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우연히 깨달은 온수욕의 행복과 또 하나의 맛집_리틀 다이너
<강릉 여행기 4>
대책없이 떠난 차박 여행. 차에서 오들오들 떨며 밤을 보낸 탓에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이대로 하루를 시작했다가는 감기에 걸리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감기에 걸리기 전에 감기를 몰아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실패한 적이 없는 방법을 행해야 했다. 바로 뜨거운 물에 몸 담그기.
20대 초중반까지는 목욕탕이나 사우나를 싫어했다. 찜질방은 좋아했지만 양 머리 수건을 쓰고 맥반계란을 먹는 걸 좋아했지, 뜨거운 한증막에는 길어야 10분 있다 나오기 일쑤였다. 기력이 약해서 그런지 뜨거운 곳에 오래 있는 건 유난히 참기 힘들 정도로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뜨거운 물 속에 있는 것도 물이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아서 얼른 빠져나오고 싶었다.
2018년 6월 8일, 나는 이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결혼 결정을 3월에 하고 결혼식을 준비하던 그 시기에 약 10년 만의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빠, 엄마, 언니, 내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엄마아빠가 식당을 시작한 중학생 이후로는 네 명이 여행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결혼 전에, 해외에서 생활 중인 언니가 한국에 왔을 때 우리 가족끼리 여행을 가고 싶었다. 아빠 엄마에게 두 분의 비행기 티켓값만 부탁하고, 숙박비를 비롯한 나머지 여행 경비는 언니와 내가 부담하기로 하고 오사카 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사회초년생이었고, 언니는 워홀러였기 때문에 우리의 자금은 넉넉하지 못했다. 총 3박 4일의 중 엄마아빠는 그 사이의 1박 2일만 함께 하는 일정이었고 엄마아빠는 김해공항, 언니와 나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합류하기로 했다.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를 찾던 우리는 오전 6시 비행기를 타야 했고 첫차와 시간이 맞지 않는 탓에 지하철 막차를 타고 밤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노숙을 하기로 했다.
6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밤의 인천 공항은 너무 추웠다. 남는 벤치 의자를 겨우 찾아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쪽잠을 잤다. 오들오들 떨며 깼는데 감기 기운이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게 느껴졌다. 추워서 여기는 더는 있지 못하겠고, 인천공항에 있다는 찜질방에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도 대기가 길다는 얘기를 들었던 찜질방은 역시나 만석이었고, 기다리면 샤워만 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새벽 네 시쯤 겨우 자리가 생겨 들어간 샤워실에는 작고 동그란 온탕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온탕이었는데 몸의 한기는 도저히 샤워로만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샤워를 한번 한 후 온탕에 몸을 쏙 넣었다. 목까지 차오른 뜨거운 물이 온몸을 감쌌고, 소름이 돋는 것처럼 감각이 살아나면서 몸속 한기가 슬며시 빠져나갔다. 애니메이션에서 영혼이 슥 빠져나가는 것처럼. 세포 하나하나가 따뜻함을 머금으면서 체온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약 30분 동안 몇 번의 소름과 몇 번의 영혼(한기) 배출을 마치니 나에게 침투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주변을 얼쩡거리던 감기 기운이 ‘쳇, 졌다.’ 하며 떠났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등 공신 온수욕 기병대, 그렇게 나는 내 사랑과 믿음을 온수욕에 바치게 되었다.
바로 지금이 그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자는 동안 추위에 떨어서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감기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순두부로 속은 달랬지만 아직 모자랐다. 마침 아침을 먹었던 ‘차현희 순두부’와 차로 3분 거리에 목욕탕이 2곳이 있었고 우리는 조금 더 저렴한 ‘경포 솔향 온천’으로 향했다.
성인 기준 목욕은 7,000원, 찜질방까지 이용할 때는 12,000원이었다. 여탕과 남탕에 입장할 때 로비의 양쪽 끝에 있는 다른 엘리베이터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새삼 안전하게 느껴졌다. 산과 한 시간 후에 만나기로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온천으로 들어갔다.
