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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상(斷想)

by 랜덤초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와 함께 하는 하굣길 지하철역에서 우리들 앞을 걸어가는 외국인을 보았다.


마침 가는 방향이 같았던 것인지, 계속 우리들 앞을 걸어가던 외국인은 지하철 표를 승강장 개찰기에 넣었고 반환되는 표는 뽑지 않은 채 그냥 플랫폼 방향으로 걸어갔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교통카드를 개찰기에 가까이해서 작동되는 비접촉 RF카드가 아니라 손가락 두 개 굵기의 표를 승강역 개찰기에 집어넣고, 반환되는 표를 뽑아 가지고 있다가 내리는 역의 개찰기에 다시 투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던 시절이었다.)


'88 서울 올림픽' 개최로 인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국민적 캠페인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나는 그 외국인이 표를 잃고 도착역에서 당황해할 것이란 생각에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저 외국인에게 빨리 표를 가져다줘야지.' 생각하면서도 내릴 때 표가 다시 필요할 거라는 상황까지를 영어로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말로 한다면

“저기요 지하철표 두고 가셨어요. 우리나라 지하철에선 도착역에서 다시 이 표를 사용해야 해요. 그러니까 표 잘 챙겨서 내리실 때 다시 사용하세요.”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영어 조기교육이 낯설던 당시 세대의 나로서는 그 짧은 순간에 외국인에게 저런 긴 문장을 만들어 얘기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승강장 쪽으로 사라지는 외국인을 보며 급한 마음이 우선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랑 같이 걷던 친구는 어릴 적에 부모님을 따라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녀석이었고, 영어를 원어민처럼 사용하던 친구였기에 그 친구에게 외국인이 놓고 간 표를 건네며 얘기했다.

“야, 네가 빨리 가서 저 사람한테 표 좀 줘라.”


그러자 친구는 속도 모르고

“네가 갖다 줘 왜 나한테 그래?” 하고 반문했다.

나는 그 또래 애들이 흔히 그러하듯 친구의 등짝을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지못해 표를 받아 든 친구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외국인에게 다가갈 때 나는 내심 내가 머릿속에 생각했던 저런 친절한 설명이 영어로는 어떻게 얘기되는 것일까 궁금해졌고, 친구 옆에 바짝 붙어 그 외국인 옆으로 갔다.


“Hey, You dropped ticket.”

그러자 외국인은 매우 놀라는 듯한 표정과 과장된 액션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O~~h Thank you”라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그게 대화의 전부였다.


'어 …???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는 얘긴데.' 싶은 생각이 들었고, 미리부터 복잡한 표현과 부가 정보도 전달해야 할 거라고 고민했던 게 부질없이 느껴졌다.




몇 년 전 출퇴근 길에 가끔 듣던 팟캐스트 중에 “김영철의 파워 FM” 라디오 방송 코너 중 하나인 '김영철,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란 콘텐츠가 있었다.

라디오 청취자가 '특정 상황에서의 한국식 표현을 영어로는 어떻게 하나요?'라고 물으면 먼저 MC인 김영철 씨가 영어로 표현해보고 나중에 미국인 출연자인 타일러가 진짜 미국식으로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교정해주는 형식의 내용이었다.


내가 들었던 콘텐츠 회차들의 내용을 통해 판단컨대 대부분의 경우는 김영철 씨가 생각해내는 표현보다 타일러의 표현이 훨씬 간결하고 쉽게 들렸다.

아무래도 그건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영어를 할 때는 한국식 의식의 흐름으로 문장 구조를 생각하고 그걸 다시 영어로 바꾸는 단계로 표현을 생각해 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마치 고1 때의 나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추측은 조승연 작가의 베스트셀러 ‘플루언트’에서 본 비슷한 설명으로 인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의 설명은 영어식 사고와 한국식 사고의 방식이 다른데 한국식으로 사고한 다음에 그걸 영어로 바꿔서 표현하려니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려면 영미권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그들의 사상과 습관을 잘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맥락이었다.


살면서 여러 경험을 겪다 보니 그런 생각들은 확실히 맞는 것 같다.

외국의 문화나 습관에 대한 이해 없이 외국어를 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뜻이 통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건 모르겠지만 유창하다 할 정도로 활용하려면 문화의 이해는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란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흔히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꿈도 외국어로 꾼다고 얘기하는 경우를 자주 보곤 했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엔 영어 꿈을 아직 꿔본 적이 없다.

나의 경우 어느 상황에서도 한국식의 생각이 우선이고, 그것도 문어체의 고상한 표현이 떠오르니 유창한 영어는 참 어려울 따름이다.


꿈에서도 문어체(文語體)와 만연체(蔓衍體)가 익숙한 나로서는 쉽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이게 다 평소에 내가 너무 말하고 글을 쓸 때의 표현은 정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싶기도 하지만,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면서도 우리말을 더욱 고상하고 정제되게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결국 부족한 건 시간을 들여 노력하는 행동일텐데 ...

괜한 내 성격과 습관을 핑계로 스스로와 타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 밤에는 '키가 크려고 높은데서 떨어지는 꿈'이라도 꾸게 된다면,

"Oh my god ~~ Help me!!!"

라고 외치는 꿈을 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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