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다. 우리는 여유 있게 마을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이탈리아 북부 시골의 길거리 음식도 사 먹고 작은 그림도 한 점 사고,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런데 돈이 없다. 우리는 환전할 생각을 못했다. 카드 리더기를 갖고 있는 주민은 없는 것 같았다. 눈으로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대장장이에게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서 있었다.
숙소에서 1시간 거리인 파소 가이우(Passo Gaiu)라는 고개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시우시(Siusi)나 세체다(Seceda)에 갈까 했는데 내비게이션에 넣어보니 가는 데만 3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나왔다. 당황한 내게 남편이 적절한 비유로 웃음을 주었다.
“돌로미테가 속초 정도 되는 줄 알고 왔는데, 와보니 강원도였구나.”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고 오토바이족들이 우리를 지나쳐 갔다. 고갯길을 올라 차를 세우고 돗자리를 폈다. 식당이 있는 건물 하나를 제외하면 시야가 탁 트인 이곳, 한편에는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이 깔려있는데 다른 한편에는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묘했다. 산이 바다처럼 이곳저곳에서 일렁였다. 멀리 가장 끝에 삐죽 보이는 저 봉우리는 여기서 얼마나 되는 거리일까 궁금했다. 이런 곳에 살면 시력이 좋아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락으로 싸 온 샌드위치를 먹고, 번거로워도 굳이 싸 온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냈다.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그림에 담을 수가 없구나.”
심심해 1호의 말이었다. 2호는 여기까지 올라와서 졸라맨을 그렸다. 그의 마음에 알프스는 없는가 보다.
빗방울이 조금 더 강해져 돌아가기로 했다. 코르티나 담페초 마을에 들러 장을 보고, 다시 숙소로 향하는 길에 인생 처음으로 우박을 만났다. 알갱이가 차를 마구 때렸다. 마트에서 산 식전빵과 감자칩을 맛본 남편이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여기 사람들은 뭐 하나를 대충 만들지 않는구나.”
그런가? 하긴 많은 명품이 이탈리아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