비록 당시에는 거리 두기 1단계를 시행 중인 11월 초였고 강릉 지역 일일 확진자 수는 10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코로나 시대에 대중목욕탕을 이용한다는 것이 걱정되었다. 회사와 집만 오가며 동선을 최소화하던 시기이긴 했지만, 혹시 내가 무증상 감염자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다행히 평일 중에서도 수요일 점심시간 즈음이라 이용객이 거의 없었고 온천 공간이 꽤 넓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샘플 샴푸가 1,000원이라는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고, 숨도 살살 쉬며 빠르게 온천장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자리를 골라 샤워를 하고, 온도계에 40도라고 표시된 온탕에 들어갔다. 하아… 좋다… 라고 느낀 것도 잠시, 뭔가 모자란 느낌이 들었다. 40도의 온도는 생각보다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영혼이 슉슉 빠져나가는 순간도 없었다. 옆을 바라보니 43도의 열탕이 있었다. 그래, 열탕만이 지금 나를 구원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온’보다는 ‘열’이지. 빠르게 열탕으로 이동해 발부터 서서히 입수를 시작했다. 뜨거운 물이 온 몸의 피를 뜨겁게 데우는 것 같았다. 목까지 물에 잠겼고, 한기가 빠져나가는 듯 몸에 소름이 돋았다. 으어어…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거다. 너무 좋다…
뜨거운 탕에서 10분도 버티지 못했던 나는 전신욕과 반신욕을 번갈아 하며 30분 정도 몸을 녹였다. 벽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는 ‘반신욕의 효능’이 적혀 있었다. 음, 그래그래. 몸을 따뜻하게 하면 면역력이 좋아지지. 혈액순환이 잘 되면 살도 좀 빠지겠지. 오, 여긴 지하 630m에서 용출되는 해수 광천 온천이구나!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고 아토피에 좋고… 이것저것 좋다는 정보를 읽으며 몸을 담그고 있으니 오랜만에 내 몸을 보살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한기를 모두 배출하고 몸이 더워졌을 때 밖으로 나왔다. 감기와의 또 한 번의 전쟁에서 승리함을 확신했다. 다시 한번 샤워를 하며 몸을 구석구석 마사지했다. 부었던 다리도 열심히 지압하고, 꼼꼼히 그동안 고생한 몸을 풀어주었다. 스트레스로 혹사당하고, 사서 고생하는 주인을 만나 발도 제대로 못 뻗고 잔 내 몸…
매일 이런 시간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새삼 아쉬웠다. 만족과 아쉬움을 가득 품은 채 산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숙소이자 발인 차로 돌아왔다. 이번 겨울엔 아무래도 이동식 욕조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안은영이 했던 것처럼 나도 거실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말겠어.
네이버 지도 앱에 별을 찍어둔, 가보고 싶은 강릉의 까페가 몇 군데 있었다. 우리는 까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예약해둔 캠핑장으로 이른 저녁에 이동할 심산이었다. 그 중 테이블이 널찍해 보이는 한 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강릉 시내로 갔다. 까페에는 주차 공간이 없어 근처의 공영 주차장을 찾아야 했는데 산은 운전을 하고 있어 내가 찾아보고 있었다. 지도에 나오는 두 곳의 주차장 중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경로를 이탈하는 바람에 강릉역까지 왔고, 주차장이 있어 그냥 이곳에 차를 대고 걸어가자고 했다. 까페에서 잠시라도 독일어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노트북과 책, 아이패드까지 바리바리 챙겨 나와 주차장을 벗어난 다음 길을 찾기 위해 다시 지도를 검색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까페는 도보로 15분이 걸렸다. 산은 차가 있는데 왜 도보 15분을 걷냐며 나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다시 차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린 상황. 목욕으로 몸을 데운 후라 더워서 코트를 차에 두고 왔는데(산은 그래도 입고 가자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운 걸 못 참는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엄청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추워…”라고 말하자마자 산은 2차 구박을 시작했다. 덥다고 난리 치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아니… 나는 갑상샘에 문제가 있는 건지 뭔지 추위랑 더위를 급격하게 잘 느낀단 말이야… 이미 여러 번 이야기한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가 바리바리 챙긴 무거운 가방까지 산이 들어주고 있어서 샐쭉해진 입을 다물었다.
