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거리두기 여행_카페 젠주/연곡솔향기캠핑장
<강릉 여행기 5>
여행 2일 차, 짧은 2박 3일의 일정 동안 내 목표 중의 하나는 동해바다를 원 없이 보는 것이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그동안 답답함에 몸서리쳤던 내 마음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강릉 시내의 까페가 문을 닫은 바람에 다른 까페를 급하게 검색해봤는데, 점심을 먹은 리틀 다이너와 차로 3분 거리에 사진상으로 굉장한 오션뷰 까페가 있었다. 심지어 디카페인 커피를 판매하는!! 산과 나는 다음 행선지를 그곳으로 정했다.
‘젠주(Jenju)’는 안목해변 까페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오션뷰+루프탑 까페라고 한다. Herren Haus 호텔 1층 프런트 옆에 카운터가 있고, 이곳에서 주문과 결제 후 음료를 받아 6층에 있는 오션뷰 까페나 7층의 루프탑으로 이동해 음료를 즐기는 시스템이었다. Herren Haus라니, 독일어를 공부하기 위한 완벽한 장소가 아닌가! (Herren은 영어로 치면 Mr. 의 복수형으로, 일반적으로 남자, 신사들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한다./ ladies and gentleman = Damen und Herren) 신사들의 집이라는 뜻인가? 크크.
이곳은 베이커리가 유명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방금 다량의 빵을 흡입하고 왔기에 도저히 더이상의 탄수화물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염원하던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와 카페 모카를 주문해 좌석이 있는 6층으로 올라갔다.
까페 공간의 인테리어가 세련되진 않았지만 넓은 창가 자리와 창밖으로 보이는 시원한 바다가 모든 것을 상쇄시켰다. 오션뷰 까페라고 해도 대개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자리는 한두 테이블뿐인 곳이 많은데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테이블이 4-5개는 되었고, 한 테이블당 4명 정도는 일렬로 거뜬히 앉을 수 있도록 넓었다. 6층이고 바로 바닷가에 있어 시야를 가리지 않고 바로 바다만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다행히 평일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고, 좌석 간격도 넓어 충분한 거리두기가 가능했다.
노트북을 열어 인강을 틀고 공부를 하고 있는 그 순간이 좋았다. 노트북 뒤로 펼쳐진 바다를 시야에 담고 공부하고 있는 지금이. 동시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내일이 벌써 두려워졌다. 그냥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살면 안 되는 걸까. 모든 걸 등 뒤에 두고 눈앞의 망망대해 같은 삶을 살면 안 되는 걸까.
같이 모니터와 바다를 보고 있던 산은 어느새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참 아무 데서나 잘 잔다.
해가 저물어갈 때쯤 젠주에서 나와 차박 여행을 완성하기 위한 우리의 최종 목적지, ‘연곡솔향기캠핑장’으로 향했다. 무사히 체크인하고, 우리가 예약한 자동차 캠핑존인 E존에 차를 세웠다. 바로 앞에 바다가 있는 아주 좋은 자리였다. 이 정도면 동해바다를 원 없이 보려는 내 목표는 충분히 채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어제부터 고대하던 바베큐를 시작할 차례였다. 미니 밥상과 작은 의자를 펼치고 고기와 채소들을 꺼냈다. 아이스박스에 넣어두긴 했지만 하루가 지났던 터라 혹시 고기가 상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11월 초의 날씨는 냉장고와 거의 같은 온도였고, 고기의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자동차 캠핑존은 차가 들어갈 공간이 필요하다 보니 영역이 꽤 넓었고, 덕분에 다른 이용객과 2M 이상의 거리두기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7시쯤 저녁 준비를 시작했는데 이미 저녁 식사를 모두 마쳤는지 차 밖으로 나와 있는 이용객은 우리뿐이었다.
1차로 토마호크 스테이크. 즐겨 먹는 아웃백의 메뉴이지만, 큰맘 먹고 가야 해서 자주 먹지는 못하는 그 토마호크 스테이크였다. 등심, 갈빗살, 새우살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스테이크인데 기름지고 부드러운 새우살을 먼저 먹고 갈빗살과 등심을 번갈아 먹으면 맛이 좋다. 이렇게 귀여운 식탁에서 쪼그리고 앉아 이마에 랜턴까지 장착하고 열심히 고기를 구워주는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6년 전 100일 기념 여행으로 갔던 펜션에서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도 열심히 소 갈빗살을 구워 주던 어린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 날 여행이 계획되어 있는데도 전날 선배의 영화 촬영을 돕느라 한숨도 못 자고 온 산을 보며 난 그 영화의 연출과 촬영감독, 그리고 산에게 모두 화가 나 있었다. 산은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쌩쌩한 척하면서 열과 성을 다해 고기를 구워 주었다. 우린 고작 학생이었고 한 팩에 4만 원이 넘는 소 갈빗살이 너무 비싸 돼지고기 목살이나 구워 먹자던 나에게 산은 이게 진짜 맛있는 고기라며 설득했다. 엄청난 고기 굽기 실력으로 숯불에 빠르게 표면만 구워 육즙이 가득했던 그 소 갈빗살은 지금까지 먹어 본 고기 중 최고의 맛이었고 아직도 그렇다. 그때와 지금의 산은 변한 게 거의 없다. 나를 잘 먹이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남자와 결혼하다니, 먹을 복은 타고났나 보다.
2차로 양갈비와 소시지를 구웠다. 돌판에 구운 소시지의 겉은 놀랄 정도로 바삭했다. 겉바속촉의 완성이었다. 3차는 라면. 추운 바람을 맞으며 먹는 라면은 어쩜 그렇게 맛있을까? 꼬들꼬들한 라면을 제때 먹는 데 집중하느라 완성된 라면의 사진은 찍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퍼지는 라면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스테이크와 양갈비보다 소시지와 라면이 더 맛있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굳이 비싼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걸까…?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는 지금도 입안에서 바삭하게 부서지던 소시지와 매콤한 향기를 풍기던 김이 폴폴 나는 라면의 꼬들꼬들한 면발이 혀끝에 맴돈다. 나트륨의 환호성! 염분을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이여… 단짠의 완성으로 4차 군고구마까지 해치우고 나서야 귀여운 식탁에서의 상다리가 부러지는 저녁 식사를 마무리했다. 전날의 당황스러움과 고난을 이겨내고 합법적인 장소에서 무사히 차박 캠핑을 완료하다니,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1일차 차박 캠핑에 실패한 이야기...)
https://brunch.co.kr/@ran-away/8
옆집(옆 차?)에서는 천막 안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화를 감상 중이었다. 요란한 총소리와 무언가가 계속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역시 캠핑은 장비 빨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오른쪽 옆집은 번지르르한 흰색 캠핑카였다. 창문을 슬쩍 보니 침대도 있는 것 같았다. 흥, 그렇지만 우리도 지지 않는다. 우리에겐 푹신한 라텍스와 허리에서 엉덩이까지 따뜻해지는 전기장판이 있지! 심지어 보조배터리로 작동한다고! 스크린은 필요 없다! 우리에겐 16인치 맥북 프로가 있으니까! 우린 이걸로 먹고살고 영화도 볼 수 있지!
짧게 캠핑 기분을 냈던 작은 조명들을 정리하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넷플릭스에 접속해 푹 빠져있는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틀었다. 이미 모든 에피소드를 봤지만, 다시 보고 싶어서 산을 꼬셨다. 다행히 꽤 재밌게 봐주었다. 이 순간에 빠질 수 없는 감자칩과 함께 바삭바삭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