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창연 발표자료
“하늘이 주는 선물은 우리가 바라던 모양으로 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기쁨과 축복의 얼굴로, 때로는 고통과 시련의 얼굴로 찾아옵니다. 저는 오늘, 그 모든 얼굴을 받아들이며 살아온 저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올해 이 모임에 오면서 따로 괘를 뽑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난 4월, 후쿠오카 주역여행에서 제가 원하던 괘를 뽑았기 때문입니다. 그 괘는 변화와 회복을 상징하는 **천지비(天地否)**였고, 그 순간 저는 오랫동안 변화를 위해 애써왔지만 정체되어 있던 제 삶에 드디어 전환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그 안에 담긴 주리지(疇離祉) — "하늘 복 속에서 삶을 산다" — 라는 메시지가 제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하늘과의 연결 속에서, 내가 노력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축복 속에서, 그 선물을 받아 삶을 창조하며 살아간다.’라는 이 말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생각만 해도 마음 안이 차오르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후쿠오카 여행 마지막날 아침, 빛살 선생님이 적어주신 글귀를 제 방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매일 봅니다. 그러면 그 문장 속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저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요. 저에게 ‘하늘 선물 속에서 삶을 산다’는 것은 타고난 기질, 사명, 인연, 직관, 심지어 고통까지도 포함한 삶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축복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느끼고, 거친 파도를 오히려 더 즐겁게 타는 써퍼처럼 인생의 매 순간에 응답하며 사는 삶. 저는 이제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삶(Having)’보다 ‘존재로 살아가는 삶(Being)’을 선택하려 합니다. 이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더 분명해집니다.
지난 7월 1일,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나, 아버지가 위독하셔. 00 병원 장례실이야.”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고,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그해 2월에도 아버지가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사촌에게 들었지만, 그때는 뵐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오히려 ‘이참에 정 안 가는 직장생활 잠시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입원 진단서를 발급받아 가족 돌봄 휴직을 신청하는 기회로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 다시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는 마음이 달랐습니다.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쌓인 미움과 원망이 너무 깊어서 아버지를 다시 마주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때 둘째 딸이 “같이 가자”며 나의 손을 잡아주었고, 결국 같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실 문 앞, 입구 쪽 침대에 누워있는 마른 노인을 보았을 때 저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볼은 파여 뼈만 남은 얼굴. 제가 기억하던, 키 크고 건장했던 그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었습니다.
딸이 “맞아, 할아버지 계시네” 하고 말했을 때, 그제야 노인의 얼굴에서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알츠하이머로 온몸이 뒤틀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는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병실밖 대기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도저히 아버지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 나를 두고 딸이 홀로 병실에 들어가 아버지와 두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문 뒤에 숨어서 바라 보았습니다. 치아가 다 빠진 아버지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수많은 말들 중에 또렷이 들리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경란이, 네 엄마” 였습니다.
저와 아버지의 관계는 대구로 이사를 온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은 싸움이 잦았고 고등학교 3학년 어느 날 아침, 전날까지 저녁을 차려주던 엄마가 아침에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긴 후 저는 신을 버렸습니다. 믿음은 사라지고, 분노만 남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긴 거지? 하지만 난 절대 쓰러지지 않아. 보란 듯이 잘살아내 보일 거야' 하는 분노로 20대와 30대를 버텼고, 아이들 때문에 40대까지 버티었습니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저는 동화 속 계모 같은 여자를 ‘엄마’라 불러야 했고,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으면 공직생활로 번 돈도 모두 계모에게 빼앗겼습니다. 한창 멋을 부려할 나이에 보푸라기 싸구려 옷을 입고 다니고 돈을 벌면서도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아버지는 ‘맏딸은 그래야 한다’ 며 저를 외면했습니다.
