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가 아닌 곳에 있는 이유
서른 해가 넘도록 한 조직 안에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조직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매일같이 출근하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성과도 꾸준히 쌓아왔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외모 또한 자기 관리의 영역이라 철저히 가꿔왔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그들 무리에 속하지 못했다. 함께 있는 듯하지만 결코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나는 조직이라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지 않으려 하거나, 일부러 외면하는 것 같았다. 회의 자리나 부서 업무나 팀 워크가 중요한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복도를 지날 때, 건물 밖을 산책할 때, 우연히 구내식당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사무실 안에서도, 나는 투명 인간처럼 느껴졌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는 있지만 들리지 않는, 그렇게 나는 고스트처럼 살아왔다.
처음엔 내가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더 잘해야 한다고, 더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이건 단순히 실력이나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건, 내가 ‘다르다’는 감각에서 비롯된 거리감이었다.
나는 조직 속에서 늘 ‘이질적인 존재’였다. 소위 말하는 조직 내 메인 스트림 속에 포함되지도 못했고, 소속감을 통해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안락함도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좀 튀는 사람’, ‘조금 유별난 사람’, ‘과하게 자기 관리하는 사람’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 방식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 표현하며 살아가려 했을 뿐이었다. 결국 이곳에서의 나는 ‘나’이기는 하지만, 진짜 ‘나’는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나는 여기 있는 걸까?"
분명 이곳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세계인데, 나는 왜 여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걸까. 내가 정말 원했던 곳이 아니라면,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고, 조직에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면서 왜 지금까지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물음의 끝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부적합함’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나와 맞지 않는 세계를 살아내야 했다. 조용한 물에선 자신의 흐름을 알 수 없고, 거친 물살 속에서야 방향이 선명해지는 것처럼. 나는 이 낯선 조직의 중심에서 나 자신의 색을 더 또렷이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확인의 과정은 조직 안에서보다는 오히려 조직 밖에서 더 선명했다. 조직 안에서 나란 존재의 영향력은 미비했지만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무시하지만, 조직 밖에서는 내가 누구인지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그들 덕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정받고 존재를 확인받고 싶다는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고스트가 아닌 소속된 조직이나 공동체로부터 나라는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아주 인간적인 원초적 갈망.
그래서 나는 바깥에서 다시 나를 증명해 보기로 했다. 웨이트를 시작해서 마음을 담는 몸이란 그릇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보기 좋은 몸뿐만 아니라, 내가 다시 나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몸으로 만들었다. 내 인생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바디프로필과 피트니스 대회에도 나갔다.
그리고 글을 썼다. 내 목소리를 찾기 위해,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기 위해서 공무원 라나언니(2021년)를 내고 이어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며, 내 안의 파편으로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정리하면서 나를 표현해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구재즈싱어즈에서 알토로 노래하고,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고, 지금은 드럼을 배우며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고 있다.
모두가 나에게는 한계에 도전하는 행위였고 이렇게 계속 한계를 깨는 작업을 통해 내면과 외부의 균형과, 정신의 건강함과 마음의 강인함을 돌려주었다. 이를 통해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말들을 들으며, 드디어 나는 ‘존재하는 나’를 체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져갔다. 오전 9시, 사무실 한구석에서 존재감 없이 앉아 있는 나, 그리고 오후 9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웨이트를 하거나, 드럼을 연습하고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만 한 나. 둘 다 분명 나였지만 너무도 달랐다. 가끔은 나 자신에게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삼십 년 넘게 한 조직을 위해 일해왔지만 티끌의 영향력도 없는 나, 아니면 조직의 바깥에서 나의 진정한 욕망을 찾기 위해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인가.
그 간극은 언제나 나에게 혼란을 주었지만, 동시에 아주 귀한 선물이었다. 조직 안에서는 내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고, 이러한 사라짐은 조직 밖으로 이동되면서 다시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나의 ‘진짜 색’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색깔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그 색은 이 낯선 곳이 아니었다면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조직은 내가 영원히 속할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나를 알아가는 여정의 가장 중요한 무대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둥둥 떠 있었지만, 그 떠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요히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나는 내가 아닌 곳에서, 진짜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지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순간에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에 집중하려 한다. 조직의 울타리 밖에서 피어난 나의 열정들—운동, 음악, 글쓰기—그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진짜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이제, 나의 색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누구의 틀에도 갇히지 않고, 내가 나로서 빛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될 것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경험하며, 더 자유롭게 표현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삶이다.
앞으로 나는, 내가 살아 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일들에 시간을 쓰려한다. 내 목소리를 담은 글을 꾸준히 쓰고, 무대에서의 떨림을 즐기고, 리듬에 나를 실어 나를 노래할 것이다. 나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장(場)을 스스로 열어갈 것이다. 과거에는 조직이 내 세상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나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나는 이제, 내가 아닌 곳에 있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안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나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나로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같은 질문을 품고 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이 질문은 조용히 멈춰 서지 않으면 들리지 않고, 나를 둘러싼 외부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비교와 평가의 시선을 내려놓고, 내가 진심으로 기쁨을 느끼는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그 순간이 바로 ‘나’라는 존재가 빛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 여정의 첫걸음은 자기 자신을 낯선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익숙한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거나, 글을 쓰거나, 몸을 움직이며 감각에 집중해 보는 일은 생각보다 큰 전환점을 만들어낸다. 그 작은 움직임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외부의 정의가 아닌 스스로의 언어로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진짜 ‘나’는 거창한 철학 속이 아니라, 나만의 리듬을 타는 삶의 구석구석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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