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언
야구단에 있는 4년동안 집중한 것은 '결과값'에 대한 평가였다.
데이터를 통한 지금까지의 퍼포먼스 평가, 인터리그 데이터를 통한 퍼포먼스 예측, 과거 데이터를 통한 스킬레벨 측정 등.
코칭스탭의 데이터 친숙도가 굉장히 낮거나, 데이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던 시기를 겪어왔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것은 어려웠다. 나같은 분석가가 'A선수 폼이 어딘가 달라진거 같은데요'라고 한다면, 코칭 스탭에게 엄청난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며 업을 그만둘 정도의 압박을 받을 수 있던 때도 있었다.(그게 불과 5년전이라는게 신기할 뿐이지만.)
하지만 코칭스탭의 데이터 이해도와 문서작업 능력이 전방위적으로 요구되는 지금은, 분석가의 다양한 시도가 오히려 조직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 여기서 주의 ------------------
MLB는 liaison, 그러니까 한국말로 '연락관' 쯤 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서 분석가와 현장 스탭이 직접 일하는 경우가 드물다. 은퇴한 선수가 주로 이 역할을 맡게 되지만,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되며 관여했던 모든 업무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문서작성 능력(+부지런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KBO에서는 이런 연락관을 여러명 두는 것 보다는 육성선수 한명을 더 팀에 두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현장 동행(1군 동행) 분석가가 존재하면서 liaison의 역할을 떠맡는 경우가 많다.(또는 전력분석 팀의 선수출신 직원이 이 역할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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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메트릭스가 어쩌니 저쩌니 하지만, 결국 다들 트래킹 데이터로 뭔가를 하는 시대가 왔다. on-field뿐만이 아니라 랩소도 등의 off-field training device들의 데이터도 쏟아진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정보는, 결국 '퍼포먼스와 직결되는 데이터의 직접적 적용'이 KBO에서도 중요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떡대가 엄청나고 실제 힘도 좋은데 경기만 하면 그 파워를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 (raw-power 80, game-power 20인 상태) 왜 그럴까.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경험상으로 이런 선수 대부분은 1군레벨의 빠른공에 대한 대처능력이 전무하며, 한두번의 좌절을 겪으며 스스로 움츠러들어 있다.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멘탈은 멘탈 트레이너를 통해 다시 가다듬을 수 있다. 하지만 어짜피 몸이 못따라가는 것을 어떻게 고칠지는 다시 현장 스탭의 역량이다.
------------- 여기서 다시 잡설 -------------
프로야구는 아주 독특하게도(미국 일본도 그러히지만) coach certificate이 없다. FIFA처럼 압도적 권한을 가진 국제기구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어짜피 국제자격증 있어봐야 쓸모가 없다) 그래서 1년차 코치가 6년차 코치보다 연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코치는 코치이거늘, 은퇴 시점의 선수 네임밸류에 의존한 인선을 하게 될 경우 자칫 구단 전체의 비용이 크게 낭비될 수 있다.(잘못 인선한 코치는 연봉 뿐 아니라 팀 케미스트리 등 다양한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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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1군레벨의 빠른공에 대처하잡시고 밤낮으로 145km짜리 공을 수천개씩 피칭머신에서 뿌려서 치게 하면 될까. 될 수도, 안될 수도. 가능성은 낮다. 점진적인 반응속도 향상 훈련이 필요한데, 이 기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할 만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국내 야구단에 몇분이나 계실지는 모르겠다.(지금 계신 트레이너 분들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다)
데이터로 어디까지가 선수의 최대 퍼포먼스 가능영역인지 파악하고 조금씩 나아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liaison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렇다고 liaision을 무작정 채용해서는 안된다. 본인의 모든 행동을 문서로, 그러니까 구단의 역사로 남겨줄 만큼 부지런하고 논리정연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분석가도 살고, 조직이 다같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