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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선생님은 맞는데요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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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람티 Jul 14. 2024

똑같이 사랑하는 척

"일회용 숟가락은 비닐 뜯어서 사용하세요. 비닐은 쉬는 시간에 꼭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선생님, 비닐 안 뜯고 쓰는 사람도 있어요? 당연히 비닐은 뜯어야 되는 거 아닌가?"

또, 욱할 뻔했다. 다행히 꾹, 참았다. 참았다기보다는 입을 닫았다. 입을 열면 험한 말이 콸콸 쏟아질 것 같았다. 현우의 말에 하루에도 두 세번씩 속이 긁힌다. 그 때마다 지난주의 '운동장 버럭 사건'을 떠올리며 숨을 크게 내쉰다. '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

지난주 체육 시간, 거의 두 달만에 피구 시합을 했다. 피구 시합을 잘 안하는 이유가 있는데 일단 아이들 반응은 좋지만 열의 일곱 번은 누가 다치거나 싸움이 나기 때문이다. 그 날은 열의 일곱번 중 하나였다.

"야, 나 지금 말하고 있잖아. 넌 입 다물라고!"

현우였다. 보통 다른 친구들이 말하는 도중에 현우가 끼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반대인 모양이었다. 자기 맘대로 안 되면 친구들에게 가르치듯 호통 치는 현우의 말투가 그 날도 무척이나 거슬렸다.

"너 친구한테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너한테 그런 말 한 적 있어? 나도 그런 말 안 하는데 네가 왜 친구한테테 입을 다물라 말라야? 뭐가 그렇게 잘났어? 네가 선생님이야?!!!"

학생 앞에서 내 본 가장 날선 소리였다. 내가 쏘아댈 수 있는 가장 차가운 눈초리도 함께였다. 그런데 장소가 운동장 한 가운데였다. 마지막 교시라서 일,이학년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님들이 멀찌감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X됐다... 신고 당하는거 아니야?'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속에서 펄펄 끓어 올라온 큰 소리에 스스로 놀라서 주춤했다. 쫄보 선생 모드로 돌아왔다. 정확히 어떤 단어들을 뱉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현우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으니 꽤나 성긴일회용 숟가락은 비닐 뜯어서 사용하세요. 비닐은 쉬는 시간에 꼭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선생님, 비닐 안 뜯고 쓰는 사람도 있어요? 당연히 비닐은 뜯어야 되는 거 아닌가?"

"야, 나 지금 말하고 있잖아. 넌 입 다물라고!"

학생 앞에서 내 본 가장 날선 소리였다. 내가 쏘아댈 수 있는 가장 차가운 눈초리도 함께였다. 그런데 장소가 운동장 한 가운데였다. 마지막 교시라서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님들이 멀찌감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X됐다... 신고 당하는거 아니야?'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악성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뉴스가 머리속을 떠다녔다. 속에서 펄펄 끓어 올라온 큰 소리에 스스로 놀라서 주춤한 거였다. 금세 쫄보 선생 모드로 돌아왔다. 정확히 어떤 단어들을 뱉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현우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으니 꽤나 고약한 말들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교실에서 큰 소리를 잘 '안' 낸다. 몇 번 오늘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분노 조절이 안 되어 친구 목을 졸랐던 아이, 계단을 다섯 칸씩 뛰어내리는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리던 아이 앞에서 그랬다. 그럴 법한 상황이었지만 큰 소리를 낼 때마다 시원하다기보다는 뒤가 찝찝했다. 기운이 쭉 빠져서 퇴근하고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못 먹는 매운맛 떡볶이나 마라탕을 시켜서 속을 뒤집어놨다. 배가 아플 때까지 야식도 먹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하는 건 둘째 치고 나를 위해서 큰 소리는 내지 말아야지, 너무 힘 빼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다짐했던대로 한 학기가 조용히 잘 넘어가나 싶었다.

