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수있는마음 Oct 11. 2023

받아쓰기 40점의 난(2)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 그 '어려움'에 대하여

아이에게 냅다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와 다르게 내 눈치를 살피며 풀이 죽어 있던 아이에게

절대로 하면 안 됐었던 이야기를 쏟아내 버렸다.


그때,

카톡으로 선생님의 알림장이 왔다.

받아쓰기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보다 아이들이 너무 잘해서 기특하다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생님이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아이 친구들이 집에 가서 우리 아이가 40점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텐데...

오며 가며 인사하는 아이 친구 엄마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얼굴이 뜨겁다 못해 울컥 눈물이 났다.


한바탕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남편에게도 폭풍카톡으로 화를 내고 나니 정신이 차려졌다.

(늘 그렇듯 아이에게 화가 나면 그 화풀이는 모두 남편에게....)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아차' 싶었다.

도대체 그깟 받아쓰기가 뭐길래 나는 이렇게까지 화가 나고 절망적이기까지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모두 아이가 아니라 '나'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이, 동네엄마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내 자식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점수를 받아올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모두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태어나 처음 해 본 받아쓰기였다.

집에서 딱 한 번 연습해 본 게 다였고, 학교에서 막상 받아 쓰려니 긴장도 됐을 것이다.

지금까지 공부를 해 본 적도 없는 아이였다.

다른 친구들이 벌써 1,2년 전부터 학습지니, 한국어능력시험이니, 한자급수 시험이니 

아주 가열하게 선행학습을 해나가고 있을 때, 

엄마의 의지랍시고 그저 즐겁게 놀기만 하라고 해서 그렇게 놀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갑자기 받아쓰기를 못했다고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니, 

아이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놀랐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고이 지켜주고 싶었던 '공부정서'가 나 때문에 엉망이 돼버렸을지도 모른다.


고작 이런 상황 하나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나는 내 아이는 선생학습을 시키지 않겠다고, 

아이의 공부정서를 지켜주며 발달 과정을 존중하겠다고, 

교육과정에 따른 학교에서의 배움을 존중하겠다고 잘난 척을 하고 있었을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 일에 얼마나 대단한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한 지 몰랐었다 정말.


작가의 이전글 받아쓰기 40점의 난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