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MJI Aug 05. 2024

돌로미테에서 이방인이 되다

Valle di Cadore라는 이름의 특별한 마을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날이다. 남편의 부담을 덜려면 오늘 같은 날 내가 운전을 조금은 해야 한다. 그러나 운전대 잡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수고로 무사히 국경을 넘었다. 밀라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돌로미테까지 쭉 달렸다. 다시 산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성처럼, 벽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었지만, 들어갈수록 뾰족한 봉우리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산이 빼곡해서 부피감을 가늠할 수 없었다. 설산은 보이지 않았다.


돌로미테에 와서도 숙소가 있는 Valle di Cadore까지 한참을 달렸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마을 축제 때문에 차량 진입을 막아 놓았다. 어떤 사람은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여자들은 하이디를 연상시키는, 레이스가 들어간 흰 얇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길거리 음식도 보이고, 꽹과리 같은 타악기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지나가던 차가 경적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은 확성기 소리로 응했다. 골목길 전체가 들썩였다. 그간 여행이나 출장으로 다녔던 어떤 장소보다도 내 존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예약한 숙소가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좁은 골목에 오래된 건물이 들어찬 이 마을은 허름해 보이기까지 했다. 숙소 안에 들어섰다. 예상 밖으로 내부는 튼튼하면서도 집주인의 취향이 드러나도록 정성스레 꾸며져 있었다. 여러 톤의 나무 색이 섞여있는데 이상하게 촌스럽지 않았다. 커튼을 열어두었지만 창마다 작고 얇은 흰 천이 달려있어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었다. 가장 시선을 끄는 건 에메랄드 빛 유광 타일이 깔린 욕실이었다. 변기에 앉아서도 숲을 볼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모던하지 않은 숙소의 모습에 매혹되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10화 마터호른과 라이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