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공무원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나와 공직사회 중 정말 변하지 않는
“저기 공무원들 우르르 지나가네.”
간밤의 회식 자리에서 과음을 한 탓일까. 평소 잘하지 않는 늦잠을 자고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파트 단지 앞에 대기 중이던 택시를 탔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갈까요?”라며 반기는 택시 기사님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시청으로 가자는 말 대신에 “공평네거리요”라고 말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까지 직업이 알려져서 남들 눈치 보며 불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이 말이야,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은 더욱더 싫어서 사무실 근처에서 내려 조금 걸을 요량이었다.
택시를 타면 기사님의 유형이 두 가지로 나뉜다. 보통은 도착지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 말 안 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얼마 나왔습니다” 하는 분이 대부분인데, 가끔 스스럼없는 기사님을 만나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이런저런 말을 계속하고 가끔 “안 그런교?” 하며 자기 생각에 동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네, 기사님 생각이 맞습니다”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기사님 기분도 안 상하고 계속 얘기도 이어 나갈 수 있고 또한 나는 그가 말하는 동 안 고개만 끄덕이고 있으면 되니까.
그런데 오늘 만난 기사님이 후자 유형이다. 아침부터 이야기가 늘어졌다. “아, 네. 맞습니다” 하면서 가고 있는데, 공평 네거리 도착하기 전 중구청 앞 횡단보도에 녹색 등이 켜지면서 잠시 대기하게 되었다. 횡단보도 위를 회색과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가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앞을 보고 있는 나와 달리 갑자기 기사님이 그런다. “저기 공무원들 우르르 지나가네요. 어쩜 저렇게 똑같을까?” 나는 제 풀에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저분들이 공무원 인 걸 아세 요?” 했더니 “딱 보면 모르겠어요? 다 똑같이 생겼잖아요.” 속이 뜨끔한 나와 달리 기사님은 태연하다. 그의 말투를 들으면 자신의 택시에 타고 있는 내가 공무원 같지는 않기에 그런 말을 편안하게 하는 건데, 사회가 공무원들에게 갖고 있는 선입견을 엿보는 것 같아 맘이 편치만은 않다.
나? 그래, 좀 튀기는 하는 것 같다. 큰 키에 이목구비가 큼직해서 인지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를 궁금해한다. 평소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해서 근무 외 시간에는 외부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려고 하는 편인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소개하는 것이 편치 않다. 처음 나를 본 사람들은 패션 쪽에서 사업을 하거나 문화예술 등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지 않을까 하고 상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시청에 있습니다”라고 하면 “아, 그럼 공무원이신 거예요?”라고 다소 실망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재차 묻는다. 나는 솔직히 그들의 그런 반응이 더 불편하다. 대체 공무원다운 것이 뭐일까?
공무원 같지 않다는 말을 심지어 동료들에게도 듣는다. 해 가지고 다니는 게 공무원 같지 않아, 스타일이 튀는 게 다루기가 쉽지는 않겠어, 일은 잘하는데 같이 근무하고 싶지는 않아 등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벽을 치는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에 대한 정의를 그들이 내리는 것을 알게 되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인데 말이지. 공직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 30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그런 말을 듣는다. 공직사회가 안 변하는 건지, 내가 안 변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리고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다행이고, 그런 사람들은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대부분은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고, 원하는 곳보다는 남들이 좋다는 곳, 아니면 자신의 스펙에 맞춰서 직장을 선택하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직 문화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또한 우수한 업무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속감은 저조해지고 의욕은 떨 어지기도 한다. 조직으로부터 관성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내가 요즘 그러하다. 다들 그러고 살아, 라는 자조적인 말로는 부족한 것 같다.
이미 인생의 절반을 보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십 대, 이십 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방황했다면 이제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서 하는 고민이다. 안정적인 직업에, 퇴직하면 연금에, 뭐가 고민이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 지금까지 그랬듯이 살아온 대로 사는 것도 좋겠지. 그런데 재미가 빠져 있다. 하고 싶은 것 없고 열정이 빠진 인생을 어떻게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타이트한 찢어진 청바지에 목이 축 늘어진 면티가 어울리는 여자로 살고 싶다. 육십, 칠십이 되어서도 가슴 설레고 싶고, 할로윈에는 어깨가 드러난 코스튬을 입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 뱃살은 처지고 세월의 나이테가 얼굴에 가득한 할머니가 되어서도 비키니에 라이방을 쓰고 해변을 걷고 싶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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