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한 곳이자 마감한 곳, 제네바에서 우리 가족은 지인 신세를 많이 졌다. 초반 이틀간 선배의 안내로 바스티옹 공원에 갔고, 구시가지를 거닐었다. 시청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칼뱅과 루소의 생가를 지나쳤으며, 칼뱅이 설교를 했다는 생피에르 대성당에 들어갔다. 살레브 산을 차로 올라 알프스를 조망하고, 제네바를 한눈에 내려보았다.
베로나에서 돌아와서는 동기의 집에서 신세를 지며 온전한 하루를 제네바에서 보냈다. 꼭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우리는 프랑스 국경 근처 동네를 걷다가 트럭에서 피자 한판을 사서 나눠 먹고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점심시간쯤 되어 트램을 타고 레만호로 나갔다. 제또 분수 코앞까지 가서 한낮의 열기를 식히고, 호숫가 테이블에 앉아 핫도그와 파니니를 주문해 먹었다. 참새가 겁 없이 테이블 사이를 날아다녔다. 자기가 파리인 줄 아는 건가. 어느 참새는 내가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서 정지 비행을 시전 했다.
형제는 빵 부스러기를 가져다가 오리 먹이 주기 놀이에 빠졌고, 우리 부부는 번갈아가며 졸았다. 놀만큼 논 형제는 배를 타고 싶다고 졸랐다. 잠이 깬 남편이 조그마한 노란 배를 빌렸다. 앞 좌석에 남편과 형제가 앉아 배를 조종했고, 나는 뒷 좌석에 앉아 또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트램을 타고 돌아와 마지막으로 신선한 산딸기와 방울토마토를 사다가 비장한 마음으로 씻어 먹었다(아프리카 돌아가면 못 먹는다). 집주인이 귀가한 후 함께 저녁을 차려 먹고 밤 9시가 거의 다 되어 다시 집을 나섰다. 어느 기찻길 옆에서 레만호와 론강 물이 합류하는 광경을 보았다. 팔레트 위에서 물감이 섞이지 않은 것처럼 서로 다른 물빛이 제 길을 가는 사이, 중간 어느 지점에서 두 물이 만나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음날 공항에 가는 길에서도 투어는 끝나지 않았다. 집주인은 국제기구 건물을 하나하나 소개해주었다. 회원국 국기 깃대로 앞마당을 채워놓은 UN 본부의 위용이 인상적이었다.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추상적인 국제협력이라는 단어, 앞으로 그 단어를 쓸 때는 UN 본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