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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있는마음 Oct 11. 2023

받아쓰기 40점의 난(3)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 그 '인내심'에 대하여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아이의 수학 익힘 책을 꺼내서 살펴보았다.


두 번째 충격이었다.

수학 익힘 문제를 틀리는 아이. 내 자식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교실에서 선생님 설명만 잘 들으면 절대로 틀릴 수 없는 문제를 틀린 걸 보니,

그 정도 수준도 아이에게는 어려웠나 보다.


주변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이 내게 종종 물었었다.

왜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느냐고_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별로 공부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서 우리는 그 돈 모아 여행을 갈 거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사교육비를 쏟아붓지 않아도 나는 아이 교육에 대해 자신이 있다.

아직 어린아이를 들들 볶으며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내 아이는 잘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와는 다를 것이다.


정말..

오만이었다.


노선을 다시 정해야 한다.

원래 계획대로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달라져야 한다.


내 아이가 당연히 잘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고쳐먹어야 한다.

내 아이의 학습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잘하지 못하지만 천천히 차근차근해나가는 아이를 내가 견뎌야 할 것이다.


사실 공부를 대단히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데 공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 아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랐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래,

이 방향을 잃지 말자.


다시는 받아쓰기를 못했다고 수학문제를 틀렸다고 아이에게 화내지 않겠다고,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더 들여다보겠다고 결심한다.


다시는 이미 자신의 점수에 수치심을 느껴 교실에서 울어버린 아이를 붙잡고,

점수가 이게 뭐냐고 화내고 소리치지 않을 것이다.  


40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다음에는 엄마와 함께 더 열심히 노력해 보자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잘하는 아이보다,

노력하는 과정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아이.

그 안에서 성취감을 맛보며 천천히 성장해 나가는 아이.

그거면 됐다. (물론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이 결심을 

잃지 말고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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