추위와 바람을 헤치고,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도착한 까페는 닫혀 있었다. 지도를 다시 확인해보니 ‘화,수 휴무’였다. 산은 한숨을 푹 쉬었고 나는 산의 눈치를 보며 “에헤헤…” 하고 웃었다. 산은 근처의 아무 까페나 들어가자고 했지만 강릉까지 와서 나는 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산은 바보와 같이 살면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한 얼굴로 일단 차로 돌아가자고 했다. 고집불통 바보랑 같이 살아줘서 고마오…
왕복 3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차로 돌아왔더니 배가 고팠다. 후보에 있었던 근처의 까페들도 모두 수요일 휴무였다. 강릉은 아무래도 여행지라 그런지 화, 수 휴무인 가게가 많았다. 헛짓거리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았고, 예쁜 까페를 가긴 글렀으니 맛있는 거라도 먹자는 생각으로 다시 지도에 찍어둔 별(즐겨찾기)을 확인했다. 마침 10분 거리에 수플레 팬케이크 버거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어 영업일과 영업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수요일은 오픈하는 날이었는데 점심 라스트 오더가 2시 30분까지였다. 현재 시각 2시 15분. 일단 출발하자!!!
미리 주문을 할 수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미리 주문은 어렵고 2시 30분 전에 매장에 도착해야만 주문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시각은 2시 29분이었다. 먹어야 해. 여긴 평소에 줄 서서 먹는 곳이라고 했단 말이야! 다급한 나는 옆에서 계속 쫑알댔고 산은 서둘러 차를 몰았다. 식당 앞 대로변에 주차 완료. 먼저 황급히 차에서 내려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현재 시각 2시 29분. 세이프!!!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라 그때까지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 마자 미리 생각해두었던 ‘오리지널 팬케이크 버거’와 ‘풀드포크 몬테크리스토’, 콜라 한 잔을 주문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그제야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알록달록 색칠한 피아노, 일렉트로닉 기타, 우쿨렐레, ABBA를 비롯한 각종 LP와 함께 커트 코베인의 사진, 키스 해링의 그림 등으로 벽을 가득 채운 인테리어는 레트로와 키치함이 공존해 기분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미국의 로드무비에서 종종 보았던, 교외나 국도변 등지에서 위치해 자동차 여행객들이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을 다이너(Diner)라고 부르는데, ‘리틀 다이너’라는 이름답게 미국의 감성이 느껴지는 새빨간 인조 가죽 의자와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었다. 여긴 분명 강릉인데 이곳에 앉아 있으니 잠깐 미국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4인 테이블이 5개 정도인 작은 가게이지만 테이블 간격이 넉넉해 공간이 좁게 느껴지진 않았다.
모든 메뉴를 주문과 동시에 조리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안내문이 있었는데 늦은 점심시간이라 이미 식사를 하고 있던 한 테이블 외에는 우리밖에 없어서인지 음식이 나오는 데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매끈하게 익은 두툼한 팬케이크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보기만 해도 폭신폭신해 보이는 수플레 팬케이크 아래로 베이컨이 귀엽게 혀를 내밀고, 치즈로 감싼 패티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깨끗하게 익은 감자튀김까지. 식기 전에 얼른 한입 베어 물고 싶어 빠르게 셔터를 눌렀다.
