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우주 속에서 찾은 나 자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미국)

by 정성연

다니엘스를 처음 접한 것은 그들의 2016년 장편 데뷔작 <스위스 아미 맨>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아니 사실 그 자체로 여겨지는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필모그래피를 보던 중 그가 시체 역으로 출연하다길래 흥미가 동했다.

개인적으로 이때 이들의 정신세계를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독특한 색채는 어김없이 이 작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도 나타난다.

쉴 틈 없이 터지는 B급 유머들과 정신없이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작품의 주요 소재는 "평행세계"이다.

사실 닳고 닳은 소재이지만 이렇게까지 가족적이고 따뜻하게 담아낸 영화는 처음이다.

뭐,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지만 말이다.


주인공 에블린은 수많은 평행세계의 "나"를 경험한다.

그 평행세계 중에는 어렸을 적 포기했던 꿈을 이뤄낸 화려한 내가 있었고, 요리사, 가수, 하다못해 당장의 세무조사를 아무 문제 없이 끝낸, 어쨌거나 지금의 엉망진창인 나보다는 더 나은 내가 있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돌아온 현실세계에서는 그 모든 나 중 지금의 내가 가장 실패한 나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누가 뭐라 했든 좌우지간 이런 평가는 자기 자신을 갉아먹기 충분한 이야기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과거의 어떤 선택이 보다 나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의미는 없지만 그 가운데에서 가장 크게 실망하는 사람은 나다.

사실 그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후회일 뿐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우울감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솔직히 과거의 모든 선택들을 후회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자신은 없다.

어쨌든 어리고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순간에 평생을 후회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영화는 이 지점에서 메시지를 준다.

모든 순간의 선택이 나 자신을 이룬다는 것을.


당연하겠지만 그 메시지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이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모든 순간의 완벽함을 바랐던 어느 평행세계의 주인공은 최악의 빌런을 탄생시켰고 모든 평행세계의 그는 그가 만든 빌런을 이겨내지 못했다.

모든 선택을 후회했기 때문에 가장 큰 괴물이 탄생한 셈이다.


그런 빌런을 상대해야 하는 지금의 나는 별 볼 일 없고 모든 시간선에서 가장 실패한 사람이기에 나의 도움을 바랐던 이 조차 등을 돌린다.

하지만 가장 쓸모없는 나였기에 가장 가치 있고 잘난 내가 될 수 있었고 덕분에 빌런을 설득시켜 세계를 지킬 수 있었다.

여느 영웅 서사가 그렇듯 주인공은 정의로운 힘을 각성하고 빌런들을 물리치겠지만...

이 영화의 빌런이 정의에 굴복한 것은 히어로 역할인 주인공이 무력적으로나 철학적으로 강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 모든 세상에서 하나뿐인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엄청 김새는 이야기지만, 어느 한편으로 보면 새롭다고 생각한다.

가장 잘난 내가 가장 미친 빌런을 만들었고,

가장 쓸모없는 내가 가장 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것.


결국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주제는 후회와 인정이다.

지나간 선택들에 대한 후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나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 비로소 곁에 있는 것들이 보인다는 것.

그러니 지금의 삶이 힘들고 지난날이 후회돼도 그 모든 게 지금의 나인 것을 인정하자는 것.

감독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한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