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많을수록 자중이란 것이 필요하다

28년 후(2025, 영국·미국)

by 정성연

잠깐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원작의 좀비 설정은 이전 영화들에서 묘사된 일명 "언데드"가 아니라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다.

덕분에 이전과는 다르게 뛰어다니고 맷집도 있으며 파괴본능만 남은 현대적인 좀비가 만들어졌다.

이런 설정은 이후 <새벽의 저주>에서도 등장해 영화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남았고 이후 제작되는 소위 "좀비 장르"의 영화들에서는 뛰어다니지 않는 좀비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물론 좀비에 대한 설정만으로 <28일 후>가 재밌는 영화인 것은 아니다.

대니 보일 감독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와 세상 긴박한 음악, 무엇보다 좀비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인간들끼리의 불신을 적나라하게 담은 연출이 모여 <28일 후>라는 좀비 장르의 걸출한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영화 <28년 후>는 위에서 나열한 모든 장점을 싹 다 뒤집어엎어버린 영화라는 점에서 정말 속편의 저주는 어쩔 수 없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하나 내가 이 영화를 저평가하는 이유를 대라 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도대체 무슨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상업 영화에는 기본적으로 "우린 어떤 영화야"라고 정리할 수 있는 장르라는 게 존재한다.

관객들은 그 장르라는 것에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고 어떤 기대를 하면서 관람을 한다.

예컨대 호러물에서는 공포심을, 히어로물에서는 히어로와 빌런의 격돌을, 스릴러물에서는 서스펜스를 기대할 것이라는 말이다.

반대로 영화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장르적 재미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해당 장르만의 여러 장치들을 준비한다.

보통 그런 장치들은 여러 영화에 걸쳐 반복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런 영화를 우리는 장르 영화라고 부른다.


아무리 장르 영화라고 해도 단 한 가지의 장르만을 가질 수는 없다.

영화라는 것이 이야기하는 주제에 따라, 연출에 따라, 하물며 등장인물의 말 한마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장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보통은 큰 줄기의 대표 장르가 하나 존재하고 감독의 입맛에 따라 가니쉬 용도의 장르들을 얹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구조를 제일 충실히 따르면서 잘 만든 영화를 꼽으라 한다면 <극한 직업>을 선택하겠다.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 영화는 이전 한국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신파 요소를 철저히 제거하고 온갖 웃음을 위한 장치로만 꾹꾹 눌러 담겨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의 2019년작 <극한 직업>은 이러한 특징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범죄·액션물의 재미까지 챙긴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코미디 장르에 기대하는 웃음과 더불어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과정에서의 통쾌한 액션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돈값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결국 잘 만든 장르 영화라는 것은 특정 장르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은 충분히 채워주면서도 의외의 지점에서 또 다른 장르적 재미를 적절히 섞어 그 영화만의 매력적인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영화이다.

<28년 후>는 이 지점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좀비 장르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뻔하다.

아마 사나운 좀비들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주인공 일행의 모습이 좀비 장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부분일 것이다.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는 재밌는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다.

감독들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좀비랜드>에서는 코미디를 섞고 <월드워 Z>에서는 재난 영화의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줬으며 한국의 <킹덤> 시리즈에서는 사극 요소를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28년 후>는 일단 좀비 장르의 구조를 제대로 가져가긴 한다.

극의 설정에 따라 좀비를 피해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보급을 위해 주기적으로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본토에 다녀와야 하며,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위기들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좀비 장르의 재미를 충분히 충족시켜 준다.

단, 어느 순간 좀비가 메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는 한번 좀비 장르의 임무를 수행한 뒤에는 갑자기 로드 무비의 그것으로 역할이 전환된다.

좀비에게 쫓기는 형태는 유지하지만 그 비중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이를 정리하기 위한 여정이 주가 된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로드 무비는 로드 무비만의 재미가 있거니와 극의 2막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긴 하니까 말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감독이 추구하고자 하는 너무 많은 철학들이 들어가 도무지 하나의 영화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1막과 2막의 괴리가 커져버렸다는 것이다.


1막과 2막의 분위기 간극은 생각보다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는데 1막에서의 긴박함과 액션 연출이 2막의 전개와 정확하게 대칭점에 있어 그 사이의 몰입을 헤쳐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개연성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관객들은 좀비 장르가 어느 정도 판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영화가 조금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의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등장인물들이 답답한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너그러이 눈감아 줄 수 있다.

하지만 몰입이 깨져버리는 순간 이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이야기가 된다.

근방에서 가장 강한 개체의 좀비를 행동 불능 상태로 마취시켜 놓고서도 왜 처리하지 않는 것인지.

좀비 사냥 경험이라곤 전날 아버지와 다녀와본 게 한 번인 12살 아이가 대책도 없이 환자인 어머니와 어떻게 그 수많은 좀비 무리를 뚫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현대 무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수가 많은 것도 아닌 좀비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는지.

애초에 좀비가 죽은 것도 아니고 감염자인 상태로 28년이나 생존했다는 게 가능한지 같은 것들 말이다.

무엇보다 로드 무비로 전환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시리즈를 염두에 둔 것인지 영화가 끝나기 직전 갑작스레 전대물의 느낌으로 등장한 새로운 인물들은 뭔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문제는 하나의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에서 왔다고 본다.

앞서 나열한 <좀비랜드>, <월드워 Z>, <킹덤> 시리즈에서는 작품의 재미와는 별개로 철저하게 좀비 장르의 기본 공식을 가져간다.

거기에 장르적 변주를 위한 코미디, 재난, 사극 등의 것들을 조금씩 첨가해 영화의 재미를 끌어올리려 한다.

<28년 후>는 좀비 장르에서 로드 무비로, 로드 무비에서 전대물로, 주요 장르를 전환시키면서 모든 장르의 재미를 한꺼번에 가져가겠다는 느낌을 준다.

앞서 말했지만 이 결정은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게 만들뿐더러 영화적 허용을 눈감아줄 수도 없게 한다.

시리즈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후 만들어질 <28년 후> 트릴로지를 생각하고 여러 복선과 장치들을 이 영화에 심어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영화가 하나의 영화로서 잘 만들어진 것은 분명 아니다.

하고 싶은 게 많을수록 잘 참고 다음에 담아낼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