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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Jun 30. 2021

유산 상속자

 미술학개론 이었던가. 딱딱하고 기계적인 전공수업을 피해 교양 수업으로 미술 수업을 하나 골라 들었다. 내가 아는 한 우리 과에서 여태 그 수업을 들었던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던, 다양한 이유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수업이었다. 한예종 커밍아웃으로 불가피하게 또라이 네임택을 달고 있던 교수님은 어느날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를 보고 레포트를 제출하라고 하였다. 그 때까지 그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했다. 그 때도 지금의 나와 썩 다르지 않게 사전답사와 준비 없이 무언가를 본래 모습으로 맞닥뜨리길 즐겼다. 귀차니즘에 대한 허울좋은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영화는 심오한 주제를, 주제보다 더 무거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닻과 같은 영화였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그 닻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개봉해인 2012년 이후 우연히 지나가는 참에라도 곁눈질 한 번 주지 않을만큼 끔찍한 기억을 안겨준 그 영화의 배경은 복개천이던 청계천 물줄기 위에 줄지어 들어차있던 어두침침하고 쇠비린내 나는 공장 거리였다. 우리 아빠는 퇴근 후 차가운 비린내를 품은 몸으로 날 껴안던, 그런 공장 단지에서 일하는 기술자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기 시작해 그 딸이 서른을 넘어 세 번째 회사를 다니는 동안도 여전히 그 일을 하고있다. 실로 기술자이다. 당시엔 노동자였을지 몰라도 말이다. 아빠는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좁고 거친 공간에서 매일 12시간 이상씩 일해야 엄마와 나를 겨우 먹여살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가진 재능이라곤 성실 뿐이던 아빠는 우리집의 조물주였다. 30년 동안 내가 목격한 것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내 동생이 학자금 대출 한 번 받게 하지도 않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해야하는 곤란에 처하지 않게 해주었으니까. 엄마도 사고 싶은 건 모두 살 수 있지만 굳이 사지 않는 경제적 품위를 갖추게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어리석고 모자란 딸은 세월과 함께 온 기적을 자꾸만 까먹고 내가 물려받지 못한 유산을 다른 이들에게서 기어코 찾아내 땡깡을 부리고야 만다. 가방끈 긴 부모를, (명백히) 운이 좋아 부동산 수혜를 입은 부모를, 자녀 교육에 전 재산과 삶을 내건 부모를, 고상한 취미를 물려 준 부모를,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준 부모를, 국내외 곳곳을 보여준 부모를, 시골에서 뿌리내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자연이라는 거대한 유산을 이어준 부모를, 세상의 빠른 변화를 귀뜸해준 부모를, 어릴 때부터 유기농으로 해먹인 부모를, 3대를 넘는 신앙을 전수해준 부모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말하자면 한없이 말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했다면, 내가 저 집에서 태어났다면 이라고 가정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오늘 <일간 이슬아 수필집> 2018년 3월 1일 당신의 자랑(下)를 읽다가 어느 구절에서 내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곳이 저릴 때 나오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물론 육성으로 소리도 함께 나올 정도의 울음이었다. 


바위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자 할아버지가 빨래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어디선가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와서 등산화 밑창 사이 사이에 끼어 있는 똥을 쑤셔 빼내고 있었다. 똥 묻은 바지도 억척스럽게 씻었다. (...) 그 물에 할아버지가 똥 묻혔으니까 이제 마시지도 못 하겠다고! 할아버지는 빨래하다 말고 웃었다. 그는 똥을 헹궈낸 바지와 등산화를 들고 개울에서 나와 온 힘을 다해 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꽉 쥔 주먹 사이로 개울물이 뚝뚝 떨어졌다.


 분명 '충격과 감동' 이라고 적혀있을 기억 박스에 들어있을 먼지 묻은 기억이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마음이라 불리는 곳을 강타했다. 7남매와 그 손주들이 모두 모이는 대명절날, 친척들 사이에서도 내외하던 소심하고 어린 내가 월경으로 피가 잔뜩 묻은 속옷을 두고 곤란해 하고 있던 때였다.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외가였고 엄마는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른 채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조각이 뭐냐하면, 아내가 없는 처가에서 피로 붉게 물든 딸의 속옷을 손빨래하던 아빠의 모습이다. 이게 '충격과 감동' 카테고리에 있는 까닭은, 서른명 가까이 되는 대식구가 모이는 집에 화장실은 하나뿐인데 바로 그 곳에서 딸애의 빨래를 해주는 쪼그려 앉은 아빠를 본 외숙모가 '아람이는 딸 속옷까지 빨아주는 아빠 있어서 좋겠네~' 라고 던져놓고 간 말 때문이었다. 월경하는 딸애의 속옷을 빨아주는 아빠는 어쩌면 당연했지만, 당연히 당연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도 느낄 수 있는 나이였나보다. 아니, 나이와 상관없이, 나를 향한 아빠의 추상적인 사랑이 피보다 붉은 선명함으로 인 박히는 순간이었기에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나여서 정말 다행이다. 


 아빠는 그렇게 나를 사랑했다. 몸에서는 차가운 쇠 냄새가 났을지라도 마음은 뜨겁고 성실하게 나를 사랑해주었다. 내가 물려받은 유산은 그 지독한 성실함이다. 사랑을 그토록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건 부모뿐이다. 그치만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은 사실, 사랑이 전부다. 높은 학력도, 고상한 취미도, 다양한 경험도 아닌 진짜 사랑. 빠알갛고 따아듯한 사랑! 아, 사랑! 나는 그 사랑을 열심히 받아먹고 자랐다. 내가 받을 유산은 다 받았다. 그렇게 자란 내가 할 일은 '나는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성실히 임하는 것이다. 내가 우리 부모님만큼 할 수 있을까? 아니, 자신없다. 어쩌면 총력을 다해 의지를 고갈시킬지도 모른다. 내가 받은 유산의 반만 전해줄 수 있다면! 그만큼만 해도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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