팬케이크와 버거의 속 재료를 함께 먹기 위해 깨끗하게 단면을 잘랐다. 포크로 정성껏 찍어 한입에 쏙 넣었다. 혀끝에 닿는 팬케이크는 바로 녹아 없어질 만큼 부드럽고 달콤했다. 고기의 질감이 살아 있는 단단한 패티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팬케이크와 패티가 왠지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기대만큼 맛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도 잠시, 한입을 더 먹고, 또 한입을 더 먹을 때마다 점점 맛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동안 먹었던 맛있는 음식은 첫입이 정말 맛있고 그 이후에 점점 감흥이 떨어지는데 이 팬케이크 버거는 먹을수록 맛있었다. 달콤한 팬케이크와 짭조름한 패티, 베이컨이 점점 단짠의 이상적인 조화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산과 나는 첫입을 먹고 둘이 거의 동시에 ‘그냥 그렇네’라고 했는데, 마지막에는 서로 양보하지 않고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풀드포크 몬테크리스토도 굉장히 기대하던 메뉴였다. 샌드위치를 튀긴 몬테크리스토는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가 있던 시절,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였다. 부드럽게 녹은 치즈와 터키 햄이 들어있고, 라즈베리 잼에 찍어 먹던 베니건스의 몬테 크리스토… 이곳의 몬테크리스토는 터키 햄 대신 돼지고기에 바베큐 소스를 발라 장시간 익히고 결대로 찢어낸 ‘풀드포크’를 넣어 만들었다. 베니건스의 몬테크리스토는 빵 겉에 튀김옷까지 입고 있지만, 이 음식은 식빵을 그대로 넣어 살짝 튀긴 듯 했고 더 담백했다. 짭짤한 풀드포크와 치즈, 빵, 슈가파우더까지. 게다가 튀기기까지 했기 때문에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신발을 튀겨도 맛있을 거라고 하지 않나.) 블루베리 소스까지 곁들여 먹으니 베니건스의 몬테크리스토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브레이크 타임 전에 가게를 떠나야 했기에 10분 만에 휘리릭 식사를 끝냈다. 남은 몬테크리스토 두 조각은 포장했다. (다음 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먹었는데, 기분 탓인지 매장에서 먹을 때 보다 더 맛있었다…) 식사를 급하게 하는 걸 먹지 않는 것보다 싫어하는데도 리틀 다이너의 음식을 먹어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에서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당황스럽고 불편한 그 상황들은 언제나 나를 또 다른 즐거움으로 데려다주었다. 혼자 떠났던 22살의 첫 유럽 여행에서는 아이폰을 도둑맞은 덕분에 두 눈으로 더 많은 세상을 담을 수 있었고, 함께 부산영화제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친구를 혼자 이고지고 창원의 본가로 데려갔던 일은 지금도 떠올리기만 하면 웃음이 터지는 추억이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추위에 떨며 노숙을 한 덕분에 온수욕의 행복을 깨닫고, 가고 싶었던 까페가 문을 닫은 바람에 또 오고 싶은 맛집을 찾은 것 모두 여행이라서 가능한 일들이었다. 아무리 힘든 순간이었어도, 나중에는 결국 그저 웃기기만 한 기억이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항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건 이런 일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이다(물론 게을러서가 8할). 나의 동행인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난 그들과 함께 여행 중의 어려움을 기꺼이 헤쳐나가는 과정이 진심으로 즐겁다. 이름난 명소를 방문하며 얻은 지식보다 이렇게 가슴에 안고 돌아온 소소한 추억들이 일상의 나를 살게 하기에. 떠나기 어려운 시기인 요즘 그 순간들이 더 자주 그리워진다.
종종 놀랄 정도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산이 운전하다 “그래도 아까 헤맨 덕분에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었네.”라고 말했다. 아까의 구박을 되돌려주려는 마음으로 내가 바보짓을 한 덕분에 아주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은 거라고 우쭐댔다. 어이없어하는 산을 보며 웃었다. 리틀 다이너의 성공으로 코를 치켜들었지만, 남은 여행 내내 나는 목적지의 영업시간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