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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 1999

삶의 어둠속에서 희망이라는 빛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은 어머니와 천재들이다

by Rana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연기하며 아마추어 배우로 서로 만나 사랑에 빠진 마누엘라와 에스테반(롤라), 그러나 남편 에스테반(롤라)은 파리로 일하러 간지 2년이 지나 가슴이 달린 여장남자로 나타났다.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부부로 살아 가기에 힘들었던 마누엘라는 임신한 사실을 숨긴 채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오게 되고 간호사로 일하며 아들 에스테반과 살고 있다. 아들만 바라보며 살던 그녀는 에스테반의 17세 생일에 아들이 좋아하는 여배우 우마가 연기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러 갔다가 사고로 그를 잃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가 발견한 아들이 남긴 일기장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남편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녀는 바르셀로나로 가는 차편에 몸을 실었고 여장남자들이 모여서 영업을 하는 콜럼버스 탑으로 갔다. 그곳에서 옛 친구, 역시 여장남자인 아그라도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간 쉘터에서 게이와 같이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수녀 로사를 만난다. 그러나 그녀는 임신 중이다. 수녀가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임신했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가족관을 가진 로사의 집에서는 수용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집이 아니라 마누엘라에게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로사와 대화하며 마누엘라는 배속의 아이의 아버지가 그녀의 남편 롤라임을 알게 되지만 임신중독을 앓고 있는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어느 날 여배우 우마가 연극 공연을 위해 바르셀로나에 온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만나러 찾아가고 미움과 증오가 아닌 이해를 통해 그녀와 친구가 된다. 출산 과정에서 로사는 죽고 죽어가는 롤라는 멀리서 장례식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본다. 롤라를 발견한 마누엘라는 그에게 에스테반의 존재와 죽음을 알리며 아들의 사진을 건넨다. 또 다른 에스테반, 어린 아기는 AIDS 항체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아이를 거두는 사람은 로사의 부모가 아닌 마누엘라 그녀다. 아기를 데리고 다시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그녀는 2년 후 아이 에이즈 검사 결과 항체를 갖고 태어났으나 음성으로 바이러스가 없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에게 여자란, 어머니란 성모 마리아와 같다. 치유와 용서의 상징이다. 역사에서 무수히 그려지고 있는 히어로의 대부분은 남성이지만 그들은 전쟁과 권력과 파괴를 딛고 영웅이 되었다. 파괴적인 남성성에 앞서 감독은 ‘포용하는 어머니, 사랑을 담고 있는 여성성’에 대한 위대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삶의 어둠 속에서 희망이라는 빛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은 어머니와 천재들이다’라고 말하는 알모도바르는 영화계에서 가장 괴짜 감독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인생 또한 그의 영화만큼이나 흥미롭다. 어릴 적 성직자가 되기 바랐던 부모님과는 달리 16세인 1967년에 마드리드로 왔으나 프랑코 철권통치시대(1939-1975) 영화학교가 폐쇄되면서 그는 전화국에서 일하다가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이들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있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어 전위 연그에 심취하고 잡지에 희곡을 기고하고 영화에 대한 글을 적으며 모은 돈으로 8mm 카메라를 구입하여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하였다. 1980년 데뷔작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소녀들>을 시작으로 2019년 <페리 앤 글로리>까지 총32편의 영화를 제작하였으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이다.


과거 스페인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가르시아 로르카 등 위대한 예술가를 많이 배출하며 전성기를 전 세계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곳이었으나 프랑코 독재정권에 의해 예술가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모더니즘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프랑코는 국가 가톨릭 주의를 내세우며 규범과 전통에 따라 국민들을 통치하였는데 전통적 관념의 가족, 남성과 여성의 역할 등을 통해 여성은 오직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 만이 의무시 되었다. 1975년 프랑코가 죽으면서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모스트 모더니즘을 선도하기 위한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Movida(문화예술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영화에서 남자는 악의 근원이며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과거 스페인을 지배하던 프랑코이즘에 기반하여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거짓과 악행을 일삼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는 기존 악의 근원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무능하고 폭력 대신 일탈과 방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고, 그래서 주변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이다. 영화에서 여자와 남자의 모든 단점을 가진 존재로 나오는 롤라(에스테반)는 여장남자이나 여전히 남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성스러운 수녀를 임신시키고 에이즈 바이러스를 그녀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옮긴다. 임신한 로사를 진찰하는 의사는 에이즈 검사하는 로사를 창녀로 오인하고, 연극단의 남성 배우는 출산으로 죽어가는 로사의 소식을 들은 후에도 여전히 아그라도에게 성적 해소를 요구한다. 기독교적 가부장 문화 속의 로사의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키와 나이만 궁금해한다. 그리고 전통적 가족문화에 길들여진 로사의 어머니 또한 딸이 결혼 전에 임신했다는 사실과 아이의 아버지가 게이라는 사실에 딸을 포용하지 못하고 아이마저 마누엘라에게 맡긴다.


이와 달리 영화속 여자들을 보자. 그들은 프랑코이즘 시대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으로 부터 숱한 상처와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와 남성이 그저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전략해버렸음을 알았기에 포옹하고 다시 손을 내민다. 복수가 아닌 용서와 사랑으로 그들을 치유한다. 주인공 마누엘라는 이 모든 사랑을 상징하는 육화된 성모마리아로 등장하며 아픈 여성들의 화합과 연대의 중심에 서있다. 남성의 혹은 모든 인간의 죄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포용해주는 그런 존재이다. 다른 여성들도 치유의 상징으로 나온다. 여장남자인 아그라도는 내 인생을 남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하며 남자 배우 마리오의 치근덕 거림도 받아준다. 여배우 우마는 마약에 중독되고 제멋대로인 니나를 조건없이 사랑한다. 수녀인 로사는 거리에서 돈을 버는 게이들에게 봉사하며 사랑을 나누고 특히 롤라의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해 에이즈에 걸린 그의 아이를 임신하다.






영화에서 마드리드는 머무는 곳이 아닌 떠나는 곳이다. 에스테반을 임신한 마누엘라는 바르셀로나를 떠나고 마드리드에서 머무르다 아들을 잃는 고통과 함께 그곳을 떠나 다시 남편을 만나러 바르셀로나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마드리드를 떠날까? 그곳은 바로 프랑코 독재정권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메시지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여배우를 연기하는 남자와 여자배우, 여자가 된 남자, 어머니가 되고 싶은 여자, 그리고 모든 어머니에게 바친다”



“내 이름이 왜 ‘아그라도’인 줄 알아요? 왜냐면 내 인생은 남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꿈꾸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어요. 꿈은 꿀수록 더욱 그 꿈에 가까이 가는 거니까요”


“내 인생에도 그런 반쪽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 서랍을 뒤져서 사진 뭉치를 찾아냈다. 모두 반쪽이 잘려졌다. 우리 아빠일 것이다. 그를 만나고 싶다. 그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엄마에게 어땠든지 내겐 상관없음을 엄마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이런 내 권리는 엄마도 어찌할 수 없다.”


“아니,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데 어떻게 진짜 샤넬을 쓰겠어! 내가 가진 것 중에 진짜는 내 감정과 실리콘 몇 리터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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