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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JI Aug 05. 2024

칼레자 호수와 베로나

돌로미테, 안녕

칼레자 호수


여행 준비 단계에서 돌로미테에 가겠다는 결심을 한 건, 선배의 블로그에서 칼레자 호수의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신비로운 초록색 호수 위로 세모꼴 나무 숲이 빼곡했다. 알프스 여행의 대미를 칼레자 호수로 장식하기로 계획했다. 우리는 칼레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사람들을 따라 걸어갔다. 칼레자 호수 방향이라는 팻말은 보이는데 이상하게 한적했다. 우리는 숲으로 들어섰다. 심심해 2호는 또다시 아빠에게 업혔다. 이제 우리 밖에 없다. 이상하다? 스틱까지 사용해서 하이킹을 하는 어느 커플에게 여기가 칼레자 호수 가는 길이 맞느냐고 물었다. 둘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화를 하고는 쭉 가면 오른편에 있다고 말해 주었다. 조금 가니 정말로 호수가 보였다. 그런데 좀 멀리 있었다. “돌아갈까?” 묻자 남편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를 외쳤다.


우리는 한참 더 숲길을 걸어 칼레자 호숫가에 도착했다. 호수 반대편에서 관광객 무리가 우리 쪽을 바라보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주차장에서 호수로 직행하는 길이 있었건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트레킹 코스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하고 싶던 하이킹을 더 하고 호수도 제대로 경험했으니 잘 된 일이었다. 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었어도 호수는 아름다웠다. 다만 상상했던 것보다는 작았고 대자연보다는 인간 세상에 속한 호수였다. 내 기대와 상상이 과도했다.


베로나


도시의 햇빛은 뜨거웠다. 그동안 고지대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셨던 우리는 주차장에서 숙소까지 1킬로 남짓 되는 거리를 걸으며 기진맥진했다. 남편은 칼레자에서 심심해 2호를 업고 하이킹을 한 데다가 종일 운전을 했으니 몹시 피곤했을 터였다. 나도 여행 중반 감기에 걸린 후 고도 차이에 적응을 못해 귀가 먹먹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라면을 끓여 먹고 바로 잠에 빠졌다.


다음날 눈을 뜨고서야 숙소를 둘러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베로나 도심 한복판 어느 건물의 옥상에 있는 집이었다. 살기에는 덥고 불편한 집이지만, 기껏 1~2박 하는 여행객에게는 멋진 공간이었다. 천장의 반이 유리여서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자동차 여행객을 위해 무료 주차 서비스를 제공한 것도 그렇고, 숙소 주인은 똑똑한 사람이다. 인테리어도 멋졌다. 특히 화장실이 또 유광 타일이었다. 한국에 가면 내 집 욕실을 이걸로 바꾸고 싶다. 향후에 모방할 요량으로 사진을 몇 장 찍어 두었다.


밖으로 나왔다. 베로나는 핑크솔트 색상의 여성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과연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될 만했다. 도시를 모두 둘러볼 시간은 없었다. 카스텔베키오 다리를 보고 아레나를 구경했다. 아레나에서 형제는 검투사 복장의 남자에게 반해서는 하염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결국 기념품으로 조그만 금속 투구를 샀다. 배가 고팠다. 11시에도 문을 연 브라 광장의 어느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맛이 없어도 손님이 찾을 수밖에 없는 위치의 식당이었다. 우리는 요리 네 개를 주문해서 접시를 깨끗이 비운 후 제네바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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