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지구별을 여행하러 온 여신처럼 신나게 살아보려고
내가 요즘 개인적 성장을 위해 몸담고 있는 피터 드러커 경영이론에 기반한 단체가 있다. 그곳은 위대한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3M 즉, 몸, 마음, 머니를 내 의지대로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킨다. 평생의 자산인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마음 수련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고 경제적 고민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살 자유를 가져다 줄 머니의 매커니즘을 터득하여 나만의 부의 공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 (사)위경에서 배움을 시작하게 되면 고군분투하는 1인 기업에서 부터 많은 직원을 고용한 굴지의 제조업 대표까지, 우리 이웃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채가게 사장님부터 공부하는 농부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일상의 평범함을 넘어 자신의 삶과 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사회에 큰 쓰임이 있는 일원이 되어 공헌하는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다. 자신만의 성공 루틴을 만들고 습이 될 때까지 반복하며 성공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이 될 때까지 자신을 단련하고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오늘은 어제와 다른 또 다른 기회의 날이고 미래는 내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
1. 변하라. 좋은 것을 잃을 수 있지만 더 좋은 것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공무원이다. 정년이 보장되어 있어 신의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쉽게는 철밥통이라고도 한다. 그러기에 경영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경영을 공부한다. 내가 공부하는 경영은 기업가가 사업체를 잘 관리하기 위한 경영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주인으로서 내가 이 세상에 온 의미를 찾고 그것을 가치화하여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내고 영향을 끼쳐 작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함이다.
의식의 흐름은 한 방향으로만 발전한다고 한다. 발전된 의식 수준은 결코 후퇴하지 않기에 계속 정진만을 할 뿐이다. 산다는 것이 고, Suffering이다. 부처님 말씀이다. 힘든 것은 당연한 거고 나한테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힘들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배움을 찾아 삶의 지혜로 써야 할 것이다. 고는 고통이기도 하지만 외롭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고 이와 함께 삶의 만족감을 높이기도 하지만 살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숙제이지 남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의 나는 세상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는 줄 알았던 철부지였다.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었고 그게 당연한 거였다. 그러다 고3을 시작하던 어느 날 엄마가 사라지면서 이후 나의 인생은 동화가 되었다. 콩쥐팥쥐 이야기의 콩쥐나 신데렐라 속의 재투성이 신데렐라였다. 그러나 동화 속 아름다운 결말은 현실에는 없었다. 동화는 동화일 뿐이다. 그들은 해피엔딩의 주인공이지만 백마 탄 왕자는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법이다. 나는 거짓 긍정으로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열심히 살면 복이 온다는 건데 근거도 없이 막연하게 긍정적으로 살라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그리고 기다리는 거 소질 없는 나 이다.
환경은 이미 꼼짝달싹 할 수 없게 세팅되어 버린 상태에서 인생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겉으로 봐서는 별 걱정 없이 인생 잘살고 있는 중년여성으로 보이니까. 이대로 살면 살던 대로 살게 될 것이다. 나에게 물었다. '너, 이대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어?' 처음에는 답하기 어려웠고 두려웠다. 그러나 오랜 시간 거듭되는 질문 속에서 나의 답은 정리되어 갔다. 결론은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를 온몸으로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내 인생을 한번 완전히 뒤집어 보자. 뒤집어 엎어서 내가 이 세상에 온 의미를 알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 답다는게 무엇인지를 알아내자. 그렇게 다시 태어나자. 두 번째 인생을 살자. 하나뿐인 귀한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2. 언제나 기준은 나 자신. 우리는 지금 이대로 완벽한 존재이다
좋고 나쁜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있는 그대로가 세상인데 우리는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 라고 하고 있다. 좋은 것은 욕망의 대상이 되고 물질주의 세상에 살면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비교의 대상이 없다면 좋고 나쁘다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이다. 각자만 놓고 본다면 우리 모두 하나의 아름답고 귀한 존재인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누구는 아름답고 누구는 추한 사람이 된다. 그냥 각자를 존재 자체로만 본다면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될 텐데, 우리 모두가 귀한 보물이 될 것인데.
비교는 우리 삶 속에서 일상이다. 나 스스로 허망한 생각을 만들고 따라가니 괴롭고 내 속은 지옥이 된다.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생각의 뿌리를 없애지 않고서는 우리는 괴로움 속에 갇혀 영원히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살게 될 것이다. 원래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 만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문제를 만들어 내는 힘든 노예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열심히 살았다, 최선을 다했다 라고 한다.
