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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a Dec 25. 2023

굿 허거

뉴요커에게 인정받은 포옹 잘하는 한국 남자

 

미미가 한국을 떠났다. 대구 캠프워커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이 위인 뉴요커이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아는 것도 하나없이 어느 날 무작정 한국 그중 대구 근무를 지원했었다. 근무가 확정되고는 뉴욕에 있는 집도 팔고 배낭 하나와 그녀의 단짝인 비글 "벨라"만 데리고 6000킬로미터가 넘는 태평양을 건너와 낯설고 보수적인 이곳 대구에서 5년을 살았다. 이방인으로 살던 도중 인터내셔널 모임인 브런치 레이디스에서 나를 만나게 되었고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진하게 우정을 나누었지만 계약기간 완료가 되었고 더 이상 출퇴근이 있는 월급쟁이로서의 삶을 원하지 않던 그녀가 사표를 내게 되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녀가 사표를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서히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던 나이지만 막상 그녀가 내 곁을 떠나고 나니 세상이 텅 빈 듯 허전했다. 왔을 때와 똑같이 배낭 하나에 벨라를 데리고 출국하던 그녀를 보내야 했던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정작 잘가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녀를 보내야했다. 출국 심사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그녀를 향해 들어가는 내내 나는 손을 흔들었고 그녀는 줄곳 뒤를 돌아보다가 결국 그렇게 사라졌다.






미미의 빈자리를 비집고 그가 들어왔다. 첫날부터 적극적으로 감정표현을 하였고 매주 나를 보러 대구로 내려왔다. 자기 계발과 취미생활 등에 관심이 많은 나는 주말마다 다양한 모임이 있었는데 그는 내가 가는 모임에 자신도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참석하려 했다. 대구까지 내려온 사람을 혼자 두기에도 미안해서 함께 참석하게 되었고 아직도 처음 그를 음악 하는 동생들에게 소개했던 날의 떨림이 기억난다.


록음악을 하는 인디밴드들 연합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공연장에 내가 낯선 사람과 같이 들어가니 동생들은 누구지? 싶으면서도 공연시간도 임박했고 또 실례가 될까 봐 아무 질문도 못하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나와 길거리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동생들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그러는 내가 답답했을까 '라나, 남자친구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먼저 손을 내밀어 일일이 악수를 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이동하게 된 뒤풀이 장소에서 그는 동생들의 면접관 같은 시선과 질문들을 거치게 되었다.


동생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는 주말에 있는 나의 여러 모임들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고 때로는 부산에, 경주에, 그리고 광주까지 동행을 했다. 3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내려와 피곤할 텐데 다시 다른 지역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다니는 그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더 신기한 것은 그런 모임에 처음 얼굴을 비추는데도 이질감 없이 잘 동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도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어느 한 곳이라도 삐끗되었더라면 벌써 헤어졌을 텐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나도 점점 그랑 다니는 것이 편해졌고 그의 말대로 우리가 인연인 건지 아직까지 함께하고 있다. '우리 대단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한 번도 주말에 안 만난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말처럼 그렇게 7개월째를 맞이하던 어느날 미미와 그가 만났다.






"Wow~, He is a good hugger."


말로만 듣다가 처음으로 미미가 그를 만났다. 지난해 5월 한국을 떠난 지 11개월 만에 노스캐롤라이나 롤리더럼(RDU) 공항에서 나를 만나 반가움에 힘찬 포옹을 나눈 후 내 옆에 서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녀는 '웰컴투어메이카' 하고는 두 팔을 벌린다. 그가 쑥스럽다는 듯 그러나 성큼성큼 다가가 긴팔로 그녀를 부드럽게 안는다. 그와의 짧은 포옹을 나누고 난 후 돌아서서는 미미는 동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면서 엄지 손가락을 위로 척 올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다. 그녀의 반응에 신난 나도    

"I am right, right?"


그녀가 한국을 떠난 날부터 나는 미국방문을 생각하고 있었고 다음 해 4월 2주간의 장기재직을 사용해서 미국을 갈 계획을 잡았다. 그에게 알리니 이주일이나 못 볼 수는 없다고 자신도 가겠다고 한다. 그가 벌써 내 가장 소중한 친구들에게 소개할 만큼의 존재가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언제든 헤어질 수도 있는 관계라 생각했고 누군가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거고 내 소중한 친구들에게는 숨기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떤 인생 스토리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지 그들은 다 보게 될 것이다. 가끔은 부끄럽고 그들을 실망하게 할지라도 내게 가족으로 들어온 만큼 내 인생 희로애락의 증인이 될 것이다.’


친구들에게 '에이블이 같이 가도 될까? 너희들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라고 물으니 그들은 '우리가 보고 싶은 건 너이지 그가 아니야. 하지만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면 우리에게도 소중한 사람이니 웰컴이야'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그와 함께 미미와 친구들을 보러 가게 되었고 그것은 그에게는 생애 첫 미국여행이었다.


머무르는 동안 그는 나의 친구들 집을 차례로 방문하게 되고 흥이 많은 그들과 어울리면서 수많은 포옹을 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가슴으로 포옹할 줄 아는 사람이다.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시면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이십 대 이후를 보낸 그인데 어디서 저렇게 포옹하는 법을 배웠을까?. 특히나 포옹이라는 문화가 익숙지 않은 우리나라 땅에서 나고 자란 한국 남성이 말이다.






수년 전 지금은 미국에서 교수로 있는 한때는 나의 동료였던 쟈스민이 있었다. 그녀는 일찌기 공직이 자신에게 맞는 옷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재직중 미국유학을 다녀외서도 계속 다시 돌아가 공부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던 때였다. 사무실에서 별종으로 취급당하던 그녀가 어느날 복도에서 친한 동료를 만나 반가움에 포옹을 나누는 것을 본 한 남성 동료가 그 모습을 보고는 '여기가 미국인 줄 아나? 일하는 곳에서 지금 뭐 하는 거래?' 하며 지나가던 것이 문뜩 기억난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포옹에 많이 열려있는 것 같다.  처음 그를 통해 알게 된 수심단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사랑합니다 사촌님' 하면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과 포옹을 나누었고 지금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위대한 경영자 모임에서도 만나면 서로 반갑다고 포옹을 한다. 이미 교감이 이루어진 사람들끼리의 포옹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을 때 상대방의 진심이 전달된다. 진실한 포옹은 진심을 거짓된 포옹은 거짓을 전달된다.



만약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다면 마음을 열어 사랑을 표현하자.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가로막는 불편한 생각들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도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깨달아 열린 마음으로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자. 사랑하는 사람과의 신체 접촉은 말보다 강한 위로이다. 누군가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강해진다. 그러니 꼭 안아주고 토닥거려 주자  그리고 말하자


"내 안의 사랑이 당신 안의 사랑에게 인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포옹 #굿허거 #사랑한다말하기 #포옹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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