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이었다. 그가 내 마음에 훅 들어온 건. 시원하고 당찬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변 여자 친구들에게 물어도 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동경하는 그를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내 모습은 선배를 짝사랑하는 스무 살 새내기 같았다. 그에게 눈독 들이는 경쟁자들이 부쩍 많아진 걸 느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겠지만 상관없었다. 그중 하나라도 좋았다. 용기 내어 그의 주변에 얼쩡거리기 시작했다. 다가가려다가도 넘치는 매력과 에너지 때문에 자꾸 주춤거렸다. 함부로 덤비다가 몸도 마음도 다칠 것 같았다. 내가... 당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쩌다 축구를 시작했어요? 예능 보고 시작하신 거예요?" 취미로 축구를 배우고 있다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여자 축구의 존재감이 느껴진 건 사실이지만 보기만 하는 스포츠에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축구에 진심인 출연자들을 보며 '저렇게 까지 할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처음 축구를 배워보고 싶어진 건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책을 읽은 후였다. 도서관에서 ‘여자 축구’라는 단어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나와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축구가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노릇인가 어이없을 정도였다. 우아한 헛다리와 그물 안으로 감겨들어가는 공의 궤적과 관중들의 얼굴에 역력한 감동의 흔적. 어마어마한 규모의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지만 세상이 잠시 숨을 죽인 것 같은 시간이었다.’
축구에 대한 애정과 흥분이 그대로 묻어난 글을 읽으며 도대체 어떤 경험이길래 이런 문장으로 표현되는 걸까 궁금해졌다. 책은 자의로 펼쳐보았지만 혼비 작가님이 나를 글 솜씨로 현혹시켜서 축구장으로 밀어 넣었다. 활기 넘치는 분위기 뒤에 흐르는 적당한 긴장감, 근사하게 그을린 피부와 탄탄한 종아리, 질끈 묶어 올린 머리와 이마 옆쪽으로 흐르는 땀방울. 어디서 주워 본 듯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면치기 하듯 후루룩 책을 읽어 내렸다. 책을 덮고 바로 집 근처 여자 축구 동호회를 알아봤다. 가장 가까운 동호회가 지하철역 네 정거장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여자 축구 예능의 여파 때문인지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서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자리가 없다고 하니 오히려 더 안달이 났다. 그렇지만 동시에 축구장에서 거칠게 뛰어다니는 내 모습이 쉽게 상상이 안 가서 바로 시작을 못하는 게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했다. 축구공을 하나 사서 아파트 공터에서 기본 패스 연습을 하며 한 달을 지냈다. 직접 가서 공을 차 보면 생각이 달라질까 봐 축구화를 사는 건 보류했다. 혼자 하는 연습에 슬슬 흥미를 잃어가던 어느 날 동호회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체험 오신 분 맞으시죠? 반갑습니다. 저는 홀란드, 여기는 메시, 저기는 박지성이에요. 활동 닉네임 뭘로 하실래요?’
"어... 저는 아는 선수가 별로 없는데~ 혹시 이을용도 있나요?"
"푸하하! 을용타! 강렬하네요. 그럼 지금부터 을용님 이라고 부를게요."
잔뜩 긴장한 와중에 떠오르는 아무 선수 이름 중에 얻어걸린 닉네임이었다. 중국과의 국가 대표 전에서 매너 없는 상대팀 선수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이을용 선수처럼 언젠가 축구공을 갈겨버리겠다는 깊은 뜻! 은 전혀 없었다. 한일 월드컵 전설의 태극 전사 이름 중에 고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어쩌다 그 이름이 튀어나온 건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그렇게 나는 '을용님'이 되어 준비 운동을 시작했다.
