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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Feb 16. 2022

쓸쓸함에 도망친 곳

 역사와 함께 한 유명 예술가들에게 얽힌 비극적인 사연을 어렵지 않게 듣곤한다. 굴곡진 인생사 없이는 걸작을 만들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최근 나에게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까지나 기질을 말하는 것인데 어떤 결과물과는 무관하게 성격, 성향 같은 것이다. 예술가들이 들으면 오히려 언짢아 할지도 모르는 예민함이라던가 우울, 난데없는 감정기복, 더러운 성질머리 같은 것 말이다. 예술가와는 무관하게 그냥 내 성격이 지랄맞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태 걸작을 탄생시킨 적이 없으니.


 오늘은 잘 놀고 들어와 돌연 쓸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한 달 전에 찍은 필름을 스캔 해 받아본 것인데, 기대하던 사진 속 내 모습이 형편없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예전처럼 반짝이지 않는 나 자신에게 주눅들었달까. 사랑하는 이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임에도 아름다워 보이지가 않았다. 내 가난한 마음이 투영된 못난 시선. 사진 속 그 때의 나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잖아. 


 이유가 비단 격세지감의 내 모습 뿐만은 아니다. 텁텁한 기분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을 이 쓸쓸함을 누군가에게 터놓고나면 조금은 후련해 질 것도 같았다. 그 상대가 되어 줄 유력한 인물, 남자친구. 나보다 세 살 어린 그는 숫자로 들이밀기에는 성숙하고 이해심 깊은 반짝이는 사람. 하루를 마무리하는 통화를 마치고 난 후였지만 하소연 하는 앙탈쯤 다시 받아줄 수 있을 사람이다. 헌데 내 마음에서 먼저 단도리를 치고 만다. 내 마음이 나를 꾸짖는다. 네 나이 먹을 동안 그 쓸쓸함 하나 혼자 해결 못 해 (그것도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로) 피곤한 남자친구의 리듬을 깨뜨릴 셈이냐고. 악마 역할을 한 목소리가 말했을거다. 헌데 천사역은 어디 가고 없는지 침묵이다. 그래, 나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외모에, 마땅히 하는 일은 없고, 감정만 축내는 못난이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 하나 어찌하지 못해 쫓기듯 글로 도망친 지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마른 침 한 번 삼키며 내일 아침 등산을 가기로 결심한다. 아리게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한 시간 꽉 채워 산을 오르고 나면 이 새벽과는 다른 아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누구에게라도 치대고 싶은 마음 잘 붙들고 있어 준 것으로 세월 묻은 얼굴 값 한 것 같아 축난 마음이 조금은 다독여진다.


그럼에도 내가 내게 해주고 싶은 말. 

얘야, 힘내지 않아도 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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