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예요, 장그래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원인터. 15년 만이다. 계약 기간 만료 후 원인터 근처는 지나다니지도 않았다. 영업 1,2,3팀부터 철강팀, 섬유팀과 인사팀까지, 원인터에는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원인터의 모두를 피해다녔던 건 아니다. 입사 동기 석율, 백기, 영이와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만났다. 신입 시절, 풋풋하고 유망했던 우리는 낡고 지쳤다. 초롱초롱 맑게 빛나던 눈빛은 입사 3개월에 접어 들었을 때부터 동태 눈깔이 되었고, 그 동태 눈깔마저 수액과 영양제, 건강기능식품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모두들 만날 때마다 죽을 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힘없이 부딪치는 소주잔 소리보다도 뱃골부터 끌어올린 한숨 소리가 더 컸다. 원인터 사정이 안 좋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것은 내가 원인터의 그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원인터 사정이 요즘 안 좋은데 온길은 어떻냐는 질문을 듣게 될 때면 정말이지,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사람 좋은 웃음 보이며 얼버무렸지만, 속으로는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알까. 원인터 사정은 술자리의 안줏거리 정도지만, 온길 사정은 생존과 맞닿아 있음을. 지옥에 들어오지 않은 이들은 지옥이 어떤 곳인지 절대 알 수 없다.
원인터 퇴사 후, 오 차장님이 차린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에 입사했다. 입사 이래 회사 사정이 좋았던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직원 월급을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 사장님은 스스로의 월급을 동결한 지 오래였다. 매 명절마다 오 사장님은 떡값 대신 요르단 현지 마트에서 산 기름 두 병을 건넸다. 오 사장님도, 김 과장님도, 나도 지옥이란 걸 알고 이 판에 들어왔다. 그러나 지옥은 우리의 예상보다도 더 잔인했다.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만 수십 번을 했다. 그럴 때면 마음을 억눌렀다. 내가 감히 퇴사해도 될까.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바둑밖에 없던 내가 사람 구실을 하도록 기다려주신 분들을 버리고 떠나도 되는 걸까. 그렇게 버텼다. 누구 말마따나, 버티는 것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게 잘하는 나였다.
그러나 그나마 날 버티게 했던 옛 정이 유통기한을 다하는 날은 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나날이 가라앉는 배에서 필요한 건 우정을 생각해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탈출해서 살아남는 것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혹여나 누가 볼까봐 뒤를 힐끔거리며 구인 사이트에 올라온 경력직 구인 글들을 읽고 닥치는 대로 지원했다. 병원에 가야한다며 연차를 쓰고 면접장에 향하는 날에는 죄책감에 마음이 괴로웠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 또한 억눌렀다. 죄책감보다는 생존이 급했기에.
오늘을 위해 그간 착실히 회사를 옮겨 다녔다. 온길에서 회사 규모는 비슷하지만 업계에서 꽤나 알아주는 대웅으로 한 번. 대웅에서 중견기업 고려로 한 번. 그리고 오늘 원인터. 원인터라면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의 종착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경력 점프를 하며 옮겨다닐 때마다 연봉도, 직급도, 회사 규모도 변했다.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 목에 걸린 임시 사원증 정도. 얼마나 더 견뎌야 임시라는 꼬리표가 사라질까. 나는 오늘, 끝이 안 보이는 또 하나의 터널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