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고는 출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통학하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앉지도 못한 체 서서 등교하면 피곤함에 절어 하루의 일과가 모두 힘들게 느껴졌다.
당시엔 버스 전용차선도 없던 터라 심하면 4~50분 거리의 학교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되도록이면 러시아워를 피해서 등교하고 싶었고 그런 생각에 오전 일찍 수업이 있는 강의는 아예 신청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오전 수업을 신청하지 않으면 그래도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고, 버스 승객이 줄고 길이 덜 막힐 때 등교하게 되니까 피곤함도 덜 수 있었다.
아침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까 그 시간에 TV를 볼 기회가 많았다.
평생 통틀어 그 당시만큼 아침 TV 프로그램을 자주 본 적이 없었고, 아침 드라마와 아침마당 류의 토크쇼가 그만큼 재밌는 지도 그때 알았다.
하루는 아침 토크쇼에서 흥미로운 주제로 찬반 토론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너무 오래전에 본 내용이라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이성교제에 있어 외모가 중요한가 성격이 중요한가' 하는 주제의 논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녀의 성비를 맞춘 듯한 여러 전문가들이 치열한 주장을 펼쳤고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한 결론으로 토론의 결과가 정리되었다.
지나친 외모지상주의는 진정한 이성교제의 전제가 될 수 없으며 이성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성격이 맞는 상대를 찾는 것이 이성교제의 올바른 방향이란 취지였다.
결국 위와 같은 결론으로 토론이 마무리되어 갈 때, 여성 진행자는 방청 중이던 사람들에게 발언 기회를 줘서 토론의 결과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려 했던 것 같다.
앞자리에 앉은 평범해 보이는 남자 대학생을 지목하여 질문을 던졌다.
"자 오늘 패널 분들의 열띤 토론 들어주셨는데요. 어떻게 방청객 분께서는 앞으로 이성교제를 하시면 외모를 먼저 보시겠어요 아님 성격을 먼저 보시겠어요?"
"네 전 외모부터 보겠습니다, "
진행자 분은 침착함을 찾으며 애써 아무 일 아닌 듯 남학생에게 다시 생각해보란 듯한 질문을 던졌다.
"아니 오늘 저희가 한 시간 동안 지나친 외모지상주의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방청객 분께서는 왜 외모부터 보시겠단 거죠?"
"외모는 사귀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만 성격은 실제로 사귀어 봐야 알 수 있잖아요.
사귀어 보다가 외모 때문에 헤어질 순 없으니까, 외모를 보고 사귀어서 성격을 확인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대답을 한 남학생의 논리와 합리성에 크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저런 명확한 답이 있는데 한 시간이 넘게 쓸데없는 토론 시간을 소모한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시청자인 나뿐만 아니라 진행자도 방청객의 논리에 공감한 것 같았고 지금까지의 프로그램 진행 내용과 상반된 주장 사이에서 어떻게 방송을 마무리할지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게 화면 너머로 전달되었다.
결국 진행자의 TV토론 마무리 멘트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방청객이 답했던 내용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고, 이후 내 삶 속에서 온전히 실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