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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a Jan 01. 2024

보석으로 보아야 보석이다

당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을 사랑하세요

"당신은 나한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에요. 나의 보석이에요"


오늘도 그는 나의 귀를 이렇게 간지럽힌다. 쑥스러웠지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고마워요"라고 답하며 가만히 눈을 들어 그의 얼굴을 보는데 그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눈을 피할 수가 없다. 이내 곧 어색한 감정이 들어 나의 눈동자가 흔들릴 때 즈음 그가 말한다.
"하지만 귀한 보석도 보석으로 보아야만 보석이에요"


그는 이렇게 반전이 있다. 나를 감동시켰다가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로 헛갈리게 한다. 사실은 기분이 나빠졌다고 해야겠다. 은근 협박하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너, 나 아니면 안 돼, 나니까 이쁘다고 하는 거야. 아무리 값비싼 보석이라도 내가 돌이라 생각하면 돌인 거야' 혹시 그는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나에게 보석이라는 말을 썼던 사람이 또 있다. 그녀의 이름은 쟈스민이다.


십수 년 전 만난 우리는 서로가 아버지에 대한 공통적인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어리석은 가부장의 역할에 가정이 파괴되고 그를 용서하지 못해 생겨버린 한을 서로에게 토로하면서 같은 어려움을 거쳐온 사람들 간에 생기는 전우애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그녀는 미국 유학을 갔다 오고 다시 한번의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영어공부에 집중하던 시기였고 영문학을 전공한 나도 영어에 대한 미련으로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힘들었던 가정사와 함께 공통의 관심거리는 그녀와 나를 급속도로 가깝게 만들었다.


한 번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대구 동성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살사바에 갔었다. 그때 그녀는 '유학을 가서 그곳 생활과 사람들에게 잘 동화되고 살려면 춤도 좀 배워두는 게 좋아' 라며 라틴댄스를 배울 것을 추천했고 그곳에서 지금은 쿠바에 살고 있는 살사 황보를 처음 만났다. 꽁지머리를 한 키 작은 신성우 같이 생긴 그는 나와 쟈스민을 포함해서 약사 향이,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는 하바나, 냉장고 기사 삼룡이 그리고 캬츄사에서 원스타 통역을 담당하던 일리노이대학교 재학 중이던 성구까지 포함해서 심야 직장인 라틴 댄스반이 만들어졌다.


사실 나는 춤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다. 왜냐면 나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춤 때문에 바람이 났고 결국 아버지와 이혼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인 제공자는 술은 마신 날이면 폭언을 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에게 있었다. 아버지의 쿵 쿵 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잠을 자는 척해야 했다. 그렇게 한때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그분이 어릴 적에는 지극한 사랑으로 나를 바라봐 주고 애지중지 키워주셨던 아버지와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렇게 밤이면 만나서 둔하고 어색한 몸을 어그적 거리면서 라틴댄스를 배웠다. 몸을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는 것 특히, 가슴과 허리를 8자를 그리며 앞뒤로 좌우로 움직이면서 흐느적거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나였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서로 친해지고 수업도 진척이 되니 처음에는 삐걱대던 몸이 점점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소셜댄스인 라틴댄스는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대가 보내는 신호를 읽기만 하면 즉석 해서 낯선 이와의 댄스가 가능하다. 연습을 통해 서로의 합을 맞춰야 하는 다른 댄스들과는 달리 리듬만 읽을 수 있다면 즐길 수 있다. 살사에서부터 시작해서 메링게, 바차타, 차차 등으로 수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대표되는 스텝과 턴을 알고 리듬 속에서 상대의 신호를 읽고 받을 준비가 되면 바로 실전이다.


그날도 심장을 두드리는 퍼커션과 음악에 맞춰 춤을 배우고 나서 헤어지기 아쉬워 연습하던 살사바에 주저앉아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고 늦은 밤 우리는 헤어졌다. 쟈스민과 함께 주차해 놓은 차로 가던 중에 그녀에게 말했다.

"사무실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재밌고 마음 맞는 사람도 많은데 왜 사무실에는 그렇게 나랑 맞는 사람이 없는 걸까? 한두 명이라도 있으면 마음 잡고 일하기 좋을 텐데"

그러자 길을 걷던 쟈스민이 멈춰 서서 나한테로 몸을 돌린 후

"그래서 보석은 찾기 어려운 거야. 만약 보석이 찾기 쉽고 지천이면 그게 자갈이나 다를 바 없지 어떻게 그 비싼 보석이 될 수 있었겠어?"라고 말한다. 그녀의 혜안에 당시 삼십 대 후반이었던 나는 감탄을 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그녀가 지금은 미국 로드아일랜드에 있다. 독하게 공부를 해서 철밥통 자리를 깨고 나와 미국에서 정말 교수가 되어 그녀만의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었다. 원하는 것은 뭐든 해내는 그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그녀, 나의 의지가 약해질 때면 그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녀가 보고 싶은가 보다.


내게 보석 같은 존재였던 그녀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교수가 되는데 올인했기에 때문에 한국에 있던 부동산도 팔고 사무실에도 사표를 쓰며 스스로 돌아갈 길 없는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자신의 집중력을 흩트려 뜨리는 모든 것을 차단했다. 나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2012년에 본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단절된 그녀가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 결국 교수로 정식 임명되어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2019년 가을이다. 로드 아일랜드 대학 웹사이트에 들어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녀 이름을 검색했다. 거기에 분명히 그녀가 있었다. 쟈스민


무수히 많은 자갈 속에 보석 하나가 들어가 있다고 해도 그 가치를 모르고 넘어간다면 그냥 돌일 뿐이다. 귀한 보석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가치 부여를 못 받는다면 자갈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가치는 매우 주관적이지 않는가? 주관적인 가치에 객관성을 부여하여 고가의 가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모두가 귀한 보석을 갖고 싶어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돈을 쫒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든 허구는 아닌 걸까.


어쩌면 우리는 가치를 부여한다는 명분으로 차별적으로 사람과 사물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 만물에 어느 하나도 그냥 생기지 않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우주로부터 부여받았을 텐데 누가 누구의 가치를 매긴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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