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말은 20여 년 전 배우 '신구'님이 출연한 한 햄버거 신제품 광고에 나온 대사이다.
얼마나 유명한 광고 대사이면 정작 광고를 본 적 없고 기억 못 하는 사람들도 대사는 어디선가 들어봤고 기억할 정도로 여러 콘텐츠에서 패러디되고 재사용되었다.
광고 속에서의 영상 콘셉트는 마치 ‘노인과 바다’의 이미지같이 그려졌다.
힘든 사투 끝에 커다란 게를 잡고 지쳐 잠든 것 같은 신구 님의 조각배가 지나가는 것을 본 다른 어선의 선원들이 배에 놓인 커다란 대왕 게를 보고 놀라워하자 신구 배우가 그들을 쳐다보고 웃으며 던지는 한마디가 바로 ‘니들이 게맛을 알아?’이다.
말투는 분명 의문문(疑問文)이지만 질문을 받은 어부들의 답변을 듣고 싶은 눈치는 아니다.
커다란 게를 잡았다는 자부심과 오랜 어부의 경험이 묻어나는 자랑 섞인 뽐내는 말투로, 풀어서 얘기하자면 “니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잡은 이런 게를 먹어야 진짜 제대로 된 게 맛을 느낄 수 있는 거야.”란 뜻을 내포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그냥 재밌게 느껴졌던 저런 광고 속의 대사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로부터 듣느냐에 따라 사실 재미보다는 위압과 챌린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회사의 경영진 중에는 유독 직원들과 대화할 때 “당신이 전문가야?”라고 묻는 분이 있었다.
사실 자신보다 훨씬 상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무리 자신이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선뜻 대답하기가 참 난감할 때가 많다.
상사가 물아볼 때 내심 상대방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물어보는 것 같은데, "아니요. 저는 전문가가 맞습니다."라고 증명하기 위해 상사와 토론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전문가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미리 합의된 기준이 없다면 저런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는 이래저래서 내가 전문가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상사는 또 다른 이유를 들어 그렇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유교 문화가 진하게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스스로를 내세워 자랑하지 않는 것을 겸양의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진짜 실력 있는 전문 역량을 가진 사람이 겸양을 보이다가 오히려 전문가임을 내세우는 애매한 실력의 사람들로 대체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런 질문은 질문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무척이나 공격적 챌린지를 받는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물음이다.
그러니까 인사권한이 있는 경영진이 직원에게 "당신 전문가야?" 혹은 "니들이 ~~ 을 알아?"라고 질문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해서 해야 할 질문이다.
자칫하면 상대가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리는 질문이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조직에는 손해가 되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이런 질문을 활용하는 경영자라면 사실 질문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건 진짜로 상대방이 전문가인가를 알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전문가가 아니니 내가 판단한 전문가에게 자리를 내어 달라는 그런 의도로 읽히는 것이다.
정작 어떤 사람이 전문가인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질문하는 사람 자체가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있어야 그런 판별이 가능할 것인데, 그런 식견은 뒤로 하고 상대방에게 스스로 답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건 잔인한 자아비판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질문을 던질 때, 신구 님의 배 위엔 모두가 놀랄만한 '대왕 게'라는 실체가 있었다.
상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을 보여주면서 당신들이 내가 아는 만큼을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수긍과 인정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겠지만, "게맛을 모르면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협박하듯 흉기를 보여주며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질문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얼마나 곤혹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질문이란 꼭 상대의 대답을 듣기 위한 과정은 아닐 수 있다.
그냥 스스로의 생각과 확신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공감을 만들어 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라도 질문은 대화의 방법이고 대화는 상대방이 있는 것이니 만큼 쌍방 간에 이해를 넓히고 오해를 줄이는 수단이 되어야지, 상대를 압박하고 몰아가는 도구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자랑을 하려고 해도 근거나 증명할 수 있는 실체를 보여서 하고, 챌린지를 하려고 해도 조금만 더 친절하게 질문의 의도를 설명하고 질문받은 사람도 생각해서 답변할 수 있게 되어야 생산적인 대화가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