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로 딴 인센티브

by 랜덤초이


속된 표현 중에 "내가 이 자리 고스톱 쳐서 딴 줄 아냐?"라는 말이 있다.


어떤 자리(직위, 직책)에 있는 사람이 그 자격이나 실력에 대해 의심받을 때,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합당한 노력이 있었음을 강조할 때 이용하는 표현이다.


“병장 계급장은 뭐 고스톱 쳐서 딴 줄 아냐?”

“내가 팀장 자리에 고스톱 쳐서 올라온 줄 알아?”


이런 방식으로 쓰이게 되는 건데, 이는 고스톱이 흔히들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속성을 갖는다고 생각해서 쓰이는 표현일 것이다.

즉, 자신이 차지한 자리는 운이 아니라 실력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고스톱을 쳐서 딴 게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사실 잘못된 사실을 전제로 만들어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스톱 같은 게임은 운(運)보다 기술(技術)이 더 강하게 작동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항상 따는 친구들이 따고 잃는 친구들이 잃는 지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실 이런 표현은 운과 실력에 대해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실제 사회생활 속에서 고스톱 실력을 근거로 인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그랬다.


하지만 예전에 나는 인센티브 포상금을 당구 실력으로 경쟁하여 나눠 본 경험이 있다.

20년도 더 된 오래된 일이지만 마침 인센티브 제도의 운영과 관련해 생각해 볼 만한 예시가 될 수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20세기 말 회사에서는 각 팀마다 팀원들 중 한 명의 우수 성과자를 추천하도록 했고, 추천된 직원에게 200만 원(?) 정도의 인센티브를 준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 팀은 고객과 대리점 등을 대상으로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마켓 서베이를 하는 팀이었다. 각 팀원들이 각기 다른 서베이를 담당하여 조사를 기획하고 결과를 분석하여 경영에 참고할 인싸이트를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주(主)된 책임과 부(副)된 책임이 있기는 했지만 거의 총력 지원체계로 운영되었기에 누군가의 기여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힘들었다.


당시 우리 팀의 팀장이었던 이 팀장은 아마도 각자에 부여된 임무를 위해 함께 노력한 팀원들 중 누구 하나 만을 선택해 포상 추천하는 것이 부당하다 생각했고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팀원들을 모아놓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번에 우리 팀에 우수성과자 추천 T/O가 한 명 생겼어. 근데 사실 난 누구 한 명을 못 고르겠다. 당신들도 알지만 우리 팀 일이 각자에게 구분돼 부여되긴 하지만 집단적으로 성과를 내는 형태로 진행하잖아? 그래서 제안하나 하려는데, 우수성과자는 황 대리로 올리겠어. 다만 황 대리도 포상금은 팀원들과 나누는 게 어때?"


사실 다른 팀원들이야 우수성과자로 추천되지 않지만, 포상금을 나눠주겠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황 대리는 그런 제안에 대해 너무도 흔쾌하게 대답했다.


"그러시죠. 저도 팀원들이 모두 함께 노력한 결과이니 나누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습니다."


결국 팀장을 포함한 5명의 팀원 모두가 합의하여 포상금을 나누기로 합의가 되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또 문제가 될 것이 있었다.


200만 원을 정확히 5등분 할 것인지 직급에 따라 차등 배분할 것인지가 그것이었다.

무조건 정확히 'n분의 일'을 하면 사원인 내가 유리했겠지만 나에게 너무 유리한 방식이다 보니 내가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팀장은 또 한 번 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우리 당구를 쳐서 실력에 따라 배분하면 어때? 어차피 다마수(핸디캡)에 따라 실력이 보정되니까 재밌지 않겠어?"


아무리 당구 실력에 따라 쳐내야 하는 쿠션 개수에 차등을 두어 게임을 하더라도 100 정도 실력의 나는 솔직히 그런 방식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 모두 200에서 300의 당구 실력을 갖고 있던 다른 사람들은 호승심을 바탕으로 그와 같은 방식에 동의했다. 결국 나 역시 다른 주장을 하긴 어려웠고 모두의 동의 하에 포상금 지급일에 회사 앞 당구장에서 포상금을 건 당구대회가 열렸다.


두 시간 동안의 치열한 승부 끝에 결과는 예측했던 방향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중간쯤 실력으로 예상되었던 이 팀장과 박 차장이 각각 50만 원 정도씩을 확보했고, 설대리가 40 그리고 내가 30 정도를 확보한 것에 비해 가장 당구 실력이 출중했던 황 대리는 20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당구장 주인과 중국집 사장님이 나머지 10을 가져갔다)


정작 포상 대상으로 추천된 황 대리가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팀원들 간에는 워낙 친하게 지냈던 터라 아쉬운 마음없이 서로 수긍하고 재밌는 시간을 보낸 것에 만족했다.


그로부터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황 대리는 포상금에 대한 소득세를 내게 되어 실제로 본인에게 이익이 된 돈은 거의 없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였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상금을 나누기로 했던 취지와 결과에 대해서는 끝까지 이견이 없었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통상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지급할 때, 전체 직원에게 고르게 지급하는 경우는 적다.

선별에 의해서 건 평가에 의해서 건 수여 대상자를 특정하여 지급하길 원하고 그렇게 되어야 경쟁에 의한 향상심을 자극하여 조직원들이 분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지급할 때에도 개인별 기여도와 평가결과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방식이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합리적이기도 하다.

무임승차하듯 별다른 기여도 없이 같은 대우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꺾일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과 판단의 공정성이 인정되는가 하는 부분까지 들어가면 불공정한 기준으로 차등적 포상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차라리 포상이 없느니만 못한 해악을 또 보게 된다.


고스톱 쳐서 따는 자리와 당구로 따는 포상금이 완전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떤 경우를 보면 차라리 랜덤으로 인사를 하거나 포상을 하는게 공정하겠다 싶을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투입될 기회는 공정하게 주어졌는가?

결과가 예견된 실패를 떠 안은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는 건 공정한가 ?

작년에 이미 결정되어 진행되던 일이 결과가 올해 나오면 전임자와 올해의 책임자 중 누가 공과를 가져가는게 공정한가 ?


실제의 회사생활에서 위와 같은 사례는 수도 없이 발생하고 그때그때 다른 판단이 내려지는 걸 보게된다. 최선을 다하고도 책임만 강요 당하는 사람이 있고, 근사한 목표만 제시하고 결과를 내지 못해도 공적을 인정 받기도 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세상의 다양한 상황을 모두 저런 단순한 표어처럼 관리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한 것 같다.


결국 공정한 판단이란 건 상대적이고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보편적 공정함보다 개인의 양심을 더 수양하는데 힘쓰는게 사회도 건강하고 본인도 행복한 결과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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