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바늘 끝에 닿자마자 팡- 터질 것 같은 비눗방울 같은 꿈들이 있다. 서랍 한구석에 넣어두고, 꺼내보지 않는 꿈들. 공상이었다며 피식 웃게 만드는 것들.
그 꿈을 굽이굽이 꺼내고 싶은 날이 오기도 한다. 혹시 몰라, 비눗방울 위에 쌓인 먼지를 털고, 단열재를 덧대다 보면, 시간의 날카로움에도 끄떡없는 강철 비눗방울이 될 수도 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재단(이하 'HCB 재단') 방문은 포토 저널리스트라는 꿈을 상기시켰다.
포토 저널리즘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중학생 때부터 조리개는 제3의 동공이었고, 셔터는 제6의 손가락이었다. "미디어는 감각의 확장"이라던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한의 말처럼 미디어의 하나인 카메라는 나의 확장된 감각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도사진가들로 구성된 자유 보도사진작가 그룹인 '매그넘 포토스'의 회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포토 저널리즘의 거장이자 매그넘 포토스의 창시자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을 들춰보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하곤 했다. 퓰리처상을 타는 나, 포토그래퍼로 AP통신에 들어가는 나,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라이카의 앰배서더가 되어 사진 전시회를 여는 나. (하하) 언젠가는 류 배우를 몹시 부러워하기도 했더랬다. 연예인들의 취미는 그 자체로 홍보 효과가 있어서인지 라이카 같은 기업이 나서서 전시회를 열어주기까지 한다.
사진에 별 관심 없는 H와 도착한 HCB재단, 조용한 골목 내 위치한 새하얀 건물은 번잡한 파리 시내와 단절된 섬 같았다. 슬라이드 도어 앞에는 입장권을 구매하는 프런트 데스크와 사진집과 사진엽서들이 놓인 진열대가 있었다.
지상 0층에는 사진 갤러리 1개와 재단 사무실, 지하 1층에 사진 갤러리 1개가 있었다. 브레송의 사진이 많을 거란 예상과 달리 사진 갤러리에 브레송의 사진은 몇 점 없었다. 대신 재단의 후원을 받는 작가의 사진들이 있었다.
전시는 계속 바뀐다고 했다. 내가 갔을 때는 Carolyn Drake의 'Men Untitled', Ruth Orkin의 'Bike Trip, U.S.A., 1939' 전시 중이었다. 전자는 얼굴을 가린 중년 남성들의 몸을 주제로 한 전시였고, 후자는 Ruth Orkin이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을 모은 전시였다.
Carolyn Drake의 'Men Untitled'
Carolyn Drake의 'Men Untitled'커뮤니케이션의 근본적인 구조가 일방적 불균형 커뮤니케이션이어서일까, 특히 사진 앞에 설 때면 배제된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수용해야만 할 때면 단절감을 느끼곤 했다.
단절되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피로감이 쌓였다. 어느새 무언가를 감상하고, 일방적인 메시지를 수용하는 행위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피로하게 하는 소모적 행위로 느껴졌다.
Ruth Orkin의 'Bike Trip, U.S.A., 1939'
Ruth Orkin의 'Bike Trip, U.S.A., 1939'
Ruth Orkin의 'Bike Trip, U.S.A., 1939'HCB 재단에서 관람한 두 개의 사진 전시는 달랐다. 두 개의 전시는 분명 낯설었지만, 단절감을 느낄 새가 없었다. 피로하지도, 소모적이지도 않았다. 전시 형식이나 구성이 특별하고, 장소성이 주는 감각이 생소해서도 있겠지만 내가 원했던 바로 그것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진에 대한 새로운 레퍼런스나 인사이트를 주길 바랐다. '오 이렇게도 찍을 수 있구나! 이런 것도 찍을 수 있구나!' 감탄하고, '오, 그때 그 작가는 이 피사체를 그렇게 찍었었지. 나도 한 번 그렇게 찍어봐야겠다.' 내가 찍는 사진에, 아주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HCB 재단에서 본 사진 전시들은 내가 바라는 '바로 그것'을 주었다. 남은 여행 기간 동안 HCB 재단에서 본 사진들을 레퍼런스 삼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즐거웠다. 다음에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