 (물결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가 꽃으로 연결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이슈들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변화가 확장되면 좋겠다는 뜻) 역시 좋은 취지를 담고 야심차게 준비하였으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단어였고, 네이버에 검색하면 가슴수술 후의 증상으로 훨씬 더 많이 통용되는 단어여서 의미 전달이 어려웠다.
이름 한번 정하기 정말 어렵구만...
그래서, 왜 지금 갑자기 회사 명을 바꾸려고 하나?
(주) 어니스트플라워의 이름으로 벌써 2년이 넘게 사업을 지속해오면서 2022년에는 참 많은 변화들을 만드는 중이고 다사다난했다. 어서 빨리 이 한해가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만큼, 개인적으로도 일적으로도 쉽지 않은 한해였는데, 그 와중에도 몇몇 도전들을 하고 바꿔나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B2B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를 붙여나가는 것, 그리고 나아가 연결된 다른 사업들로 확장해나간다고 할 때에 이 이름 안에 함께 서비스를 운영하는 모습으로 담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로 보았을 때에 답은 '아니오'였다.
우선은 고객이 서로 다른 서비스에서 이를 중복으로 사용하는 것이 굳이 각자가 대상으로 하는 고객에게 알려지는 것이 구매결정, 브랜드 선호도에 영항을 끼치지 않았으며 늘 항상 어니스트플라워라는 이름이 같는 그 특성에 상품의 속성은 명확하게 전달이 되지만, 마치 어니스트 팀은 언제나 정직하고 청렴하며 착한 사람들만 있을 것 같은 그 이미지에 우리 팀이나 앞으로 하게되는 각종 도전들이 자칫 제약을 받거나 국한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 우리 팀은 정직한, 착한의 personality로만 드러내기에는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그런 모습들을 알리고 싶었다. 이름은 그야말로 외부에서 사람들이 불러주고 인지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데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고 싶은가를 생각했을 때 전달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인재상, 그리고 우리 팀이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고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정했다
팀 내부 의견을 취합하였다. 아이디어가 뛰어난 편은 언제나 아니었기에 내부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우리를 스스로 어떻게 여기고 있고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다양한 의견들, 그리고 나름의 선정 이유들이 다 좋았기에 결정이 쉽지 않았고 최종 후보 2개 중, 보다 우리 팀의 의지를 드러내고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할 수 있는 사명이 좋다고 생각했다.
최종 후보 중 많은 고민 끝에 정한 이름은 바로 ARES 3 (아마도 한글명, 아레스3)
아레스? 그게 뭐야 하겠지만, 이 이름은 사실 영화 마션(2015) 에서 화성탐사를 간 정예 멤버 팀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화성을 탐사하던 중, 멤버 중 한 명인 마크 와트니는 모래폭풍을 만나 조난당하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떠난다. 그렇지만 극적으로 살아남아, 갖은 노력을 하며 화성에 감자를 심으며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낙오된 그를 찾아 다시 아레스3 팀은 죽을 각오를 하고 가서 극적으로 그를 구해 결국 생환한다.
여기서 우리 팀과 닮았다 내지는 지향하는 모습과 맞닿았다고 느꼈던 지점은,
화성이라는 아직 아무도 살지 않는 볼모지 같은 곳에 가장 먼저 탐험을 시작한 것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의지를 잃지않고 하나씩 실험하며억척스럽게 생존하는 것
그리고 그런 동료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다.
꽃이라는 재화가 가진 한계를 넘어 아무도 감히 다루고자 도전하지 못했던 꽃의 일상화를 꿈꾸는 우리의 도전은 그래서, " 누구에게나 쉽게 좋은 꽃을" 이지만 이 간단한 말을 달성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언제가 끝이 될지 모르는 일을 계속하고 그 시기를 천천히 만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올해 만들고 있는 재고관리, 내부 운영시스템들을 정비하면서 지금 당장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언제쯤 이런 시스템, 구조들이 빛을 발하는 시기가 올까... 하는 허탈함이나 막막함이 들기도 했다.
하긴, 처음 Farm to table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하던 2018년만 해도 농장 직배송, 생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어떻게 팔아야 할지 막막했다. 불과 4년이 지난 지금은 농라 카페에서부터 스마트스토어까지 너무나 많아졌고 이제 더이상 꽃을 온라인에서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나 많아졌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것들도
언제가 그 변화의 바람이 J커브를 그리며 확산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어떤 속도가 되었건 올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 믿음이 실현될때까지 어느 누구도 복제 불가능한 건 그걸 믿고 하루하루 존버(?)하는
바로 어니스트 피플, 우리 팀이다.
오래된 나의 여권케이스에 점자로 새겨진 가장 좋아하는이육사의 '광야에서' 문구가 떠오른다.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이런 것들을 좋아했나보다.. )
지금 눈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정말 꽃이라는 재료를, 모두가 다루기 어렵고 일상화되기 가장 어렵고 끝끝내 마지막까지 다루고 싶지 않아하는 꽃을 정말 우리가 가장 싸고 가장 좋게 공급할 수 있을까?
오늘의 우리가 하는 일들이 바로 내일 그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에 더더욱 확신은 없다.
이 이름이 가진 뜻이 무색하지 않게 우리는 정말 해낼 수 있고, 정말 우리 팀이 화성에서 감자를 심어가며 생존하고 끝끝내 탐험을 마친, 그래서 이 시장에서 새로운 챕터를 열어가는 주인공이 되고 싶은 바람이다.
이름이 주어지면 보통
그 이름에 걸맞는 사람인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정도의 플라시보 효과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를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우리모두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