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MJI Aug 05. 2024

아우론조 산장과 Deer House

사슴이 있는 집

이 넓은 돌로미테에서 오늘은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유명한 트레 치메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정확히는 트레 치메를 가기 위해 첫 번째로 들리게 되는 아우론조 산장에 가보기로 했다. 그 산장을 시작으로 4시간을 걷는 하이킹 코스가 있고, 하이킹을 하는 중에 트레 치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못 본다는 뜻이다. 1시간 20분 걸린다는 바흐알프제 하이킹에 3시간이 걸렸으니, 트레 치메 하이킹에 8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헛된 꿈을 꾸었다. 심심해 형제가 조금 도와주면 어쩌면 트레 치메 한 귀퉁이를 슬쩍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우론조 산장에 도착했다. 굽이굽이 끝없는 산봉우리들에 또 탄성이 나왔다. 사방이 산이니 동서남북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 와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걷던 길을 돌아 나와 화장실 입구에 섰는데 한 남자가 우리를 막더니 1유로를 내라고 했다. 우리는 아직 환전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만 난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스위스 프랑이라도 내고 싶은데 지갑을 숙소에 놓고 왔다. 카메라 가방을 뒤져 백 달러 짜리 지폐를 찾아냈다. 나는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 애를 쓰며 남자에게 다가가 백 달러를 내밀었다. 남자는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말했다. 

“달러 안 받아요!” 

화가 난 것 같았다. 나였어도 화가 났을 것 같다. 달러를 어디에 써? 그리고 동전 몇 개를 거슬러 줘야 해? 몇 초가 지났을까. 남자는 팔을 내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들어가세요!” 

불편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쓰고 나와 말했다. 

“미안합니다.” 

다음에 또 여행을 하면 환전부터 하리라 다짐했다.


우리는 일군의 관광객에 섞여 아우론조 산장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심심해 2호는 시작부터 업어달라고 했다. 산속에 왜 있는지 모를 십자가 탑 인근 평원에서 우리는 멈추었다.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즐긴 후 후퇴를 결정했다. 2호는 다시 아빠에게 업혔고, 1호는 씩씩하게 걸어갔다. 1호는 조기 퇴각에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르며 앞장서 걸어 나갔다. 

“나는 문어 잠을 자는 문어~”
 그 소리를 들은 어느 한국인 어르신이 귀엽다고 말을 걸어주셨다. 이토록 귀여운 생명체와 함께여서 나는 여기까지 와서 트레 치메를 안보고 간다. 그래도 행복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숙소 주인이었다. 

“뜰에 사슴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보여주세요. (놀랄 수 있으니) 조용히 해야 해요.” 

이 숙소 이름이 Reddish Deer House인 이유가 이거였어? 형제는 목욕 중이라 일단 나부터 베란다 나무 난간으로 달려갔다. 밝은 갈색 털을 가진 날씬한 짐승 한 마리가 보였다. 뿔은 없었다. 남편을 불러 함께 보았다. 밑을 내려다보니 주인장 부부도 사슴을 보고 있었다.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사슴은 곧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또 아기 사슴을 찾아냈다. 이번에는 심심해 1호도 보았다. 체크 아웃 후 이 숙소에 별 다섯 개를 주었다.


이전 12화 가이우 고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