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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걸 사죠

by 랜덤초이

일전에 회사에선 세계적으로 성장세가 가팔랐던 중국 회사들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회사는 중국 시장에 정통한 전문가를 채용해 회사의 자문역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던 중국 전문가분께서는 어느 날 점심 식사를 함께 하다가 재미난 얘기를 하신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질 때 쓰는 단어인 가성비(價性比)가 중국에선 성가비(性價比)라고 순서를 다르게 하여 통용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한자어 대부분은 중국에서 들어와 이용된 것이다 보니 발음이 다르게 읽히더라도 한자 어순은 같은 경우가 많은데, 왜 가성비와 성가비는 다른 순서로 쓰는 것인 지가 궁금해진 순간이었다.


중국 자문께서는 그가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를 설명해주셨는데,

우리나라에선 지불 가능한 가격부터 결심하고 나서 성능을 비교하지만 중국에선 필요한 적정 성능을 먼저 결심하고 가격을 비교해본다는 내용이었다.

제일 먼저 중요도를 두는 대상이 가격이냐 성능이냐에 따라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쓰이는 단어의 한자 순서가 다른 것이란 설명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함께 얘기를 듣던 사람들은 중국 자문의 설명을 듣곤

“그래요? 그럼 가성비보다 성가비가 더 합리적인 표현인 것 같은데요?”라고 얘기들을 했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가격에 맞춰 성능이 빠지는 제품을 고르는 것보단 성능이 맘에 들 때 가능한 저렴한 가격을 찾는 것이 더 마땅해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나의 최애 TV 예능이 되었던 ‘지구오락실’에서 화제가 된 장면이 있었다.


출연진들이 워낙 게임에 강하다 보니 웬만한 게임을 하면 출연자들이 나영석 PD의 예상을 넘어서는 실력을 보여주었는데 유독 약한 분야가 있었으니 속담퀴즈가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출연자들의 나이가 어리다 보니 옛날 속담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텐데, 그중에서도 재밌는 오답으로 짤이 만들어져 회자된 부분이 있었다.


맑눈광 안유진 양에게 주어진 퀴즈는 “같은 값이면 ~"으로 시작되는 속담의 뒷부분을 맞추는 문제였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란 정답을 기대하고 낸 문제였겠지만 유진은 “같은 값이면 싼 걸 사죠라고 대답해 모두를 뒤집어 놓았다.


생각해보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란 속담은 아주 아주 정확하게도 지금의 가성비(價性比)를 표현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가격을 고정시키고 품질을 따지니 말이다.

게다가 유진의 오답에서 ‘같은 값에서 싼 걸 찾는’ 오류를 제외해 “같은 다홍치마면 싼 걸 사죠”로 바꿔 생각하면 이거야 말로 성가비(性價比)를 정확히 표현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Made in China 란 표식을 보면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대량 생산한 ‘부족한 품질의 저렴한 제품’이란 인식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그냥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엔 중국이 보여준 최근의 퍼포먼스는 놀랍기만 하다.

출시일마다 전날부터 사람들을 줄 세우던 애플의 제품들도 Made in China 란 걸 보면 우리가 가져온 편견들도 확 바꿔가야 할 때인 것 같다.


막연하게 국뽕에 의존하여 우리 것만 옳다고 천착하기 보다는 다른 가치관과 관점에도 관심갖고 이해해보려는 게 다른 세상을 보는 유용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지구오락실을 보다가 우연히 예전의 경험이 기억난 김에 다시금 생각해본다,

가성비보다 오히려 성가비를 쫓는 모습이 한결 실용적일 수도 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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