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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Nov 28. 2022

스타트업(Start up)처럼

많은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처럼 일해야 한다고 얘기하며 그들을 따라 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자가 그런 생각을 갖고 조직에 변화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일을 하려다 보니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한계를 겪게 되고, 그래서 '우리도 스타트업처럼 일해보자'라고 생각을 갖게 되는 건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많은 회사들이 스타트업처럼 일하라고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그런 시도가 상당히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 기억에는) 지금까지 대기업이 스타트업 방식으로 성공시킨 사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 성공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가끔 대기업 사내벤처가 어떤 일을 시작했다는 정도의 홍보 기사를 볼 수는 있었지만 그런 사례가 이후에 어떤 의미 있는 성과로 연계되었는지 까지 그 소식이 이어지는 경우는 볼 수 없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나빠서였는지 10여 년 전부터 대기업 안에서 서비스 플랫폼 관련 업무를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수년간 전형적인 대기업의 운영 구조 안에서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려다 보니, 대기업의 서비스 플랫폼 사업이 가지는 한계를 남들보다 일찍 그리고 많이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유행처럼 번지는 '스타트업처럼 일하기'에 대해서 그 배경을 100% 공감하면서도 성공에 대한 전망을 높게 볼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스타트업처럼 일하려는 대기업의 노력이 주로 애자일(agile)한 개발 프로세스 도입에 멈춰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엔 주로 파편화된 기능을 담당하는 각각의 역할을 가진 부서들(기획-UX-개발-품질-운영 등)이 있고, 그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른 부서와의 협업 프로세스를 정해놓고는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부서가 자기에게 주어진 순서와 일정에 따라 특정 기능을 수행해 다음 단계로 넘겨주면 다음 부서가 후공정을 수행하는 방식. 즉 워터폴(Waterfall) 방식의 개발 구조에 익숙하다.


이런 식의 소프트웨어 개발로는 시장과 고객의 반응에 대응하여 기능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것이 거의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프로젝트성으로 개발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자를 채용하는 건 경제적이지 않다 보니 개발 기능이 외주화 되어있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개발 작업을 SI 아웃소싱으로 수행하다 보면 매번 새롭게 소싱되는 개발자들이 기존의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정책을 이해해가며 효과적으로 개발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부가적으로 기능을 덕지덕지 추가하다 보면 소프트웨어는 무거워지고 나중엔 어딜 건드리면 어디가 영향을 받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는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개발 방법론에 있어서는 스타트업 방식으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점점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내부의 필요가 성숙되어도 개발방식의 변화만으로 스타트업처럼 일하고 성과를 내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건 많은 대기업이 성공한 스타트업의 사례에서만 레슨을 얻으려 하고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이 실패하고 있는 지를 눈여겨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개발을 아무리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하더라도 시장과 고객이 외면하는 서비스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대기업 바깥의 냉정한 시장에서 이런 경우를 맞닥트리면 당연히 서비스는 폐기되고 사람들은 헤쳐 모여가 되거나 다른 변신을 꾀하게 된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어느 정도의 상태를 실패로 볼 것인지 정하고 변화를 꾀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프로젝트 리더 위로도 수많은 옥상옥의 리더가 즐비한 상황에서 그들 모두가 동의하는 성공만큼이나 그들이 인정하는 실패를 주장하기 역시 힘들다.


링 위의 선수는 이미 그로기 상태이지만 하얀 수건을 던지기 주저하는 세컨드처럼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대기업의 리더들은 스스로가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을 회피하고는 한다.

그런 상태로 시간만 흘러가면 해당 서비스 상품은 그저 이름만 남아 인력과 의욕을 소진하는 늪이 되어버리고는 한다.


여기까지 이해하여 관리가 이뤄진다고 해도 대기업은 서비스 운영과 유지보수에 필요한 리소스를 확보하고 투입하기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다.

스타트업이 비전과 성과를 바탕으로 성장 단계별로 시장의 에인절 투자자나 벤처 펀드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성장하고, 적절한 시점에 다시 자본 유치와 매각, IPO 등을 통해 Exit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비해 대기업은 그런 수익화 방식에 둔감하다. 

그러다 보니 들어갈 때와 나갈 때를 판단하고 키우고 줄이는 의사 결정을 하는 것에 있어 적시 적합한 지원이 이뤄지기 어렵다.


결국 스타트업처럼 일하란 건 직원들이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방식에 있어 애자일 하게 일하라는 것에 머무르는 얘기가 아니다.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고 수익화하는 데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프로젝트 챔피언이 스타트업의 경영자처럼 일할 수 있는 구조도 역시 갖춰야만 성공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회고해 볼 때, 늘 새롭게 바뀐 경영진에 의해 도돌이표처럼 같은 방식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모습들을 겪다 보면, 도대체 우리에게 집단 지성과 인사이트는 언제쯤 만들어질지가 궁금해질 따름이다.


마치 이육사 님의 시에서처럼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그런 누군가가 온전한 성공경험을 보여주길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그냥 우리끼리 실패했던 경험도 좀 인정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면 안 되는 걸까...?

스타트업처럼 일하란 사람들이 스타트업처럼 일한다는 건 어떻게 일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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