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별을 보고 숲 속을 걷고 싶었던 나는, 이번 여행으로 버킷리스트를 이루었나? 여행 내내 하루도 밤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다. 계절이 여름이다 보니 밤 9시가 되어도 날이 밝았다. 평소보다 많은 활동량에, 밥 해 먹고 설거지하고 짐 싸느라 분주했고 할 일이 끝나면 바로 곯아떨어졌다. 숲을 걸었나? 내가 걸은 알프스에는 숲이 없었다. 대신 낮은 풀과 들꽃을 만났다(계획에 없이 칼레자 호수 근처를 하이킹했던 그때 한 번 숲을 걷긴 했다).
그래도 버킷리스트를 이룬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보지 않았을 뿐 맑은 날 밤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을 거다. 숲을 걸어도 좋았겠지만 들꽃을 내려다보는 것도 기쁨이었다. 자연을 마음껏 눈에 담고 듣고 피부로 느꼈다. 바흐알프제를 걸을 때 행복했고, 수네가에 내려 라이제 호숫가로 걸어 내려가는 길에서 또다시 즐거움이 나를 채웠다. 인적 없는 들판에서 마터호른을 마주했던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형제에게 물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둘의 공통적인 응답은 이랬다.
1위 : 제네바 레만호에서 배를 탔을 때
2위 : 로이커바트 온천에서 워터 슬라이드를 탔을 때
3위 : 라이제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았을 때
형제는 배 운전대를 잡고, 미끄럼틀을 타고, 물고기를 잡는 자신들의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반면 그들은 자연에서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마터호른이 정면에 보이는 라이제 호수에서 4시간을 넘게 놀았던 2호는, 그날 밤 숙소 벽에 걸린 마터호른 그림을 보고 자신이 그 아래 있다가 왔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연을 알아보고 놀라고 기뻐하는 마음은 우리 DNA에 각인된 것이 아니라 살면서 학습하는 것임을 알겠다.
남편에게도 물었다. 그는 다 좋았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순간이 가장 좋았다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돌로미테 Cadore 마을에 도착한 저녁, 숙소 문을 열고 들어와서 받았던 특별한 첫인상과 함께, 다음날 아침 주방 창을 열자마자 밀려들었던 마을 축제의 열기를 최고의 순간의 하나로 꼽았다.
4인 가족이 된 지 5년 차, 이번 여행으로 우리는 괜찮은 팀이라는 것, 팀의 일원으로 다들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남편과 나는 손발이 잘 맞았고, 항상 의견 일치를 보았고, 착오와 실수가 있어도 서로를 포용했다. 심심해 1호는 엄마 아빠와 어깨를 맞대는 대화 파트너로 성장했다. 우리 부부가 하는 모든 말을 듣고 대꾸를 했다. 2년 전만 해도 조금 걸으면 아빠에게 업히거나 동생 유모차에 올라탔는데, 이번 여행에서 제 힘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박수를 보낸다. 심심해 2호도 마찬가지다. 이제 가방을 쌀 때 기저귀도, 유모차도 필요하지 않다. 어딜 가도 뭘 해도 어엿이 1인분을 차지하는 귀염둥이다.
여행 다녀온 지 일주일, 아이들은 쿨하다. 과거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고 있다. 반면 남편은 그 답지 않게 여행 후유증에 빠져서는 며칠 동안 공허하다고 했다. 나는 돌로미테라는 글자가 프린트된 티를 입고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쓰며 추억을 곱씹는다. 나는 가족 여행의 맛을 알아버렸다. 다음 여행을 꼼지락꼼지락 계획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