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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Jul 05. 2021

싫음 빼내기

열 살과의 대담


  열한 살이 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전이었던 여덟에는 만무했을 나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는  새삼 감격스러웠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답해야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나왔다. 그런데 다음 질문, 그러니까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이 앞에서, 더군다나 ‘고민중이라는 공기까지 전달되진 않는 ZOOM에서 이렇게까지 텀을 두지말았어야 했는데.. 진심 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싫어하는  없을리가 없는데. 더는 지체할 , 그렇다고 거짓말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런 식으로 답을 회피했다.

예전에는 싫은  많았던  같은데 싫은걸 생각하면 마음이 안좋더라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 좋은 생각들만 하다보니까 이제 뭐가 싫은지 모르겠어.


 똑똑한 친구여서 그랬는지, 아님 ‘오키 이제  차례 의미였는지 “~ ~” 반응 후에 자기는 고양이가 싫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후로도 수 분간 이어진 대화를 마치고 시간이  흐른 뒤,  대답이 다시 나에게 물었다. 정말 싫은  없다고?


 지렁이, 예전에 끔찍이 싫어했지. 비만 내리면  앞부터 시작해 등교길을 따라 지렁이  끓이듯 드글드글 했던지라 매일 지나는 등교길을 멀리 둘러 아스팔트 길로 돌아서  정도로 까무라치게 싫어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지렁이가 있으면  여기 토양이 좋은가보다, 숨쉬려고 나왔나보다 하고 둘러간다. 또? 덩치는 내가 억배나 크면서 질색팔색하며 도망치곤 하던 다리 많은 곤충들과 벌레도 이제는 자연의 일부로 둔다. 그럼 현재의  무엇을 싫어하나.


 특정 대상에 한정되지 않는 가치들. 경쟁, 이기, 소외, 위선, 반목, 편견, 기만, 거짓.  표현력이 부족할뿐 참기 힘든 가치 충돌의 순간들은  많다.  순간들은 보통 인간 관계 간에서 발현되지만  인간이 싫다는 말과 같다고  수는 없다. 인간은 입체적이고 가변적이니까. 경멸하는  상황의 유발자가 내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겸손과 자기성찰이 공존할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적어놓고 보니 불의한 가치들 또한 구구절절한 사연과 얽히기 마련이라 긍정과 부정으로 이분화하기 어려워진다. 다면적인 안목이 마음에 들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에 초연해지는 것이 우유부단으로 빠지진 않을까 우려도 되는 것이다.


  잔의 공기를 빼내려면 물을 채워야 하는  처럼, 좋은 것으로 채워 싫은 것들을 밀어낸 나는, 경멸하는 상황들 앞에서 지키고픈 가치들을 의지적으로 선택한다.  선택이 종국엔 내가 선하다고 믿는 환경으로  데려다  것이다.

  초딩이 스무살이 되는 날이 오면 오늘의 대답 뒤에 숨어있던 이야기도 들려줄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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