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함께 근무하던 조직의 상사가 영전(榮轉)하여 다른 조직의 장(長)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였다.
회사 내에서도 손꼽히는 어려운 일을 맡아 고생하던 상사분은 과거 본인이 실무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의 부서에 조직장으로 화려하게 금의환향하게 된 것이었다.
축하와 송별의 의미를 담아 부서의 리더들이 참여한 회식 모임이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술자리를 옮겨가며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어느새 상사분은 많은 사람들의 축하 건배를 받느라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시게 되었고, 3차로 노래주점에 갔을 때는 아마도 거의 의식을 놓고 있는 것인가 싶은 상태로 소파에 기대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쉬고 있었다.
흥이 오른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그분은 살짝 정신이 돌아왔는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본인의 옆자리로 오라고 불렀다. 그리고 내가 옆으로 가자 술 취해 거칠어진 말투로 나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야 OOO 넌 네가 뭐가 문제인지 알아?”
취한 김에 훅 던져진 질문이라기엔 뭔가 뼈가 있는 질문인가 싶기도 했고 마침 나는 그다지 취한 상태도 아니었기에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난 수년간 그 상사와 일하는 동안 내가 들어봤던 여러 챌린지들이 머리를 스쳤고 나는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챌린지 포인트를 대답했다.
“아~ 예 제가 평소에 리스크를 깊게 생각해서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분은 고개를 저으며 내 대답이 틀렸다고 말했다.
“아니야 인마 너는 그게 문제가 아니야.”
어차피 남의 마음속에 있는 이유를 정확히 맞출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정답을 맞힐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옆에 앉은 체로 그가 말을 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더 이상의 질문 없이 그분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가 생각하는 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알려줬다.
“야 ~~(끄윽) 넌 너무 잘났어. 그래 네가 말하는 게 맞더라. 내가 가만 보니까 네가 보고하는 게 아닌 거 같다가도 지나고 보면 맞더라고. 근데 말이야 네가 모시는 상사들이 다 네 얘길 바로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그러니까 네 상사가 이해하지 못하는데 너는 맞는 말이라고 그냥 하면 안 돼. 그러면 아무 소용없는 거야...."
마지막 마무리는 술에 취해 작아진 목소리가 노래방의 음악소리에 묻히며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그분이 내게 그런 얘기를 해준 것은 고마운 기억으로 남았다.
내가 가진 문제를 지적하여 비난하려 한다는 느낌보다는 앞으로 내가 조심해야 할 보고의 기술을 충고해준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동안 내 보고와 의견이 인사이트를 가진 정직한 보고였다고 이해받은 것 같아 다행이란 느낌이 들기도 하는 충고였다.
사실 많은 회사에서 경영진들이 서술형 보고서나 단순한 보고서를 원하는 것은 그들이 게을러서도 귀찮아서도 아니다. 그들에게 집중되는 정보의 양과 판단의 책임은 너무나 커서 그 많은 정보 속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최소화된 간략한 정보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자가 정확하게 알고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경영자에게 그런 내용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야만 의미 있게 일하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그분의 말씀은 전적으로 동의가 되는 충고였다.
취중 전달된 그분의 냉정한 피드백은 그 후로 내가 어떤 종류의 보고를 할 때에나 늘 신경 쓰이는 부분이 되었다. 내 보고를 받는 상대방이 내 말을 어느 정도나 이해한 것 같은지 살피고 보고의 내용과 속도를 조절하는 건 많은 경험을 통해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아무리 의식하고 노력해도 그런 소통이 항상 가능한 건 아니었다.
아마도 그건 내 실력이나 품성의 문제에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말고도 원래 보고라는 건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이다 보니 소통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에 따라 같은 보고의 기술이 다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는 법이었다.
어떤 경영자에게는 아무리 쉽게 설명하려 해도 아예 들어보려 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었다.
또 어떤 경영자는 보고 내용이 자기를 가르치려 든다고 생각하고 역정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보다 더 어려운 사람은 사실 보고 내용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그가 이미 원하는 결론대로만 얘기해주길 바라는 경영자였다.
결국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보고의 기술은 항상 정답으로 이끌어 주는 수학의 법칙이나 정리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느껴도 오답으로 판정받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밖에 없었고 조직이라는 사회에서 오답의 결과는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수십수백 번 이상의 수많은 보고 경험과 피드백을 경험하고서도 나는 지금도 보고가 늘 어렵다.
내가 가진 원칙이나 기술이 통하지 않는 상대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직장에서의 선배가 나에게 얘기해 줬던 충고가 문득 떠오른다.
"재지 말고 쪼대로 해라."
그렇기도 하다. 사실 내가 나답게 한 일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내 한계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는데 어차피 복불복 같은 일이라면 뭘 그렇게 이것저것 재면서 불안해해야 할까?
나중에 어느 순간 다른 누군가로부터 너는 왜 그때 그렇게 보고했느냐고 질문받는다면
"누가 그렇게 시켰습니다.", "누가 그런 보고를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긴 쪽 팔리지 않을까?
스스로의 생각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쪼대로 정신과 당당한 자세가 필요한 시대다.
보고에 필요하고 중요한 건 기술일까 자세일까?
둘 다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지금의 나로선 자세에 한 점 더 주고 싶다.
기술은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영역의 일이라면 자세는 품성과 실천의 영역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