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어 합사표

by 랜덤초이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고 있는 동안 자택 격리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반려동물을 입양해서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친목 활동을 하고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기회가 줄어들다 보니, 허전한 마음에 대한 위로를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찾는 일이 늘어난다는 건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이 큰 만큼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감내해야 할 부담도 분명히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사료와 장난감 등 경제적인 부담이 있고,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약을 먹어가면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또 'TV 동물농장'이나 '개는 훌륭하다'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 말이 통하지 않는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힘들다. 키우는 개나 고양이가 반려인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면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사람들도 정말 많이 존재한다.


반려동물과의 상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적은 경우로 'Aqua Pet'이라고 불리는 관상어를 기르는 사람들도 많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관상어를 키우면 주인을 알아보고 반겨준다거나 스킨십을 할 수는 없지만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고, 수족관 자체가 인테리어로서의 역할이나 공기정화, 습도 조절 기능을 함으로써 유용한 여러 가지 효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관상어를 기르는 것 역시 그저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 만한 단순한 일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수조를 들이고 관상어를 입양해 키우는 과정에서, 관리의 어려움을 겪고 나중에 오히려 수조를 처분하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눈에 보기에 화려하고 예쁘다고 해서, 아무 관상어를 골라 수조에 함께 넣어 기르다가는 원인 모르게 죽어서 떠오르는 물고기를 보거나 물고기끼리 서로 먹고 먹히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바다와 민물의 염도는 다르다 보니 물고기가 환경에 적응하여 호흡하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해수에서 자라는 어종인지 담수에서 자라는 어종인지에 따라 적정한 염도의 물을 채워서 수조를 분리하여 키워야 한다. 그리고 같은 물에서 키우는 물고기라고 해도 먹이사슬이란 게 존재하다 보니 어떤 물고기끼리는 일방적인 살육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관상어 키우기를 즐기는 동호인들은 함께 키울 수 있는 "관상어 합사표"를 찾아보고, 경험자들에게 상의해가며 배워가는 자세로 조심스럽게 수조를 관리한다.


이렇게 관상어를 키울 때, 수조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합사 할 수 있는 대상 어종을 선별해 조심스레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회사 안에서 특정 기능 조직에게 새로운 미션이나 업무 과제를 추가하는 절차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은행 창구에서 펀드 상품을 팔 수 있게 허가된 것은 1998년, 보험 상품을 팔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였다. 상품이 뭐든지 간에 팔 수 있는 건 은행이 알아서 판단해서 팔면 되지 저게 왜 허가가 필요한 일이었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겪는 요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은행이 가진 보수적, 안정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리스크가 높은 펀드 상품 등을 판매한다는 게 자칫하면 금융소비자의 오해와 판단 미스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허가를 고심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던 게 맞다.


혹시 가공식품의 포장에서 다음과 같이 표시된 글을 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제품은 밀, 계란, 땅콩, 돼지고기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 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초콜릿 같은 제품의 포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위와 같은 표현은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제조 과정의 재료 혼입으로 인해 치명적인 알러지를 일으키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규제사항이다. 소비자가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를 충분히 주의하여 선택할 수 있도록 저 같은 안내문구 표시가 의무화된 것이다.


같은 은행 창구여도 지금까지 일하던 방식이나 고객과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할 때는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했고, 효율적인 생산시설 활용을 위해 같은 공장에서 여러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그로 인해 예상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합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사례 중에도 이처럼 기존의 기능 조직에 추가적인 업무가 부가적으로 부여되는 시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미 운영 중인 앱 콘텐츠 마켓에서 실물 상품을 유통하자는 경우가 그런 것이었다.


실무를 모르는 사람이 얼핏 판단하면 앱 마켓에서 앱이나 콘텐츠를 파는 것과 실물 상품을 파는 것은 앱의 UI/UX 면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보니 같은 조직에서 쉽게 수행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물을 유통한다는 것은 단순히 앱의 화면 디자인을 변경하는 등의 이슈가 아니라, 상품의 직매입 여부, 창고 물류 체계, 배송 및 취소 시 반송, 클레임 처리 등 반드시 미리 확보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불쑥 아이디어라면서 최고경영자 앞에게 약속하고 밀어붙이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하듯 이런 방식의 시도는 대다수가 당연히 실패하게 된다.

우선 준비를 하다 보니 더 많은 자원투입이 필요한 걸 나중에 알고 문제가 드러나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 문제를 그냥 무시하고 범위를 좁혀 추진하다가 불완전한 서비스로 고객에게 외면받는 수도 있다. 억지로 구색만 맞춰 서비스를 내놓아도 제대로 운영 중인 다른 경쟁 앱과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 경쟁에서 뒤처지는 경우도 생긴다.


한번 잘못 생각한 부분에 대해 인정해서 바로잡지 않고 계속 조금씩만 자원투입을 늘려가면, 일정한 시간까지는 되고 있는 과정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한계가 다가온다.

그러다가 최종 실패하는 순간은 더 높은 경영자가 더 이상 지금의 노력이 필요한가 묻고, 진행 과정에 관심을 끊는 순간이다.

애초부터 일을 성공시키기보다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데까지만 관심 있었으니 그런 질문을 돌파해서 설득할 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과보다 뭘 하고 있다는 과시가 중요한 사람에겐 그 순간이 바로 내려놓는 시기이다.


기업이 기존의 사업 자산이나 공통 기능을 활용하면 적은 재원 투입으로도 효과적인 성과 달성이 가능하다고 하는 건 희망 섞인 상투적인 기대이지만, 이런 기대를 실현시키려면 치밀한 사전 준비와 강한 실행이 필요하다. 일단 시도의 성과를 과시하고 예견된 실패는 레슨이라고 쉽게 자위하는 사람에겐 같은 실패의 반복만 되풀이될 확률이 크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관상어 합사표" 같은 게 있으면 애꿎은 시도로 물고기가 죽어 나가 듯 사람이 다치는 경우 없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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