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수비수, 엄마는 공격수
요즘은 참 평화로웠다.
모처럼 잔소리도 줄고, 아이도 잘 따라주는 것 같았다.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사춘기 아이가 있는 집이 이리 평온하다는 건… 엄마라면 누구나 불길함을 느낀다.
척 보면 척인데, 이번엔 왜 그 징조를 못 읽었을까.
중2 아들, 학원을 모두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랜 고민 끝에 믿어보기로 했다.
대신 시험을 망치면 엄마 뜻을 따르자는 조건을 걸었고, 아이도 동의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가 나왔고, 나는 곧바로 플래너를 꺼내 1학기 복습계획을 세웠다.
조건도 걸었다.
“정해진 공부를 끝내면 게임 1시간.”
아이도 흔쾌히 승낙했고, 시작은 좋았다.
간식도 챙겨주고, 노래도 틀어주고, 분위기까지 만들어줬다.
아이도 신이 나서 열심히 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첫날 8시에 끝내던 공부가 이틀 후에는 7시에 끝났고, 며칠 지나니 5시 전에 마무리한다.
문제는 매번 100점이라는 것.
너무 잘해서 이상했다. 복습이니까 그런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단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문제집을 뒤졌다.
답안지가 껴 있었고, 뒷부분은 풀리지도 않았다. 줄 하나 없이 깨끗했다.
수학 문제집도 마찬가지. 식 하나 없이 답만 써놓았다.
나는 또 속았다.
믿어준 내가 잘못인가.
다 확인하지 않은 내가 어리석은가.
짜증, 실망, 자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간 아이를 믿고 학원을 끊어준 결정이 모두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랬어? 왜 답지 베꼈어?”
아이는 짜증을 부리며 욕을 했다.
대충 살다 자살하면 그만이라며 심한 말까지 내뱉었다.
그 순간, 이성을 잃고 손이 올라갔다.
더 있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 방문을 쾅 닫고 나와 침대에 누워 심호흡을 했다.
목이 찢어질 듯 아프고, 나보다 더 큰 아이의 등짝을 때린 내 손이 더 아팠다.
잠시 후, 아이가 문을 열었다.
표현이 서툰 아이가 입을 뗐다.
“진정됐어?”
“응.”
“그럼 왜 그랬는지 말해봐. 어려워서 그런 거야?”
“…응.”
나는 아직 아이를 잘 모른다.
그저 하기 싫어서, 혼날까 봐 대충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아이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틀리는 걸 두려워하고, 실패를 회피한다.
거기에 사춘기까지 더해져 모든 걸 밀쳐내고 있었다.
그날 밤, 챗GPT와 긴 대화를 나눴다.
결론은 단 하나.
틀려도 괜찮다는 걸 아니, 틀려야 배울 수 있다는 걸 계속 얘기해 주는 것이다.
계속 시도할 수 있게.
이후 나는 전략을 바꿨다.
답안지는 전부 숨겼고, 그림 그린 수첩은 공부가 끝나야 건네주기로 했다.
대신 노래 듣는 건 허용했다. (스스로 방해된다고 느낄 때까지)
단,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도 “끝나면 줄게” 한 마디만 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대답에 또 한 번 속아주는 척했다.
여전히 아이가 학교 가면 나는 또 방을 살핀다.
방해되는 것들을 치운다.
아이는 몰래 하고, 나는 몰래 치운다.
언제까지 이 전쟁을 계속해야 할까.
그럼에도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나았다.
아이는 조금 더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나는 조금 더 덜 화를 냈다.
아이를 믿는 건, 속아도 다시 믿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또 속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이를 사랑하기에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아이는 공격수, 나는 수비수다.
그리고 우린 여전히 한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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