눈을 내부로 돌려 나의 본질을 보자. 기준은 언제나 나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무엇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를 깨닫고 나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진정한 이타심도 내 안에서 생겨나게 된다. 세상의 기준과 규율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면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되고 그것은 주인의 삶이 아니다. 공직자로 근무하면서 심지어 직장 동료한테도 듣는 말이 있다. 영혼 없는 공무원.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게 없는데 자신이 하는 일에 너무 애착을 보이면 결국 다치게 되니 영혼을 버리고 복종만 하라는 것이다. 정말 싫어했던 말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말문이 막혀서 멍하니 상대를 바라 보았다. 지금은 퇴직한 그 사람은 '안 그런교?' 하고 되묻는다. 대답 대신 '당신이나 영혼 없이 살아.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라고 속으로 외치고는 외면했다.
진심을 다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르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진심을 다하다 보니 그만큼 직장생활에 현타가 크게 온 것 같다. 나이가 지천명이 되니 내 젊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하루하루가 아깝고 소중하다. 이제 더 이상 노예의 삶을 살지 않겠다. 남의 기준에 맞추어 만들어진 거짓 성과에 기뻐하지 않겠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이 먼저이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났을 때 진정함 이타심도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3. 산다는 것은 하늘이 저마다에게 주신 화두를 찾고 실천하는 것이다
너무 억울했다. 갖 스무 살을 넘긴 그 해 예견할 수 있는 징조도 없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내 방 한번 치워본 적 없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이혼한 집에서 자랐다고 하면 남들이 제대로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라고 하니 특히나 여자는 시집가기 힘드니까 남한테는 절대 비밀로 해야 돼' 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계모에 의해 집에서는 콩쥐같이 살더라도 집 밖을 나가면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는 듯 연기를 해야 했다. 비밀로 해야 하니 주변에서 멘토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억압된 화는 증오로 변해서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종교도 버렸다. 예수고 하나님이고 부처고 할 것 없이 다 증오의 대상이었다. 딸이 육십이 되어도 부모 뜻을 따르지 않으면 때릴 수 있다고 말하는 아버지 말에 복종하며 그 분의 결혼생활을 지켜주기 위해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희생하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 사십 중반이 되어 있었다. 차라리 재혼 생활이 일찍 깨지기라도 했으면 그 만큼의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됐을 터인데 아버지도 나도 너무 어리석었다.
방황이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이제 아이들도 컸고 사무관으로 승진도 해서 개인적 삶에 집중하며 살면 되는데 낼모레가 나이 오십이다. 인생의 절반을 뭘 하겠다는 목표 의식도 없이 그날 그날 생존에 급급하며 살다 보니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놓친 것이다. 허탈했다. 오십인 라나는 무엇을 할 수 있까. 가슴속은 터질 것 같고 어떤 식으로든 분노를 토해내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처음에는 읽기도 거북할 정도로 거칠었지만 계속적인 토해냄을 통해서 감정은 걸러지고 건조하게 내 이야기를 풀어 낼 정도가 되었다. 내 안에서 또아리 틀고 나를 괴롭히던 증오를 밖으로 내뱉고 나니 증오와 나 사이에 간격이 생기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울컥거리는 감정 없이 말할 수 없던 것이 이제는 내 입으로 내 아픔을 담담히 또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면서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지금은 또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625 전쟁이 난 줄 몰랐을 정도의 깡촌에서 일곱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삶을 개척해서 육군 장교가 되었으나 한 번의 실수로 군복을 벗고 사회 부적응자로 살면서 가부장제도 아래 남자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았던 내 아버지의 삶도 참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힘들었었고 가부장제도의 희생자였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그분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용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이것이 배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용서였다.
나의 화두가 용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감히 내가 아버지를 용서한다는 것은 아니다. 용서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것이고 어떻게 무거운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벼워질 것인가의 단계로 넘어갔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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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애쓰며 사는 삶은 맞지 않다는 신호야. 옳다면 자연스러워야 해
정말 애를 쓰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진작에 깨질 아버지의 두 번째 결혼생활이지만 내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이십 년 넘게 버티어 올 수 있었다. 오랫동안 애는 썼지만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무너뜨리기 힘든 두터운 벽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희생자가 되었다.
