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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품 성공의 비결

by 랜덤초이

'착한유업(주)'은 질 좋은 우유를 공급해 시장에서 인정받아온 중견기업이다.


경쟁이 심한 대형 마트나 편의점 같은 유통채널에서의 판매보다 계약된 가정에 직접 우유를 배달하는 전통적인 영업 방식을 고수하면서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였다.

오랫동안 이 같은 영업 방식을 지켜오는 동안 충성 고객도 제법 많이 확보하여 '착한유업(주)'은 시장에서 좋은 평판을 이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사람들의 유제품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건 회사 경영에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출산율이 낮아지며 유제품의 주된 소비층인 영유아와 어린이 인구가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회사에는 비상 신호가 들어왔다.


'착한유업'의 대주주인 '착할선 그룹'에선 자회사인 '착한유업'이 미래의 경영 위협에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걱정될 수밖에 없었고, 착한유업의 대표인 탁현삼 사장에게 새로운 신사업, 신상품을 활용한 경영위기 돌파를 주문했다.


'착한유업'의 탁현삼 사장은 그가 회사를 맡고 있는 동안 뭐라도 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사업적 위기 상황을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은 갖고 있지 못했기에 그가 받고 있는 압박감은 더 커져갔다. 그래서 그는 그가 가진 부담을 회사의 다른 경영진과 리더들에게 전달하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푸시하는 일 밖에 하지 못했다.


그때 나름의 방법을 들고 온 건 제품 개발팀의 상기영 팀장이었다.

그는 제품 다변화를 주장하며 우유 원료를 활용해 만드는 초콜릿의 제조와 판매를 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초콜릿 제조 기술과 공장 라인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부터 실행하긴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일단은 유제품 원료를 다른 중소 초콜릿 위탁제조 업체에 공급하고 완제품을 납품받아 착한유업의 브랜드로 유통하는 방식으로 신상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진출해 있는 경쟁사들은 다양한 차별화된 초콜릿 제조 기술과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선도 초콜릿 회사들과 평범한 위탁 제조 초콜릿을 가지고 경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착한유업은 유제품을 가정까지 직접 배송하는 방식으로 유통을 하다 보니 초콜릿의 주된 유통 채널인 대형 마트, 편의점에 대해 제대로 된 공급선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상팀장은 기존의 우유 정기배달 계약에 초콜릿을 끼워 파는 방법을 시도했다.

한 달에 스무 번 우유가 배달될 때에 매주 두 번씩은 초콜릿을 함께 배송하자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신선식품이자 대표적 건강식품인 우유를 정기 배달시켜 먹는 고객들에게 초콜릿은 그다지 기호가 당길만한 제품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이 먼저 초콜릿을 함께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상기영 팀장은 우유와 초콜릿을 세트로 묶어 배달하는 번들 상품을 구성하는 것으로 탁현삼 사장을 설득했다. 그리고 초콜릿 제품의 초기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번들 상품의 가격은 초콜릿 가격만큼의 부담을 우유 가격에서 할인해 주기로 했고 그렇게 기존 우유의 정기 배송 가격과 거의 차이가 없도록 구성했다.


그러자 같은 값으로 우유와 초콜릿을 받아 이용하는 가구가 어느 정도 증가했고 그렇게 해서 그해 말에는 전체 우유 정기 배달 고객 50만 가구 중 중 20% 정도인 10만 가구가 초콜릿을 함께 받게 되었다.


그렇게 연말이 가까워지며 '착할선그룹'에서 착한유업의 경영성과 보고를 요구했을 때, 상 팀장은 탁 사장에게 자신의 성과를 정리해서 그룹에 보고하자고 의견을 정리해왔다.


"착한유업은 시장환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고객 니즈를 타깃 한 새로운 초콜릿 상품을 개발 출시하여 단기간 내 10만 가구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사실 이런 결과를 위해 우유 상품의 영업이익은 할인금액 비용 부담으로 전년 대비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녹거나 부서지기 쉬운 초콜릿을 안전하게 배달하기 위해 배달 포장 과정의 추가 비용이 늘어나고 배송 직원들의 어려움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내용은 굳이 성과를 설명하는데 함께 언급하지는 않았다.




결국 '착한유업'은 "주력 제품인 우유의 이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신상품인 초콜릿 출시 성공을 통해 회사 전체의 매출을 성장으로 반등시켰습니다."라는 스토리를 정리해서 주주들에게 성과를 자랑했다.

그 결과 '착할선그룹'에선 자회사의 신상품 성공에 고무되어 탁현삼 사장을 유임시킨 채 더욱 과감한 투자로 성과를 높이라는 지시를 했고, 상기영 팀장은 성공 경험에 대한 보상으로 그해 말 이사로 승진하게 되었다.


정작 고객들이 '착한유업'을 선택하는 진짜 이유인 우유 제품은 만성화되어가는 끼워팔기의 영향으로 할인된 가격이 실제의 가치인 것처럼 시장에 인식되었고, 초콜릿을 제조 공급하던 협력사는 제품 생산 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기존의 마진을 압박해왔지만 그런 일들은 한해마다 재계약을 걱정해야 하는 탁 사장과 상 이사에게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있고 회사가 있는 거지, 내가 없으면 회사가 다 무슨 소용이야?"


마치 짜고 얘기하듯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던 두 사람은 늘 무슨 일을 꾸며서 본인들의 공을 과시할까 하는 일에만 진심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회의를 해본 경험이 있는 부하직원들은 회의 중간에 꼭


"자 내가 (주주들한테 혹은 사장님한테) 뭘 잘했다고 해야 되는 거야? 어떻게 하면 잘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건지 생각해봤어?"

회의에서의 논의는 결국 진짜로 일을 잘해보자는 것보단 오히려 어떻게 잘한 일이라고 보이게 할 것인가로 귀결되고는 했다.


다음 해 신상품 성공의 공으로 우유사업부장으로 임명된 상기영 사업부장은 전년도에 목표 대비 미달했던 영업이익과 관련해 원인을 분석해서 목표를 캐치업 해야하는 과제를 갖게 되었다.

우유사업부의 팀장들을 모아 과제 수행에 대한 지시를 하고 각 탐장에게 자아비판의 발언시간을 갖도록 한 상기영 사업부장은 성과 부진을 타개할 방법의 고민을 우유사업부 팀장들에게 맡기고 퇴근 시간을 조금 앞서 사무실을 나갔다.


"알죠 ? 임원의 미덕은 빠른 퇴근이랍니다."


탁현삼 사장이 주최하는 임원회식 자리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상기영 사업부장은 또 다른 사업성과를 주장하기 위해 이번엔 어떤 스토리로 소설을 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후로 세월이 흘러 탁 사장과 상 사업부장의 신상품 성과는 사실 꾸며진 성과였을 뿐이란 게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미 많은 시행착오 속에 만회하기 힘든 손실이 구조화 된 상태였고, 그런 성과를 꾸몄던 임원들은 이미 회사를 떠난 다음이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직원들이 우스개로 말하기를


"탁 사장과 상 전무는 진짜 ... 그 양반들이 회의하고 신상품을 내면 직원들이 진짜 너무 힘들어졌었어. 그래서 생긴 얘기가 뭔지 알아 ?"


"바로 탁상공론이야. 탁 사장 상 전무의 공을 꾸미는 이야기란 뜻이지 ... 누군 탁상광론이라고도 해"




### 위 이야기는 가상의 회사를 배경으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자성어를 재해석 해본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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