결국 29세 나이에 더 이상 같은 지붕 아래 살 수 없어 도망치듯 결혼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악연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계모가 노름까지 손대면서 노름돈으로 집까지 날리면서 갈 곳 없게 된 아버지가 맨 몸으로 우리 집으로 들어오면서 저와 아버지의 관계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는 끝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 마흔에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두 해 동안의 학위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저는 그 사실에 또다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으로 할 말을 잃었지만 그제야 비로소 재정적·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마흔아홉에 사무관으로 승진하며 인생 숙제를 다 끝낸 줄 알았지만, 곧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올라왔고 이십 대에도 하지 못한 심적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전부 거짓 같았고 지금 현실은 내가 결정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나를 버린 어머니로 인한 것이라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롯이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운동을 시작했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운동과 글쓰기는 분노와 상처뿐인 제 안에 치유를 불러왔고,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주역을 만나고, 저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과의 만남은 저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저는 동생과 오랜 갈등의 매듭을 풀었습니다.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한숨 재가된 아버지를 바라보며 소리도 못 내고 울고 있는 나를 보던 동생이 내 어깨를 힘껏 안으며
"누나 내가 잘못했어. 이제부터 내가 정말 잘할게" 말하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동생도 내가 그렇듯이 나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재로 돌아간 아버지를 보내며 깨달았습니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조차 제 삶을 빛으로 이끈 스승이었다는 것을.
저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붙들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빛과 그림자, 고통과 기쁨, 무너짐과 일어섬을 모두 품으며 걸어갑니다. 때로 쉬고, 길가에 핀 꽃을 보며 행복을 느끼고, 나로 존재하며 살아갑니다.
하늘 선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하늘이 내게 주신 소명을 깨닫고 삶이 축복임을 알아 감사하며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위해서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유전자키 공부, 4개월간의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는 액티베이션 과정을 거쳐 8월부터 비너스 시퀀스를 공부하고 있다. 비너스 시퀀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관계를 맺을때 헤어지는 유형을 보면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는 안봐" 처럼 의도적으로 손절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최고의 방법인 것 같았지만 우리는 다시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다시 관계의 어려움속에서 봉착한다. 이것은 상대가 잘못인가, 아니면 문제가 나한테 있는 것인가.
만남은 나의 수준을 넘지를 못한다고 한다. 내가 성장없이 현재에 머물면 항상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같은 문제를 부딪히게 된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만남이 달라지고 환경도 바뀐다.
교수님께서 수업 마무리 시간에 소감을 물으셨고 그동안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많았던 것과 아버지와 나의 단절을 천지비를 들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교수님께서 "천지비의 다음 괘는 천화동인이고 그 다음은 주역에서 최고 이상향으로 보는 화천대유입니다. 라나님께서 성찰을 통한 성장을 통해 화천대유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신다.
천지비는 단절이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에서 처럼 하늘과 땅이 등지고 교류하지 않는 쾌이다. 그러나 이후 바람이 땅위를 스쳐가듯, 지나가며 바라보게 되고 물리적 분리 이후,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면서 이해과 수용, 내면의 화해가 일어난다. 교류가 시작되면서 주역의 다음 괘인 천화동인의 시대가 온다.
천화동인은 동지가 모인다는 길괘이다. '크게 얻고 처음부터 형통하다' 라는 의미의 화천대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와 성향이 비슷한 동지들이 내 곁에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군자정(利君子貞) 즉, 군자가 바르게 행동해한다는 전제가 있다. 결국은 나의 성장없이는 천화동인은 일어날수 없다. 변화와 성장만이 내가 갈 길이다.
"하늘이 준 선물은 화려한 금빛 보석이 아니라, 때로는 고통과 시련의 얼굴로도 찾아옵니다. 그 무게를 기꺼이 품었을 때, 그 안에서 빛이 깨어납니다. 이제 깨닫습니다. 저를 미소 짓게 한 순간도, 저를 무릎 꿇게 만든 순간도 모두 같은 하늘에서 온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이것도 나의 길이구나.’
그 순간, 삶은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제 곁에서 저와 함께 춤추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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