무엇을 하든 애쓰는 천성은 사무실에도 마찬가지이다. 사고가 독특하다던지 복장이 공무원 같지 않다던지 아니면 건방지다던지 등의 모욕적 언사는 참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내가 만든 기획서나 보고서가 부족해서 '이 정도밖에 안돼?'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일하는 데 있어서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한번 실수를 하게 되면 심한 강박에 사로잡혀 버렸다. 강박은 나를 더 다그쳤다. '만약 내 머리가 부족해서 보통사람이 5시간 걸려 완수할 일을 내가 해내지 못한다면 그 이상인 10시간, 20시간을 투자해서라도 남에게 흠이 잡히지 않는 이쁜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어. 최소한 나 자신에게는 부끄럽고 싶지 않아'라는 말로 몰려오는 피로함과 싸웠다. 나는 그저 맡은 일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런 나를 지켜보는 것도 버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적당히라는 것을 몰랐기에 내가 들인 공은 인정하면서도 같이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이상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사람하고 일하면 힘들어', '저 사람은 자꾸 일을 만들어내서 동료들을 힘들게 만들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사무관으로 승진해서는 국제교류나 통상지원 분야에서 일을 했다. 재미는 있었으나 책임감 크고 중요도 있는 일을 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은 지루해졌고 성취감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비중감이 큰 일거리를 찾아 이동하려고 하면 자꾸 누군가에 의해 막히곤 하였다. 거듭된 부정적 결과로 인해 낙담하게 되고 주의를 흩트려야만 버틸 수 있었기에 배움을 선택했다. 자기경영 공부도 하고 감정의 중요성도 깨닫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공부하였다. 더불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다양한 과학적 분석도구들을 거치면서 어떤 강점을 갖고 태어났는지, 어떤 강점이 지나쳐서 약점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원래의 내가 어떤 사람으로 태어났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나 나의 5대 강점에는 대인관계 강점이 존재하지 않아 상대방의 공감을 일으키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존재감 강점 테마에서 존경과 인정을 받기 위해 중요한 일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부분에서 나의 숨은 욕망이 '존경받는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닫고 나니 매사에 존경을 받는 리더가 되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는 장점이 약점으로 바뀌는 순간 내 안에서 자동으로 과속 방지 브레이크처럼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기업지원 총괄을 맡게 되었다. 요새 시정의 주요 사업인 대구로 배달앱부터 다양한 기업지원사업들을 하느라 너무나도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다른 팀에 비해 일이 많다 보니 팀원들도 고생이 많다. 특히나 대구로는 언론, 시민, 소상공인부터 의원들까지 관심을 갖고 있고 요구하는 사항도 많아서 하루를 25시간으로 사용해도 늘 부족하다. 그러나 달라진 거라면 예전같이 욕심이 넘치던 시기에는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고 나 자신도 많이 몰아붙였겠지만 지금의 나는 살짝 뒤로 빠지고 직원들을 앞세우다 보니 직원들이 스스로 일을 하게 되고 바쁜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직원들도 힘든데 나까지 몰아 붙였다면 아마 지금쯤 업무들이 산으로 가고 성과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관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말이 전부이다. 관심이 상대를 만든다. 태도는 말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무거운 것이 아니라 가벼워져야 한다. 가벼워야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린다.
5. 아름다운 지구별에 여행온 여신처럼 신나게 멋대로 살아 보자.
아직 살아온 만큼의 날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세상사는 재미를, 이 세상에 온 의미를 일찍 찾았으면 더 일찍 행복을 찾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인생의 절반즈음에 찾은 것도 너무 좋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두 개의 인생을 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은 내가 젊어서 인생을 좀 더 즐길 수 있고, 아직까지는 내게 열정이 남아 있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변화하는 것에 두려움을 덜 느낄 수 있어 좋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심장이 쫄깃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기쁨도 누리고 있다. 이제 억지로 살지 않는다. 참고 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나답게 남과는 다른 나만의 매력을 발산하며 살려고 한다.
비로소 성숙한 여자가 된 듯하다. 지금까지는 여자 아이였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세상이 내 편에 서지 않는 것을 원망하였다. 내 동기들이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면서 질투하던 미성숙한 존재였다. 편견에 갇힌 눈으로 세상을 내 멋대로 상상하면서 본질을 볼 줄 몰랐다. 그러나 이제 선언한다. 지금부터는 나를 믿고 사랑하겠다고. 지금까지 자신을 믿지 않고 미워했던 것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을 대하듯 자신을 소중히 대하겠다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고 내 안의 보물을 볼 줄 아는 사람과 사랑하며 다시는 무거운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살겠다.
부처는 내 안에 있다고 한다. 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데 가까이서 찾지 않고 멀리서 찾으니 내 안의 신이 죽는 것이다. 신이 된다는 것은 갖난아이가 되는 것이다. 아무런 기준과 편견이 없는 갖난 아이의 눈에 이 세상은 온통 경이로움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신기한 나라인 것이다. 신기한 세상, 아름다운 지구별.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하루. 귀한 길 위에 사람들. 그리고 나는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 여행 온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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