선생님의 버럭 모드를 한 학기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처음 마주한 아이들은 꽤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뭐지? 갑자기 왜 저러지?','뭐야, 저럴 일이야?' 정도의 상태이지 않았을까. "내가 절대 그냥 안 넘어가는게 몸싸움, 따돌림, 무시하는 말 하는 거야. 그럴 땐 나도 좋게 말 못해. 누구든 마찬가지야. 알겠어...요?" 버럭하고는 괜히 찔려서 끝에만 '요'자를 붙이며 어색하게 상황을 종료했다.

그 날 저녁으로 평소에는 줘도 안 먹는 마라 떡볶이 매운 맛을 쑤셔 먹으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친구한테 입 다물라고 으름장 놓는 현우의 말이 나는 왜 그렇게까지 반응했을까? 강압적인 말투에 알러지가 있나? 다른 선생님이라면 그냥 넘겼을까? 나도 현우랑 똑같은 방법으로 응징한 건 아닐까? 아니지, 오히려 이렇게 한 번 나도 화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나은 걸까?

"네가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이나 친구 기분이 어떨까? 네 마음은 그게 아니잖아 현우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싶고 선생님이랑 가까워지고 싶은 거잖아. 도와줄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 연습해보자."

여러 번 '교사답게' 타일러 보려고 노력은 했다. 오은영 박사님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 말을 흉내냈다. 내 딴에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지만 현우 앞에서 버럭하는 내 모습이 옳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옆 집 아저씨나 슈퍼 아줌마가 아닌 아닌 담임 선생님이니까. 눈에는 눈으로, 고함에는 고함으로 받아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다른 아이들에게 불똥이 튀어 반에서 안정감을 못 느끼면 어떻게 하지? 앞으로 선생님이 언제 또 터질지 몰라 두렵지는 않을까? 빈 마라떡볶이 그릇을 앞에 두고 별 생각이 다 스쳤다.

다음날 아침, 현우는 평소와 다르게 내게 인사도 하지 않고 흘깃거리다가 바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신경이 상당히 쓰였다. 스스로 당당하지 않았은 거였다. 결국 알아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아침 조회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현우에게 어제 큰 소리를 낸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친구들 앞에서 너에게 소리질러서 미안하다고 하고 다음부터 조심하겠다고 했다. 현우에게, 그리고 지켜보고 있던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하는 사과였다.

현우는 금세 다시 기가 살아서 바로 다음 쉬는 시간부터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고 다녔다. 이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사과를 했고 내 맘이 좀 편해졌으니 되었다. 허탈하긴 했지만 다시 한 번 나를 위해서 큰 소리는 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운동장 버럭 사건 이후 현우와 아이들, 현우와 나 사이의 투닥투닥은 여전하고 어설프게 풀어가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자기 때문에 기분이 상한 친구는 시무룩해서 책상에 엎드려있는데 현우는 수학시험 백 점 맞은 걸 신나게 자랑하고 다닌다.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현우를 멀리하고 그럴 수록 현우는 더 자극적인 장난과 거친 말을 내뱉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의 말은 점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된다. 현우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아이들은 자기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귀신같이 아니까. 그러던지 말던지 현우에게 지쳐버린 나는 거리를 둔다. 무관심과 포기가 가장 서늘하다는 걸 그 아이는 알까.

내일 출근하면 다시 우리 반이라는 꽃밭에 공평하게 물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쑥쑥 자라는 아이들을 돌볼 것이다. 물뿌리개가 꽃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비슷하도록 속으로 초를 세어도 보겠지. 아이들이 자라는데 방해가 되는 잡초도 뽑아주고 시들거리는 아이에게는 영양제도 꽂아주겠지.

겉으로는 성실하고 따뜻한 꽃밭의 관리자일 것이다. 현우라는 꽃에게도 비슷한 양의 물을 주겠지. 그 정도만 되어도 다행이 아닐까. '이쁘니야~ 물 맛있게 먹어!'라고 진심으로 속삭이지는 못할 것 같다. '흥! 먹던지 말던지!' 라는 마음이겠지.

연차가 쌓이고 경험도 많아지면 이해심이 넓어질까? 현우 같은 아이도 품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직 먼 일인 것만 같다. 지금 나는 너를 똑같이 사랑하는 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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