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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Dec 07. 2022

임산부의 바느질 태교

20대 초반부터 20대 후반까지 한 남자와 연애를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결혼을 했고 1년 뒤에 첫째 아이가 생겼다. 연애를 하면 으레 결혼을 하는 것이고,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갖는 것이 도리인 줄 알았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얘기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냥 내 부모가 그러했고, 주변 지인이 그러했고, 다들 그러니까 그런 줄만 알았던 것이다.


아이가 생기니 행복은 저 멀리 꿈나라로 여행을 가버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입덧이란 게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하루는 회사에 출근했는데, 평소에 나지 않던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속이 울렁울렁 메스꺼웠고, 또 어느 날은 냉면을 먹으러 갔는데 아무리 먹어도 냉면이 새콤하지 않아서 식초를 스무 번은 넘게 뿌려댔다. 그러다 결국 입덧이 심해져서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경단녀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임신 초기부터 냉장고 냄새는 왜 이리 지독한지, 밥 냄새는 왜 이리 토할 것 같은지 정말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신물을 계속 토하다가 입원까지 하게 되었고 살은 점점 빠져갔다. 

임신 중기 이후가 되자 이제 좀 살 것 같더라. 입덧이 줄더니 먹덧이 되는 끔찍한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자두, 살구, 청도복숭아 등 새콤달콤한 과일로 시작해서 평소에 좋아했던 밀가루 음식과 최애 빵을 먹고 또 먹어댔으니 살이 뒤룩뒤룩 찔 수밖에.

“이거 내가 먹는 거 아니야, 아이가 먹는 거야.”

임신하면 누구나 얘기하는 그런 얘기들을 나 또한 하고 있었다. 임당 수치 걱정하면서.




임신해서 배가 부른 채로 집에서 무얼 했느냐고? 아마 다들 비슷비슷할 것이다. 먹고, 자고, 놀고, 또 먹고, 자고, 놀고. 나는 특별히 놀게 없어서 태교로 ‘웃찾사’를 많이 봤다. 태교엔 웃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바느질을 시작했다. 글쎄, 바느질이 태교로 아이에게 뭐가 좋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용하게 집중하며 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아이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난 심심했기에 아이를 위해서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만들기 제일 쉬운 턱받이를 시작으로 모자, 배냇저고리, 아이의 장난감 딸랑이 공, 애착 인형 곰인형까지 만들 수 있는 건 다양하게 다 만들었다. 손싸개, 발싸개에 십자수를 놓기도 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열댓 개는 만들지 않았을까. 임신기간에는 바느질로 시간을 대부분 보냈다. 어깨가 뻐근해지고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 열심히 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남아도는 시간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과 아이를 위한 마음이 열심히 하게 만든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그럼 열심히 만든 내 아이를 위한 첫 작품들은 어떻게 됐냐고? 사랑하는 내 아이가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장난감을 갖고 놀며 ‘이거 내 거야’ 하며 한시도 떼어놓지 않아야 하는데, 참나 별 관심 없더라. 그렇게 힘들게 만든 배냇저고리는 모유 먹고 트림하다 토해서 다 누래 지고, 아이 키만큼 크게 만든 애착 인형은 무섭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더라. 이것도 결국 오래돼서 누래 지고, 손싸개, 발싸개는 자꾸 벗겨지고, 모자는 왜 안 어울리는 거야. 


고생 고생해서 만든 나의 작품들은 그냥 저 멀리 기억 어딘가로. 예쁜 상자에 담아두고 ‘이거 엄마가 널 위해 만든 거야’ 하며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짠’하고 주려고 했는데 다 망했다. 더러워지고 누레져서 아이가 기어 다닐 때쯤 하나씩 버렸다. 




만약 누군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 또 바느질 태교를 하겠느냐고 물어본다면 나의 대답은 ‘예스’.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던 것 같다. 내가 만든 작품들을 내 아이가 입고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었지. 그래서 더 열심히 만들었었고.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며 행복했었는데 결국 아이를 위한 나의 첫 작품들은 쓰레기가 됐다.


그래도 괜찮다. 토할 것 같았던 냄새로 죽을 듯이 힘들었던 입덧과 아이를 낳았음에도 먹덧으로 인해 남아 있던 내 살들은 너무 싫었지만, 어리바리한 솜씨로 책 보고 열심히 만들었던 그 순간들은 나에게 행복한 기억이다.

앞으로 경단녀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행복만을 꿈꿨던 나의 20대 여. 

드디어 엄마가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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