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 K-가좆 연대기

by 배근필

태어나보니 할아버지가 없었다. 두 분 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손자손녀 가리지 않고 똑같이 대해주셨다. 제사도 없었고, 성묘도 없었다.


버라이어티 한 삶을 살아가는 양 가 구성원들의 영향이었을까. 집안 어른들은 내게 조언할 여유도,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여유도 없었다. 조현병, 은둔형 외톨이, 알코올 중독자, 게임 중독자, 60대 캥거루족, 금수저.. 이혼, 혼외자, 재혼, 사별... 다들 스스로의 오늘과 내일을 짊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건지.


다만 다독가가 되길 바라던 부모님만 빼고는 그 누구도, 내게, 무언가가 되길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든 아무도 관심 없었다. 자유였다.


그래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던가, 사촌들과 비교를 당한다는 친구들의 명절이 다른 나라의 명절처럼 느껴졌다.

<장손>을 보았다. 이건, 다큐다. 'K-가좆' 연대기를 담은 역사, 또는 인류학 다큐멘터리. 가족주의의 폭력성이 빚어내는 비극, 가족 구성원 그 누구도 제대로 호흡할 수 없는 비극을 이토록 아름답고 서늘하게 내보인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전통적 가부장제와 가족주의의 그늘에서 빗겨 난 나도(완전히 빗겨나갔다고 할 수는 없다만) PTSD 생길 지경이었으니, 가족주의의 날개 아래 계셨던 분들은 과다복용으로 지장이 가지 않도록 조금씩, 조금씩 시청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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