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형이야기

by 랜덤초이


아주 어릴 적에 보았던 TV 프로그램 중 인형극으로 제작된 “(소년) 삼국지”가 있었다.

“♬~의리에 죽고 사는 도원결의 삼형제 ♪♪ ~ ♫

유비 현덕, 관우, 장비 ~ ♩ 대륙을 누빌 때 ~~

거칠 것이 없노라 두려울 게 무어냐

삼국통일 위하여 앞으로 앞으로 ♬~~”

전장의 함성 소리를 배경으로 호쾌하게 부르는 주제가를 들으면 서둘러 TV 앞으로 달려가서 인형극에 집중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유튜브에서 고전 콘텐츠를 찾아 추억의 인형극을 다시 보면 영 어색한 화면과 동작을 느끼게 되지만, 당시에는 지금의 4DX 보는 것처럼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인형극은 실사로 극화하거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보다 아무래도 비용 효율적인 경제적 제작 방법이었을 것이다.

특히 삼국지 같은 시대극의 경우 더욱 그랬을 수밖에 없다.

실사로 표현한다면 그 많은 사람과 말, 의상 등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애니메이션 역시도 컴퓨터 그래픽이 발전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사람이 원화를 모두 그려서 제작해야 했던 만큼 경제성이 나오는 방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형이 등장하는 형식의 TV 프로그램은 과거에 더러 있었다고 기억한다.

인형극은 제작비 측면의 경제성 말고도 일반 실사 작품에 비해 유리한 점이 있는데 실사 촬영이라면 불가능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장면의 연출이 가능한 점이 있다.

얼마 전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낙마 장면을 찍기 위해, 달리는 말의 다리를 걸어 일부러 넘어뜨리는 촬영이 있었고, 그 때문에 말이 목숨을 잃고 대역 연기자도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인형극에서는 이같이 말에서 떨어지는 장면이라던가 창과 칼로 싸우는 장면이라던가 하는 위험한 장면을 연기자의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인형을 이용해 사람의 생명에 대한 위협을 회피하는 대표적 사례로는 자동차 충돌시험에서 사용되는 더미(dummy) 인형을 빼놓을 수 없다.

더미는 충돌 영향으로 신체에 전해지는 충격과 손상 정도를 최대한 정확히 측정해내기 위해 사람의 신체와 비슷한 성질을 갖도록 정교한 제작기술과 센서 장치를 필요로 하고, 그 때문에 그냥 인형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고가의 비용이 들어가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사람이 직접 테스트에 임할 수는 없으니 아무리 비싸도 꼭 필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마침 삼국지에도 이런 사례와 유사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우리가 즐겨 먹는 ‘만두(饅頭)’의 기원에 대한 고사가 그것이다.

촉나라 승상 제갈량이 남만 정벌 후 귀국할 때, 강에 거센 풍랑이 일어 건너지 못했다고 한다. 그 지방의 사람들은 '전쟁에 희생된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서는 사람의 머리를 제물로 바쳐야 풍랑이 진정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많은 인명의 희생을 치른 제갈량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여 밀가루 반죽에 양과 돼지 등의 고기를 채워 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강에 던져서 제물을 대신했다고 하고 결국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2천 년 전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 시대에도 그렇고, 사람을 대신하여 위험한 상황을 겪게 되는 인형이 있었단 점은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살다 보면 세상에는 타인의 생명이나 명예를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은 걸 알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결정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더라도 대안을 고민해서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려 하는 경우가 있구나 싶다.

나무위키에서 “인간방패”라는 단어를 찾으면 다음과 같은 짤이 예시로 표현되어 있다.

명예 (HONOR)

악당과 영웅의 다른 점은 그들이 인간 방패를 사용하느냐, 아니면 그들 스스로를 인간 방패로 세우느냐다.

(The difference between the good guys and the bad guys is whether they use human shields or make themselves human shields)

인형극의 추억을 얘기하다가 왜 이렇게 묵직한 얘기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타인을 이용하기보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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