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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render

자신의 그림자를 수용해야 내면의 갈등이 사라진다.

by Rana



"자신의 그림자를 수용하는 것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첫걸음입니다. 내면의 억제된 감정과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 안에 잠재된 능력과 창의력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하늘이 주는 선물은 우리의 완전한 수용을 통해 드러나며,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아, 즉 시디가 자연스럽게 발현됩니다. 이는 우리가 내면의 균형을 이루고, 진정한 자아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열쇠입니다."




고3 어느 날 아침, 어제까지만 해도 저녁밥을 차려준 엄마가 사라진 후 나는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종교의 중심에 있는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지금 벌어진 상황에서 나는 세상을 움직이는 존재라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분노만 남아 있었다. 분노의 힘으로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운명과 싸웠다.


죽고 싶었던 20대, 30대를 거쳐 아이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40대 중반까지의 삶은 존버의 연속이었다. 하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시련을 쏟아부어도 절대 꺾기지 않겠다는, 나를 낳아준 엄마, 아버지의 도움 없이도 내 혼자 힘으로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였다. 그래서 신적 존재가 지금 나에게 만들어 놓은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건방지게 운명에 저항했다.


아버지란 존재는 나의 한계를 시험하러 온 사람이었다.


혼자가 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재혼을 했고 새로 가족이 된 사람은 우리가 동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팥쥐엄마, 신데렐라의 계모 같은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벌써 의상실에서 맞춤옷을 입고 나이키, 아식스를 신으며 죠다쉬 청바지에 저스트 옷을 입던 내가 단숨에 밥을 짓고 빨래를 해야 하는 콩쥐 신세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기 방 청소도 한번 해본 적 없는 세상 둘도 없는 철부지였다.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는 것, 엄마가 새엄마라는 것은 여자에게 치명적인 흠이라고 했다. 그래서 팥쥐 엄마를 엄마라 불러야 했다.


처음이 어렵지 몇 번 부르니 그것도 된다. 딸을 식모처럼 취급하는 새엄마를 엄마라 부르며 집안일을 해야 했고 일하면서 번 돈을 시집자금 준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계모에게 다 뺏겼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는 맏딸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고 혹시나 팥쥐엄마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나를 동정하지도 내 편을 들지도 않았고, 10원짜리 하나 다 뺏겨서 늘 돈이 궁핍한 나에게 용돈을 주는 법도 없었다. 한창 이쁘고 멋 부려야 할 이십 대 어느 날 보푸라기가 잔뜩 일어난 오천 원짜리 티를 입고 동사무소 민원실에서 일하는 나를 보면서 갑자기 현타가 와 눈물이 터져서 혼자 운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결코 이렇게 꺾기지 않을 것이라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십 대 후반으로 들어가니 더 이상 한 지붕아래에서 같이 살 수가 없었다. 죽지 못한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귀어 볼 수도 없었던 상황에서 이렇게 결혼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 같았지만 짧은 해방감 이후 다시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나까지 이어진 잘못된 인연이 끊질기게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그렇게 나의 삼십 대도 소진되고 있었다.


집 두 채를 잃고 오갈 데가 없어진 아버지가 맨 몸으로 우리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의 분노와 인내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으면 미치겠구나 하는 그 시점에서 나는 나이 마흔에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학위를 마치고 미국에 눌러앉고 싶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잊어졌던 악연이 다시 되살아나 나의 남을 인생을 또 괴롭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언어실력이 돈 벌 수준이 되지 않아 돌아와야만 했다.


두 해만에 돌아오니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아버지는 그사이 세 번째 결혼을 해서 다른 곳으로 가 있는 상황이었고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로부터 재정적으로도 혈연적으로 독립이 가능해졌다. 그때 내 나이 마흔셋, 어쩌면 너무 늦은 나이였을지도 모른다.


뒤늦게 찾아온 아이들의 사춘기를 치열하게 보내고, 두 아이를 드디어 대학에 보내고 나도 나이 마흔아홉에 사무관으로 승진을 하면서 드디어 인생의 모든 숙제를 푼 것 같았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심각한 번아웃이 찾아왔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내 인생의 가장 꽃 같은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도 남의 기대와 요구에 맞추며, 그들 때문에 내 인생을 소비해 가며 인생의 절반을 보낸 것이다. 아~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생의 절반은 생존을 위해서 살았다. 이렇게 쓰러지지는 않겠다는 분노의 힘으로 나를 갈아서 오십 년을 버티었다. 그러나 분노 에너지로 나를 갈아서라도 버티어야 했던 생존의 목적이 사라지자 나의 정신과 육체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출근을 하기 위해 한 발짝을 내딛는 것조차 너무 힘이 들었다. 억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는 있지만 남은 오십 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유를 찾지 않고서는 이 시간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운동은 내가 살기 위해서 내 무의식이 알려준 방법이었다. 운동을 하고 글을 쓰면서 나의 내면과 외면의 치유가 동시에 들어간 것이다. 누군가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내 안에서 어느 순간 그렇게 답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와 나의 삶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마음수련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캔 윌버를 배우고, 오쇼의 책을 읽고, 벚꽃을 만나면서 같이 공부하는 도반도 생겨났다. 그러다 주역을 만나게 되고 하늘의 메시지를 같이 풀이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고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사는 여러 존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빛나는 하는 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할 때면 너무도 쉬웠던 내면의 평화가 헤어져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생존모드로 들어가는 간극을 경험하기를 반복하다가 최근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인 유전자 키를 통해서 나의 일과 삶이 균형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분노와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찼던 나의 내면의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안정이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면 무의식 속에 숨어있다가 중요한 삶의 순간 튀어나와 고통을 주는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고통이 패턴을 멈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이고 Surrender 해야 한다. 그러나 메타포 방식으로 쓰인 글은 처음 읽어서는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문장 하나를 들고 사색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글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온다. 드디어 그림자를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자신이 억누르고 부정했던 내면의 감정과 특성을 받아들이고 통합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의 첫걸음의 시작이다.







나는 이제 안다. 그토록 미워하고 거부했던 나의 그림자들이야말로, 내가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마주해야 했던 스승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내 삶의 비명과 분노, 억울함과 외로움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내가 끝내 외면했던 나 자신이 있었고, 그 조각들을 하나씩 끌어안으며 나는 진짜 나로 조립되어 가고 있다. 더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더는 누구 탓도 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이 만들어준 역할이 아니라, 나라는 이름 하나로 숨 쉬는 존재로 살아가기로 했다.


더 이상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는 중이다. 나의 빛과 그림자, 고통과 기쁨, 무너짐과 일어섬 모두를 안고 나의 삶의 여정을 덩실덩실 걸어가는 중이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에 행복해하며 살고자 한다.


Surrender 하라는 것은 그림자를 받아들여 내면의 평화를 찾고 진정한 나로 태어나라는 신이 남긴 메시지이자 또 하나의 언어였고, 그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삶의 리듬이 달라졌다. 나는 매일 나를 해석하고, 나의 삶을 성찰하고 내면의 나를 만나며 나라는 존재로 살고 있다.


존재가 목적이 되어 사는 이 여정이야말로, 내 인생 후반전의 가장 큰 선물이다.




그림자를 껴안을 때, 비로소 내 안의 빛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된다. 빛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가린 존재를 미워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를 가린 건 세상이 아니라, 내가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Surrender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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