첫날 축구장에서 목격한 신선한 장면들을 구경하느라 닉네임 이슈는 금세 잊혔다. 여자 축구 회원들은 두 시간 내내 '호날두, 오늘 왼발 좋다~', '지성님 패스 미쳤다!'며 서로의 플레이를 응원했다. 찬스를 놓쳤을 땐 세상이 끝난 듯 소리 지르며 안타까워했다. '저렇게 까지 진심일 일인가?' 싶었던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었다. 첫날이라 교체 선수로 투입되어 잠깐 뛰었을 뿐이지만 내 포지션에 대한 책임감이나 긴장감이 엄습했다. 요령 없이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했으니 금방 헐떡거렸다. 놀란 심장 소리를 진정시킬 틈도 없이 다시 공이 있는 쪽으로 일단 달려야 했다. 골대를 살짝 벗어난 공을 보며 어느새 나도 용가리처럼 불을 뿜고 있었다. 패스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신입 때문에 우리 팀원들은 고생했지만 계속 인자한 미소를 보내주었다. 반대로 상대팀과 몸싸움을 할 땐 거침이 없었다.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용가리들이 필드 위를 뛰어다녔다. 무지하게 근사해 보였다. 그들과 섞여 뛰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화장기 없는 얼굴들이지만 생기가 넘쳤다. 축구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에 먼저 적응해야 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어설프게 점잔 떠는 게 더 촌스러울 것 같았다. 바로 내 얘기였다. 흡사 알몸을 내놓고도 깔깔거리는 여자 목욕탕의 활기 속에서 나는 아직 어설프게 수건을 걸치고 두리번거리는 뜨내기 같았다. 용가리들이 가득한 쥐라기월드에 나처럼 용가리 흉내를 내는 초식 동물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의기소침했다. 팀에 지지리도 도움이 안 되는 나를 감싸주는 대인배 팀원들이었지만 자꾸 미안한 플레이만 반복하니 면목이 없었다. 화요일 밤마다 축구장으로 향하는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축구 학원에서 보충 연습이라도 할까 싶었는데 거리가 너무 물어서 몇 번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연애를 할 때도 내가 너무 좋아해서 불편한 사람보다는 내 맘이 편해지는 사람 만나랬어. 축구는 매력 있지만 나랑 인연이 아닐 수도 있어.'라며 시들해지는 열정을 합리화했다. 겨울이 되어 눈 때문에 야외 축구장 이용이 자주 힘들어지면서 이대로 자연스럽게 축구랑 멀어지나 싶었다.
그런데 올해 학교에 교사 축구 동아리가 생겼다. 이번에 다른 학교에서 전입 온 선생님들 중에 동아리를 이끌어 줄 인재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었다. 평소에 친목 생활보단 집에 가서 혼자 쉬는 걸 선호하지만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신청했다. 심지어 열심히 가입을 홍보하고 다녔다. 급식실에서 인사만 겨우 하고 지내는 직장 동료들과 팀 스포츠를 하는 게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긴 했다. 다행히 그 걱정은 첫 모임날 사라졌다. 뭐든 열심히 하고 보는 대부분 선생님들의 성격상 축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나와 비슷한 생초보들이 대부분이라 서로의 플레이가 어이가 없었다. 공 대신 신발이 날아가고 터치라인도 없는 막무가내 동네 축구였다. 축구동아리 출신인 신규 선생님이 회장을 맡아 진두지휘하고 연차가 두둑한 부장 선생님이 후보 선수로 대기하며 응원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체육관에 모여 발길질을 하는 모습이란 어딘가 통쾌한 구석이 있었다. 공 앞에서는 그저 분홍조끼팀, 노란 조끼팀의 일원이었다. 패스 잘하는 팀원, 몸싸움 잘하는 팀원일 뿐이었다. 방과후 학교를 마치고 늦게 하교하던 몇몇의 아이들이 체육관 옆을 지나가다가 문틈에 붙어 우리의 경기를 구경했다. 선생님들이 공 하나 두고 씩씩거리고 있으니 신기할 법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 모임 첫날 내가 두 골을 넣어 득점 왕이 되어버렸다. 남자 선수는 어시스트만 하고 골을 넣지 못한다는 배려 넘치는 규칙 때문에 나는 마무리로 발만 가져다 댄 것이었지만 그렇게 됐다. 축구 동호회를 몇 달 다니며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을 만큼은 훈련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역시 학원 몇 달이라도 다녀본 사람은 달라!", "샘이 우리 팀이라서 너무 든든해요!" 얻어걸린 골에, 과분하게 쏟아지는 칭찬에 나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신이 났다.
근력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가서도 마무리로 인사이드킥 연습을 했다. 피티 선생님이 무려 전직 축구선수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맘마미아!"하고 외쳤다. 내게 이 구역의 축구왕이 되라는 신의 뜻인 것만 같았다. 그 후로 개인 피티 시간에 근력 운동보다 축구 연습 팁을 전수받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툭! 툭! 요즘은 헬스장 벽에 대고 패스 연습을 하며 근력 운동을 마무리한다. 공 앞에서 아직 나는 삐그덕거리는 로봇 같다. 남자 선생님들이 다 만들어서 주는 골찬스도 대부분 날려버린다. 그렇지만 못해도 잘하고 싶은 게 생겨서 설렌다. 교사 배구 동아리는 많지만 축구 동아리가 생기는 건 드문 일이라고 들어서 수요일마다 감사하며 동아리로 향한다. 학교 안에 공차기 동료들이 생기니 든든하다. 아이들에게 자랑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육 시간에 축구도 자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쭈뼛쭈뼛하던 여자 친구들이 악을 쓰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국가 대표팀 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뿌듯하다. 무엇보다 축구왕을 꿈꾸며 운동복과 축구화를 챙겨 나서는 수요일 출근길의 발걸음이 설렌다.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