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한 동료가 한 고위 임원이 부하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 전해주었다.
'부사장이 팀장들을 모아놓고 자기는 충신(忠臣)이기보다는 양신(良臣)이 되고 싶다고 했대요.'
"네? 양신(良臣)이 뭐예요? 저는 충신(忠臣), 간신(奸臣) 소리는 들어봤어도 양신이라고는 못 들어봤는데..."
나는 나의 무지를 솔직히 고백하였고, 얘기를 전달해 준 동료 본인도 궁금해서 알아봤다며 알아본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후흑학(厚黑學)이라는 책에서 본 내용이라는데 충신은 바른말을 해 자신은 죽게 되고 군주에게는 폭군(暴君)이라는 오명을 씌우는 신하라네요. 그러나 양신은 자신도 세상의 칭송을 받고 군주에게는 명군(名君)이라는 명예를 얻게 하는 신하라고 하더라고요"
양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구분해 전해 들었지만 난 그 해석이 그렇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신하의 입장에서 내가 충신이 될지 양신이 될지 선택할 수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주군이 폭군과 명군으로 나뉘는 것이 어떻게 신하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결심하여 행한다고 정해질 수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여러 신하들 중에 한 명이 대다수가 간신들인 신하 사이에서 주군에게 바른말을 한다고 해서, 그 주군이 명군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러면 그 신하는 양신이 되는 건가? 오히려 그러다가 잘못되어 당대에는 역적 후대에 충신 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
반대로 훌륭한 주군을 모시기만 하면 아무나 그냥 양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양신(良臣)이라는 단어에 대해 특별히 의미를 두어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런 말도 있는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몇 년이 흘러서 다른 글들을 읽다 보니, 몇 년 전에 들었던 충신과 양신에 대한 얘기가 당(唐) 나라 2대 황제인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과 그의 신하인 위징(魏徵)과의 대화에서 비롯되어 설명되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황제에게 300번 이상 아니되옵니다라고 간언 하였다고 유명한 위징이 자신은 양신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대상은 그의 부하들에게가 아니라 황제 이세민에게 한 말이었다고 한다.
누가 누구에게 이야기한 내용임을 알고 나니 충신보다 양신이 되고 싶다는 말의 맥락이 처음에 느꼈던 내용과 다르게 이해되었다.
그 말인즉슨 위징 자신은 나라를 위해 할 일을 하는 것이니, 당태종이 국정을 잘 이끌어 명군이 된다면 위징이 양신으로 남을 것이고, 위징의 말을 무시하고 당태종이 폭압적인 국정 운영을 한다면 위징 본인은 그에 대해서 바른 말을 하고 나중에 충신으로 기록될 것이다라는 얘길 한 뜻으로 이해되었다. 결국 신하가 황제에게 본인이 양신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황제에게 명군이 되어달라는 충언을 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결과적으로 당태종은 훌륭한 리더로 역사에 남아있고 위징 또한 숱한 미담의 사례로 회자되고 있으니, 그런 말을 한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서로의 의중을 잘 이해한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이켜보니 회사의 임원이 부하들에게 본인은 양신이 되고싶다 라고 한 말은 적절한 대상에게 전한 말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오히려 부하 팀장들에게 얘기하려면 본인이 아니라 팀장 여러분이 양신이 되도록 내가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얘기했어야 적절한 소통이 아니었을까 ?
신하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주군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라면 충신과 양신 사이에 선택하여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간신의 칭호를 감내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