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낯설고 불편한 연애
"연애 많이 해 봤을 것 같아요"
남들이 나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이렇게 추측해 주면 오히려 감사하다. 왜냐면 혹자는 그냥 근거도 없이 '많이 해봤잖아!' 하고 확정을 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나란 사람은 실제로는 연애경험도 없고 안 해서 잼병이기도 하다.
어느 날 직장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데 나이가 중년을 넘어가면 그렇듯 과거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되는데 그날은 어쩌다 보니 자신들의 젊었을 적 연애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무리 중에는 중년의 나이의 여성 네 명과 두 명의 남성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키도 크고 인물이 좋아서 젊었을 때는 꽤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도 인정했다. 그의 싱글시절는 화려했다고 말했고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여성 동료들도
"김주임님은 그랬을 것 같아요, 인정!"
라고 말한다. 그러자 김주임은 그중 한 명의 여성에게
"권주임님은 젊었을 때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는 사람 없었어요?"
라고 묻는다. 그러자
"아휴, 아니에요. 저는 인물이 안 돼서 별로 못했어요. 우리 신랑 못 만났으면 결혼 못했다니까~"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시선을 돌려 나를 보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임팀장님은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많아서 제 이런 마음을 모르시겠죠?"
나는 어떻게 대답을 했을까. 그냥 그녀 눈에 보이는 대로를 인정했다.
"다들 젊었을 때는 그런 거 아니에요?"
군인 아버지 밑에서 귀가는 저녁 9시 전에 해야 했던 20대를 보냈다. 당시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엄마랑 같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내가 연애를 하는것에 매우 민감했다. 같은 반 남학생이 전화를 와도 내가 없다고 하고 바꿔주지 않았고 내가 밖으로 나갈라 치면 무엇 때문인지,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고 확인했다. 그것이 새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라면 했어야 하는 자신의 의무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튼 그녀의 철저한 사생활 단속 속에서 나는 연애를 제대로 못하고 청춘을 보냈다.
가끔 고백은 받아봤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하는 강당의 무대에서 기타를 멋지게 치던 한 학년 위의 선배한테, 그리고 커피 한잔 하자고 해서 갔던 그곳에서 수줍게 고백하던 나보다 키가 작았던 남학생. 길을 걷고 있는데 길을 묻겠다고 내 옆에 차를 세우더니 그때부터 나를 한동안 스토커 하다가 사라진 남자도 있었다. 직장에서는 최대 여덟 살이 많은 사람한테도 고백을 받아 봤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여성의 처녀성을 목숨처럼 여기던 극강 보수집안에서 자라다 보니 어느 한 사람 가벼이 만날 수 없었고 그렇게 변변찮은 연애도 없이 젊은 시절을 보냈고 집에서 연결해 준 사람과 결혼을 했다.
나는 지금 혼자이다. 의도적인 싱글 라이프를 가지게 되었다. 나이 오십이 되어 그냥 나라는 욕망은 포기하고 살던 대로 살아도 되는데 굳이 나는 혼자로 돌아왔다. 나를 보내준 그와의 마지막 날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올라온 감정에 목소리가 떨리자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갔다. 그는 나를 사랑했었을까? 경상도 남자인 그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사랑했고 나를 아꼈음을 안다. 그는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놓아주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의 분노가 사라지는 날 다시 그와 친구가 되고 싶다.
갈라지게 된 이유는 나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전반기를 주변에 끌려다니며 살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억울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내 인생은 끝인 것만 같았다. 뒤늦은 나이에 이것저것을 도전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이 상태로는 큰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변화를 맞기 위해서는 내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갈라서기 수년 전부터 혼자서 살아야 하는 인생을 선택할 것인지를 나 자신에게 물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혼자가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이제부터 다시 내 갈길을 찾아야 하는데 의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줄 누군가가 그리웠다. 고다르 영화비평모임에서 알게 된 결혼회사를 운영하는 이 00 대표님한테 '저 같은 사람은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좋아할까요?' 하고 물으니 대표님 하시는 말이 나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특정 마니아층이 좋아하는 타입이라 맞추기가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이렇게 스타일리시하고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 웨이트를 통한 꾸준한 관리로 엑스테이프를 갖고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럼 키 작고 배 나오고 순종적인 척하면서 여우인 여자 만나라고 해!'라고 속으로 외쳤다.
어느 날 에이블을 만났다. 당시 나는 코칭을 배우고 있었는데 이제 막 시작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많은 궁금증이 있던 시기였다. 코칭을 전공까지 한 그를 오프모임에서 만나면서 나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는데 그 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전혀 귀찮다는 내색 없이 오히려 나의 질문을 즐기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나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훗날이지만 만나지 한 시간도 안 돼서 그는 나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의 첫 연애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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